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악마’에 17명 희생, 일본 15년전 대책 세웠지만…
평범한 일상을 공포로 몰아넣은 분당 흉기 난동 사건으로 15년 전 일본에서 벌어진 ‘아키하바라(秋葉原)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2008년 6월 당시 25세이던 가토 도모히로(加藤智大)는 한낮에 2t 트럭을 몰고 아키하바라 거리를 질주했다. 보행자 5명을 들이받고 멈춘 그는 차에서 내려 행인에게 칼을 휘둘렀다. 7명이 목숨을 잃고 10명이 다쳤다.
가토는 붙잡힌 뒤 “누구를 죽이든 상관없다. 사는 게 지겹다”고 말했다. 범행 전 예고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범행 현장으로 이동하면서도 댓글을 남겨 일본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그는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7월 사형이 집행됐다.
일본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를 ‘거리의 악마’란 뜻의 도오리마(通り魔) 사건으로 부른다. 일본 경찰은 1980년대부터 ‘사람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곳에서 확실한 동기 없이 지나가는 불특정인에게 흉기를 사용해 위해를 가하는 사건’으로 정의하고 실태를 분석하고 있다.
아키하바라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부는 도검 소지 규제에 나섰다. 범인 가토는 날카로운 양날형 검인 칼날 길이 13㎝의 이른바 ‘대거 나이프’를 휘둘렀다. 당시 현행법은 칼날 길이 15㎝ 이상만을 소지 금지 대상으로 규정해 대거 나이프 같은 위험한 흉기는 빠졌다. 정부는 곧바로 총포도검법 개정에 나섰고, 이듬해부터 칼날 길이 5.5㎝ 이상인 대거 나이프 등 양날형 검 소지를 원천 금지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조례를 개정해 18세 미만 청소년에겐 해당 기준 양날형 검 판매를 금하도록 했다. 위반 시엔 벌금 30만 엔(약 28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묻지마 차량 돌진’ 예방을 위해서는 도로를 막고 보행자들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보행자 천국’을 도입할 땐 차량 침입 방지책을 마련하도록 했다. 도쿄 마라톤 같은 대규모 행사에선 아예 대형 차량을 벽처럼 붙여 세워 막는 방법도 생겨났다. 범죄 피해자 대책도 이때 구체화했다. 당시 일본 경찰청은 피해자 지원을 위해 44명 규모의 대책본부를 세워 심리 치료와 사회 복귀를 도왔다. 경찰 관계자는 아사히신문에 “차량 충돌형 공격은 경비 검토 항목에 항상 들어가게 됐다”면서 “아키하바라 사건으로 사회의식도 변했다”고 설명했다.
아키하바라 사건 이후 묻지마 범죄에 대한 대책이 강화되고 사회적 경각심도 커졌지만 근절하지는 못했다. 지난달 23일 간사이공항을 향하던 전철 안에서 3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3명이 다쳤고, 앞서 15일에는 신야마구치(新山口)역에서 승객을 노리던 27세 남성이 살인 예비 혐의로 체포됐다. 2021년 10월엔 도쿄 지하철에서 칼을 휘두르고 열차에 불을 질러 18명이 다쳤다.
2000년부터 10년간 발생한 묻지마 사건 52건을 조사한 법무성에 따르면 범인은 39세 이하(73.1%)가 많았다. 일반 사건보다 연령이 낮고, 65세 이상 고령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범죄자 52명 중 43명이 결혼 이력이 없었고, 친구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범행 당시 친밀한 친구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명에 그쳤다.
범행 장소는 길거리가 20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사람이 많이 몰리는 역(9건)이 꼽혔다. 범행 방법은 칼부림(41건)이 대부분이었으며, 범행 일주일 전부터 당일까지 범행을 결심한 경우(50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기 처지에 대한 불만(42.3%), 특정인에 대한 원한 등 불만(19.2%)이 범행 동기였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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