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호텔 안도?…'잼버리 철수' 英·美 엄마들 "850만원 악몽" 분노
폭염에 대한 부족한 준비 등 열악한 환경 탓에 '2023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현장에서 철수한 영국·미국 대원들의 부모들이 철수 이후에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대회조직위원회의 부실 운영으로 잼버리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 물러났는데, 서울의 호텔조차 불편하다는 자식의 하소연을 듣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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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희생해 보냈는데 악몽"
16세 아들을 이번 잼버리에 보낸 한 영국 엄마는 가디언(현지시간 5일 보도)에 "5일 퇴영해 서울의 호텔로 갔다는 소식에 안도했는데, 호텔도 침대가 부족해 바닥에 잘 수도 있다고 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BBC방송에 따르면 5일 서울에 도착한 영국의 일부 대원들은 호텔 방 하나에 5명씩 묵고 있으며, 약 250명은 서울의 한 호텔의 연회장에서 잠을 잤다.
이 엄마는 그러면서 "(아이의 말로는) 잼버리 야영장은 매우 덥고 화장실은 지저분했다"며 "폭염에 활동이 취소돼 너무 심심해 구멍을 팠다고 했다"고 밝혔다. 또 "스카우트의 모토는 '준비하라'인데 한국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며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고 비판했다.
"참가비가 너무 아깝다"는 불만도 쏟아졌다. 미국 버지니아주(州)에 사는 크리스틴 세이어스는 "17세 아들 코리를 잼버리에 보내기 위해 6500달러(약 850만원)를 지불했다"며 "아들은 그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 참가를 위해 가족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이어 "그런데 아들의 꿈이 악몽이 됐다"며 "우린 그 돈으로 훨씬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고 후회했다.
한 영국 스카우트 지도자도 스카이뉴스에 "(폭염에) 1시간마다 물 1ℓ를 마시라고 했는데, 3분의 1 정도가 깨진 물병을 받아 물이 샜다"며 "돈을 지불한 만큼의 경험을 얻지 못하고 떠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또 다른 스카우트 지도자는 "아이들은 조직위원회의 준비 부족으로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가 낭비된 것에 속상해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여학생 부모들은 특히 불결한 환경에 경악했다. 영국 한 대원의 엄마는 5일 BBC와 인터뷰에서 "16세 딸에게 멋진 인생 경험이 될 줄 알았는데 생존 임무로 바뀌었다"며 "딸은 샤워실과 화장실이 끔찍했다고 말했다. 쓰레기와 반창고, 머리카락 등으로 배수구가 막혀 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황을 견디지 못한 한 영국 대원의 부모는 "아예 영국으로 조기 귀국하라고 말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조기 퇴영 아쉬워…돌아갔으면"
17세 딸을 보낸 영국 엄마는 BBC에 "딸이 다쳤는데 뛰어난 수준의 치료를 받았다"며 "야영지를 나와 호텔로 가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딸이 가슴 아파했다"고 전했다. 15세 딸을 보낸 영국 엄마도 "아이들이 행사가 일찍 끝나서 모두 망연자실했다"고 전했다.
개선된 잼버리 현장 상황에 만족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스페인·벨기에·프랑스 등에서 온 일부 스카우트 대원들은 BBC에 "찬물과 선풍기, 그늘 장소 등이 제공돼 상황이 나아졌다"면서 "야영지에 남아있을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스페인에서 온 16세 소녀는 "행사 첫날(1일) 여동생이 폭염으로 인해 병원에 실려 갔지만 지금은 회복돼 상태가 좋아졌다"면서 "상황이 나아졌는데, 영국 등 일찍 나간 친구들과 계속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잼버리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4년마다 개최하는 청소년 야영 축제로, 전 세계 청소년들이 한데 모여 야영하면서 여러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서로 교류하는 행사다. 세계 최대의 청소년 국제 행사로 꼽힌다.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대회에는 158개국 청소년(만 14~17세) 스카우트 대원 3만여명과 지도자·운영 요원 등 4만3000여 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폭염과 열악한 환경으로 영국(4400여명), 미국(1500여명), 싱가포르(60여명) 등 3개국 6000명가량이 철수하기로 하면서 150개국 3만7225명가량이 남게 됐다. 독일(2200여명)과 스웨덴(1500여명)은 건강 보호와 음식, 위생 등 많은 부분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며 야영장에 잔류한다고 5일 밝혔다.
주최 측이 받은 참가비는 1인당 약 900달러(약 120만원)지만, 항공료 등을 포함하면 실질적인 참가비는 수백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폭염에 따른 온열 질환자 속출을 막기 위해 의료 인력을 추가로 배치하고 냉방버스·그늘막 등을 제공했다. 또 화장실·샤워장 청소에 700명 이상 인력을 투입하는 등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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