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150통 해도 입원 못 해…중증정신질환 42만명 떠돈다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피의자 최모(22)씨는 2015년부터 대인기피 증세로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고, 2020년에는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다. 최씨는 5년여간 받아오던 정신과 치료를 2020년에 중단했고, 고교 자퇴 후에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다가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최씨는 3년간 치료를 받지 않아 질환이 악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성 인격장애가 피해망상이나 환청 등으로 악화하는 게 흔하다"며 "최씨가 피해망상과 관련한 중증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현병이나 조울증 같은 정신질환은 10대나 20대 초반에 많이 발병한다. 발병 후 치료받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뇌 손상과 뇌 기능 저하를 초래하게 되고, 증상 악화로 인해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조기 치료만 잘하면 10%가 완치되고 30%는 부분적으로 호전된다. 45%는 만성화돼 재발-호전을 반복한다.
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중증정신질환 환자는 50만명 정도이다. 대표적인 원인 질병은 조현병, 조울증, 재발성 우울증이다. 정신의료기관과 정신요양시설에 약 7만7000명이 입원 치료와 정신요양 서비스를 받고 있다. 최씨처럼 지역사회에는 약 42만 명이 생활한다. 이 중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정신재활시설 등에 등록된 환자는 약 9만 2000명에 그친다.
백종우 교수는 "지역사회 중증정신질환 환자 중에서 외래진료를 받고 약을 먹으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이 매우 많다. 상당수는 스스로 치료를 받는다"며 "일부에게 응급 증세가 나타나면 가족이나 이웃이 신고하는데, 이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백 교수는 "경찰이나 소방이 자해·타해 위험이 큰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게 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민원·소송 등을 우려해 자해나 타해가 발생한 경우만 이송한다"고 말한다. 신고환자의 16%가 해당한다. 나머지는 다시 가족 책임으로 돌아온다. 가족이 어떡하든 병원으로 데려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치료로 연결되지 않는다. 백 교수는 "자해나 타해가 일어나지 않은 환자에 대한 치료 대책이 없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환자 집으로 들어가지 못해 설득 외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환자가 병원에 가길 원하지 않는데 가족이 '가야 한다'고 재촉하면 본인을 가두려 한다고 여기고 공격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가족이 강제로 병원에 데려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경찰에 신고해도 앞에서 흉기를 들거나 폭언을 하는 등의 공격적인 행동을 해야 병원에 이송한다. 경찰이 보는 앞에서 환자가 그런 행동을 잘 하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속해서 치료를 받게 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는 사이에 병세가 악화하고 분당 서현역 범죄 같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6일 성명서에서 "일본·대만·유럽은 자해·타해 우려만 있어도 경찰이나 소방청이 병원에 이송하도록 책임을 부여한다. 특히 일본은 지방정부 공무원이 정신과 전문의와 함께 환자를 방문해 의무적으로 질병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가족이 "사고 난다"며 발을 동동 굴러도 자해나 타해 위험이 크지 않다면 경찰이 간여하지 않는다. 정신질환 민원이나 신고를 집계조차 하지 않는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초기 현장 대응 인력에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고 '찾아가는 전문적 정신건강평가'를 의무적으로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2019년 한 해 17만5000명이 중증정신질환 진단을 받았다. 연평균 3.4% 증가한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이 발간하는 '정신건강동향' 6월호에 따르면 정신응급환자는 2014년 6만4825명에서 2019년 8만4507명으로 증가했다. 2019년 환자 중 10~20대가 2만6274명에 달한다.
환자는 증가한 데 비해 병실은 줄어든다. 게다가 정신과 의사들의 대학병원 이탈도 이어진다. 정신질환 진료 수가가 턱없이 낮은 이유도 있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은 최근 정신과 폐쇄 병동을 없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도 폐쇄 병동을 없애고 절반을 줄여 개방형 병동으로 전환했다. 성안드레아병원(2022년)·청량리정신병원(2018년)이 문을 닫았고 경기도립정신병원·용인정신병원이 규모를 축소했다. 상급종합병원의 폐쇄병동의 병상은 2017년 1416개에서 올해 3월 275개로 급감했다. 정신병원 전체 병상도 2017년 6만7000여개에서 올해 5만3000여개로 1만4000개 줄었다.
이러다 보니 정신응급환자가 입원을 못 하는 '뺑뺑이' 현상이 벌어진다. 경찰이 빈 병실을 찾아 오래 전화를 돌려야 한다. 150통 전화를 돌려도 병실을 못 찾았고, 이후 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있다. 경찰청이 민주당 인재근 의원실에 제출한 응급입원 소요시간을 보면 2022년 1~6월 평균 3시간 1분 걸렸다. 동두천경찰서는 7시간 13분 걸린 경우도 있다.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지구대를 방문해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체계를 정비하라"고 지시했을 정도이다. 백종우 교수는 최근 조현병 환자의 병세가 악화해 입원할 데를 찾으려고 서울·경기·충남북·강원에 전화를 돌렸는데도 갈 데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퇴원 후 환자 관리 체계도 미흡하다. 정신재활시설이나 낮 병동 같은 게 활성화돼야 질병 악화와 외톨이 화(化)를 막을 수 있다. 그런데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기준 정신재활시설은 349곳, 이용자는 6432명에 불과하다. 별로 늘지 않는다. 중증정신질환자가 퇴원 1개월 이내 외래 진료실을 재방문하는 비율이 71.9%이다. 10명 중 3명꼴로 치료를 받지 않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일본도 2000년대 중반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급성병상·종합병원의 정신과 병상 투자를 늘리고 정신과 중환자실을 설치하며 경찰의 이송을 원활히 하는 등의 조처를 했다"며 "정신응급과 급성질환 환자 의료 서비스를 강화하고 퇴원 후 외래치료와 체계적인 재활이 이루어져야 중증환자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퇴원 후 환자 사례 관리 강화, 낮 병원·정신재활시설·주거시설 확대, 동료지원 활성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김나한 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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