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기독교 국가가 된 이유 궁금했죠”

양민경 2023. 8. 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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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인 앨리슨 헤이가 대만 국립중산대 교수, 10여년 간 6·25전쟁과 한국 기독교 연구

“한국은 현재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서 기독교 영향력이 가장 큰 국가 중 하나입니다. 불교와 유교, 샤머니즘 등 전통 종교가 강세였던 한국에서 100여년 만에 기독교가 주류가 된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카이인 앨리슨 헤이가(51·사진) 대만 국립중산대 교수가 1998년부터 10년간 6·25전쟁과 한국 기독교를 연구한 이유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6·25전쟁과 미국 선교사’(북코리아)는 헤이가 교수의 박사 논문 ‘한국전쟁의 간과된 측면’(An Overlooked Dimension of the Korean War)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평화한국(대표 허문영)·한국정치외교사학회(회장 박명수)가 주관한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콘퍼런스’ 발제자로 내한한 헤이가 교수를 최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홍콩대를 거쳐 미국 윌리엄앤메리대 대학원서 미국학을 연구한 그는 의도치 않게 6·25전쟁과 한국 기독교 연구를 시작했다. 중국 반외세 운동인 의화단 운동과 미국 선교사를 논문 주제로 정하고 자료를 찾다 미국 감리교가 조선에 파송한 헨리 아펜젤러(1858~1902)를 다룬 논문을 발견한 게 계기다.

“수많은 미국 선교사가 정부와 협력해 중국에서 활동했음에도 국공내전 후 공산당의 집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로써 미국의 중국 선교도 무참히 끝났지요. 한국은 달랐습니다. 미국 선교사는 6·25전쟁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이전과 이후, 미 군정 시기 한국의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두 국가의 사례를 보며 세계 냉전 역사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무엇인지, 당시 동아시아 주요 국가인 중국 홍콩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왜 기독교가 번성했는지 대해 궁금증이 일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헤이가 교수가 최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콘퍼런스' 좌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평화한국 제공

그의 연구는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이 아닌 한국 내 기독교의 영향력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헤이가 교수는 논문에서 개화기 당시 조선의 외교 관계와 일제강점기 및 미 군정기 남북한 상황, 종교적 반공주의 발흥과 6·25전쟁 중 미국 선교사의 활약 등을 고루 다뤘다. 주로 미국 주요 교단과 교회, 국무부와 대통령 기록보관소 등에서 얻은 자료를 참고했지만 연세대와 국회도서관 등 국내를 방문해 얻은 자료도 여럿 활용했다.

미국학을 전공한 외교사학자인 그는 일제강점기가 아닌 6·25전쟁을 한국 기독교 세력 확장 기점으로 꼽는다. 헤이가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한국 기독교가 민중의 지지를 얻고 규모도 커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제가 주목하는 건 교회의 영향력”이라며 “일제강점기엔 신사참배로 한국교회가 분열됐다. 부역자 논란으로 갈라진 교회가 하나로 뭉칠 수 있던 건 ‘공산주의’란 공공의 적이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방 후 미 군정기엔 미국 선교사나 기독교인이 주요 보직에 등용되면서 기독교 영향력은 더 확장됐다. 헤이가 교수는 “이런 가운데 발발한 6·25전쟁에서 이뤄진 미국 선교사의 참전과 구호 활동은 전시와 전후 한국교회의 생존을 견인했다”고 했다. 또 “이들은 휴전 이후에도 한국 사회 재건에 도움을 줌으로써 한국교회의 성장과 영향력 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책에는 6·25전쟁 막전 막후에 활약한 무명의 미국 선교사 행적도 적잖이 등장한다. 이들은 남한 곳곳에서 군인으로 참전 중인 동료 선교사의 편지를 감리교·장로교 등 주요 교단과 유력 언론, 세계교회협의회(WCC) 등에 전달하며 구호 요청에 나섰다. 미국 선교사의 선전(善戰)을 기록했다고 해서 미국 찬양 일변도로 기록된 건 아니다. 책에는 노근리사건 등 미군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 기록도 가감 없이 담겼다.

헤이가 교수는 한국을 ‘제3의 고국’으로 부를 정도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홍콩대 재학 당시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 한국인 선교사를 만나 회심해서다. 1994년부터 연구 등으로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에게 최근 미·중 패권 갈등 속 한반도 평화 방안에 관해 물었다. 헤이가 교수는 “평화를 이루는 방법으론 ‘유화’와 ‘억제력’이 있는데 저는 ‘친억제력파’”라며 “이것이 냉전과 6·25전쟁을 연구하며 깨달은 결론”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동아시아, 특히 남한 방어에 있어 미국이 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이 6·25전쟁 발발 원인 중 하나라고 봤다.

그는 “김일성이나 푸틴 등 독재자는 보통 자국 군사력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타국의 의도를 잘못 판단한다. 반대하는 목소리를 겪어본 일이 드물기 때문”이라며 “상대방이 착각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명확한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한국 정부는 미국을 향해 분명한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교회는 정부와 달리 인권 원칙을 지지하며 북한과 접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헤이가 교수는 “한국교회는 인민의 안녕을 위해 스스로 개방하도록 북한 정부를 설득하는 비정부기구(NGO)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교회와 대만교회를 향한 일본 정부의 정책을 비교·연구한다. 아시아 내 분단국가 지도자인 한국의 이승만과 중국의 장제스, 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연구도 조만간 착수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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