[시선2035] 떠나라 당신! 열심히 일하려면
“최대한 시차가 큰 곳으로 떠나라. 프로필 사진은 꼭 ‘휴가 중’으로 바꿔라. 뉴스는 절대 보지 마라.” 5년 전 첫 휴가를 앞둔 내게 선배들은 신신당부했다. “아예 휴대폰을 꺼둬라”는 조언까지 받곤 참 유난이다 싶었다.
막상 첫 휴가를 떠나 보니 그 당부가 뼈저리게 와 닿았다. 알림 끄는 걸 깜빡한 단체대화방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늦잠을 방해했고, 자료 검토를 요청하는 취재원 전화가 수시로 산통을 깼다. 더 괴로운 건 뉴스를 볼 때마다 불쑥불쑥 드는 찝찝한 불안감이었다. 휴가 중 팀 카톡방에 등장해 뭔가 보고하는 ‘만행’도 저질렀다.
문제는 휴가에서 복귀했을 때 발생했다. 전전긍긍 쉬다 보니 쉬어도 썩 개운한 맛이 없었다. 그러니 업무 능률도 떨어졌다. 덕분에 여름휴가가 끝나자마자 겨울휴가를 기다렸다. 이젠 휴가엔 알림을 끄고 웬만하면 휴대폰을 보지 않는다.
잘 쉬어야 잘 일한다는 건 오랜 상식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외침 속 손을 쭉 뻗은 장진영·정준호가 해안절벽을 자유롭게 드라이브하는 광고가 나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광고 속 장진영·정준호는 주6일 근무했지만, 이제 직장인들은 주52시간제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리프레시 휴가 같은 제도도 더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잘 쉬고 있는 걸까. 아직도 휴가 중 “메일 좀 확인하라”는 연락을 받는 사람, 상사 눈치를 보다 휴가 시기를 놓치거나 일수를 줄이는 사람이 주변에도 적지 않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3월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한 직장인 설문 결과 20대 응답자 55%가 지난해 쓴 연차휴가가 ‘6일 미만’이라고 답했다. 40대, 50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69시간제’ 논란 때 “바짝 일하고 한 달 휴가도 갈 수 있다”는 정부 설명에 “하루 연차도 눈치 보여 못 쓴다”는 볼멘소리가 나온 이유다.
하긴 대통령부터도 휴가답지 못한 휴가를 보내고 있다. 첫날인 2일엔 2차전지 투자협약식과 잼버리 개영식을, 3일엔 진해 해군기지를 찾았다. 4일엔 잼버리 사태 대응을 위한 예비비 지출안을 재가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국정과 휴가가 분명한 경계가 없는 상태”라고 했다. 잼버리 사태로 “한가한 휴가”라는 비난이 일지만, 사실 이 문제는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휴가 전에 미리 대비했어야 했다.
독일 최장수 총리를 지낸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하루 한 번 웃는 것, 절대 사람들이 내 휴가를 빼앗게 두지 않는 것”을 꼽았다. 로이터통신은 “독일 국민 85%가 메르켈의 휴가에 불만이 없다”는 여론조사를 공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 휴가를 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상반신 탈의’로 해변에서 포착됐다. 어쨌건 내일까지 대통령도 잘 쉬었으면 좋겠다. 복귀 후 할 일이 많다.
성지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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