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 벗고 방검복·삼단봉…재계, '역대급 삼중고' 탈출 대책 내놨다

최은경, 최선을, 김수민 2023. 8. 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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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현대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0일(현대삼호중공업은 11일)까지 집중휴가제를 운영하고 있다. 또 이달 말까지는 기온과 관계없이 생산부서 점심시간을 30분 연장한다. 야외 작업 현장에는 이동식 에어컨 1200여 대 가동하고 있고 작업자들에게 에어쿨링 재킷과 땀 수건, 냉동 생수, 식염 포도당 등도 제공했다. HD현대중공업은 생산 현장 직원에게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나눠주는 ‘찾아가는 냉장고’도 운영 중이다.

# 롯데그룹은 최근 백화점과 마트를 중심으로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안전 요원 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 요원들이 평상시 수트 차림이 아닌 방검복과 삼단봉을 갖춘 비상 대응 복장을 착용하게 했다. 비상사태 시 관할 경찰서와 소방서가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핫라인을 유지하고, 직원들에게는 긴급 상황 발생 시 상황 전파와 신고 요령, 대피 장소로 안내 방법에 대한 교육도 강화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하는 가운데 역대급 폭염에 ‘묻지마 범죄’ 공포까지 덮치면서 재계가 ‘삼중고’에 빠졌다. 기업들은 하반기 경기 불황 탈출 시나리오를 짜는 동시에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긴급 대책을 마련에 나섰다.

포스코가 광양제철소 압연수리부문 작업자들을 위한 그늘 쉼터를 마련하고 아이스커피, 포도당, 자양강장제를 나눠주고 있다. 사진 포스코


6일 재계에 따르면 야외 작업이 많은 조선·철강업계 등은 폭염에 따른 직원들의 온열 질환 발생을 막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포스코는 기상청이 제공하는 체감온도가 아닌 공장별 실제 온도·습도를 측정해 폭염 위험을 관심·주의·경고의 3단계로 나눠 작업·휴식시간을 운영한다. 또 아이스박스와 생수, 영양제, 식염 포도당, 아이스팩 등 보냉 장구를 제공하며 휴식 공간과 건강 상담을 지원하는 ‘안전버스’를 이달 말까지 운행할 예정이다. 이 회사 역시 7~8월 점심시간을 30분 늘렸다.

한화오션은 정오 기준 기온이 31.5도 이상일 때 점심시간을 한 시간 연장한다. 직원들에게 장어탕·닭백숙 등 보양식과 과일, 냉동 생수에 더해 에어 재킷과 쿨 타올 세트 등 혹서용품도 지급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8월 첫 주 생산 라인 가동을 멈추고 전체 여름 휴가를 떠났다. 이 밖에도 매일 4만 개의 빙과를 지급하며 사업장 전체 식당에 얼음통과 제빙기를 설치했다. SK이노베이션은 폭염주의보나 폭염 경보 발령 시 밀폐 공간 작업을 지양하고, 작업 시간도 단축한다.

지난 1일 오후 4시 울산 남구의 한 교차로 모습. 현대 관계사가 집단 여름휴가에 들어가면서 평소 차량으로 북적이던 도로가 한산하다. 김윤호 기자


유통업계 역시 옥외 근로자를 위한 예방책을 시행 중이다. 이마트는 검품 하역장, 파지 작업장, 주차 관련 근로자에게 얼음물과 식염 포도당을 지급했다. 신속한 응급 처치를 위해 쿨매트·아이스팩·식용포도당·이온음료 등이 든 폭염 응급 키트도 지난 5월 처음 도입했다. 홈플러스는 온라인 배송을 담당하는 배송기사 전원에게 아이스팩·이온음료 등이 든 ‘쿨플러스’ 키트를 지급했다. 롯데마트는 올해 처음으로 카트 관리 직원을 대상으로 무더위 시간대인 오후 2~5시 온도별로 매시간 10~15분의 휴식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상에 묻지마 범죄를 예고하는 글이 잇따라 퍼지면서 유통업계는 폭염에 범죄 예방까지 이중 비상 체제에 돌입하는 모습이다. 롯데월드타워를 관리하는 롯데물산은 온라인에 ‘흉기 난동 협박 글’이 올라옴에 따라 지난 4일부터 비상경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보안 및 대테러 인력 130여 명을 동원해 외부 순찰을 강화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 온라인 게시물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지하쇼핑센터에서 경찰특공대원들이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세계그룹은 사업장별로 지역 관할 경찰과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비상 연락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주요 출입구에 보안근무자를 배치하고, 매장 순찰을 강화했다. 폐쇄회로(CC)TV 상황실 모니터링을 강화해 거동 수상자에 대한 실시간 감시 체계도 구축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점포별 안전 요원에게 삼단봉 등 안전용품을 지급하고, 출입구나 고객 밀집지역 등을 중심으로 순찰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또 고객들이 안전 요원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조끼를 착용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했다.

폭염 등 대외 변수에 더해 경기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하반기 경기 회복 전망이 나오지만 반도체 등 주요 업종에서 기업들이 기대 이하의 실적을 기록하며 반등이 더딜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모바일용 칩 제조업체인 퀄컴은 스마트폰 시장 침체로 2분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52%(37억3000만 달러→18억 달러) 줄었다. 애플은 2분기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한 818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3개 분기 연속 매출 하락세를 보였다.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 인플레이션, 미·중 갈등, 중국 경기 회복 등의 변수도 기업들의 고민을 가중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 시기에 폭염까지 겹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 대책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묻지마 살인’으로 당분간 소비심리가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며 “전통적으로 8월은 소비 비수기인데 폭염에 실내로 ‘몰캉스(쇼핑몰+바캉스)’ 오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길 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최은경·최선을·김수민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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