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남의 효도법, 이렇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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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아 기자]
한동안 왕래가 없던 옛 직장 후배 하나가 얼마 전 점심 모임에 나타나 홀로 사시는 노모 이야기를 들려줬다.
80대 후반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계시는 어머니는 그와 '국이 식지 않을 거리'에 살고 있단다. 그의 두 남동생은 직장 관계로 각각 먼 남쪽 도시에 흩어져 사는 중. 장남이자 어머니 집 가까이 사는 그가 병 간호에 앞장서게 된 배경이다.
후배는 어머니를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입안이 헐어 맵고 짠 음식을 드실 수 없는 어머니께 채소와 고기를 갈아 넣은 죽을 끓인다.
▲ K-장남의 효도 아들과 며느리가 각자 자신의 부모를 돌보거나 방문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게 요즘의 효도 풍속이고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큰 책임을 진 장남의 생각도 바뀌는 것 같습니다. |
ⓒ 정경아 |
함께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 대신 방문 효도 해드립니다
암 발병 직후 후배의 어머니는 그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싶어 하셨단다. 하지만 그는 가족과 의논 후 어머니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아내의 건강이 걱정됐기 때문. 아픈 어머니의 병수발로 몸이 약한 아내마저 힘들어질 게 분명했고, 가족 모두가 입을 피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어머니는 "야속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지만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대신 그가 택한 건 수시로 찾아뵙는 방문 효도. 출퇴근 간병인과 함께 어머니의 세끼 수발과 병원 출입을 돕고, 일상의 자잘한 문제를 해결해 드리는 스타일이다. 어머니가 사는 단독주택의 보일러나 TV 리모컨이 고장 날 경우, 어머니는 무조건 큰 아들을 호출하신다. 그는 대개 어머니 집으로 달려가지만 때로는 관련 기술자에게 방문 수리를 요청해 문제를 해결한다. 어머니도 두 번째 방식에 적응하셨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지 않겠다는 그의 결정을 못마땅해 하던 두 동생들도 요즘엔 "참 잘 된 일"이라고 그에게 말한단다. 어쩌면 길게 이어질 어머니의 투병을 지원하기에 가장 지속가능한 방식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게 된 결과다. 어머니의 병 수발 비용은 3형제가 공동 부담하기로 합의했고 잘 지켜지고 있단다.
또 다른 후배는 4남매 중 맏이 겸 유일한 아들. 올해 초 그는 내년에 백세가 되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단다. 크고 작은 병으로 몇 차례 수술을 견뎌내신 어머니는 화장실 출입이 불편해 진 상태. 그는 십 여 년 간 모셔온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문제로 작년 한해 심하게 고민했다. 반대해 오던 여동생 셋이 결국 오빠인 그의 결정에 찬성한 건 후보 요양원들을 방문한 후의 일.
시설도 괜찮고 거주민들의 평점도 좋은 요양원 중 어머니가 직접 요양원을 선택했다. 당번제로 매주 번갈아 찾아뵙는 4남매의 정성이 입원 초기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의 회복을 도왔다는 게 그의 평가다.
"예전에 부모님들의 평균 수명이 70세 정도였던 시대엔 모시고 사는 효도가 조금 쉬었을 지도 몰라요. 부모님들이 돌아가실 때, 아쉽고 섭섭한 마음도 훨씬 진했을 것 같아요.
유병 장수 시대인 요즘엔 부모님의 병간호에 매달리다가 경제적으로나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 아들·며느리와 딸의 사례를 자주 보게 돼요. 어려운 시절, 힘들여 자신을 키워 준 어머니와 아버지의 은혜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더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의 말처럼 부모님의 노후가 길어지는 추세인 요즘, 60대와 70대 노인이 80대와 90대 부모를 돌보는 '노·노 케어' 유형도 늘어나고 있다.
방문 효도의 달인이 된 후배가 말했다.
"아들인 제가 부모님 수발을 며느리인 제 아내에게 맡기는 게 점점 더 미안해지더라고요. 장인 장모님에겐 그다지 신경을 못 써온 주제에 말이죠. 퇴직한 후엔 어머니의 불평불만 화살을 제가 맞으면서 아내를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예요. 그래서인지 결혼생활 내내 고부 갈등에 찡그리던 아내가 요즘은 제게 자주 웃어줘요. 진작 제가 이 부분을 해결하려고 뛰었어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K-장남이 변하고 있다
남북관계보다 어렵다는 대한민국 고부관계에 무력한 방관자였던 입장을 벗어나 고부간 현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말하게 되기까지, 마음고생을 꽤나 했던 모양이다.
사실 K-장남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건 부모님 입에서 '불효자'란 소리를 듣는 게 아닐까. 이를 개의치 않고 "며느리와 아들에게 예의를 지켜 달라"고 요구한 후배의 용감한 행동에 어머니와 아내는 각각 다른 충격을 받은 것 같다는 후배의 이야기다. 가족 내 갈등의 조정자 겸 당사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이의 지혜로운 역할 수행, 멋지다.
내 먼 친척 동생인 또 다른 이는 1남 3녀의 막내이자 외아들로 40대 중반이다. 일찍 이혼한 어머니는 4남매 양육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결혼 후 착한 아내와 함께 병약해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하지만 몇 년 전 그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됐을 때, 아이들 양육과 시어머니 병수발을 맡은 아내가 힘들어했다. 80대 중반 어머니의 파킨슨 증세가 심해지신 후 거동이 불편해진 까닭이다.
그의 누나들 셋이 나섰다.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셔온 손아래 올케를 평소 칭송해 마지않던 그녀들은 어머니를 1년씩 돌아가며 모시기로 결의했단다. 덕분에 어머니는 제주도 바닷가 셋째 딸네 집과 분당, 서울의 첫째, 둘째 딸 집을 오가며 지내고 계신다고 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골고루 나눠 받은 딸들이 자신들의 책임의무를 다하려 애쓰는 모습은 친척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부모의 노년을 어떻게 지키고 보살펴야 하는 지에 대해 신선한 영감도 줬다.
나는 가끔 대한민국 장남들의 평균 수명이 둘째 아들,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들보다 짧은 게 아닐까 걱정했다. 그런 통계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온 집안의 기둥으로 떠받들려 자라온 내 또래 K-장남들. 보험과 연금이 없었던 시절, 장남은 부모의 노후 연금으로 여겨졌다. 장남에게 투자를 집중한 이들이 많았던 배경이다.
장남들은 동생들에 비해 그만큼 부모에게 진 빚을 실감하며 자라났을 터. 부모의 노년에 대한 책임의무감은 평생 장남을 따라다닐 것 같다. K-장남 스트레스의 8할이 바로 이 부분. 부모 재산에 대한 상속 지분이 법적으로 균등하게 된 오늘에도 장남을 향한 부모의 '정신적 정서적 기대'는 줄어들지 않는 것인가. K-장남 또한 다른 형제들에 비해 무거운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내 또래 친구들은 말한다. 베이비부머인 우리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 그리고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하지 않는 첫 세대라고. 부모님의 장수시대를 응원하면서 스스로의 노년을 챙겨야 하는 우리의 여정, 결코 만만치 않다. 각자 어깨에 맨 짐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불꽃 노년을 구가하는 명랑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숙제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역할 수행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K-장남들에게 최고로 깊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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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chungkyu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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