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건 다 타는 시각장애인…에버랜드와 9년째 재판, 왜
지난 2018년 10월 서울중앙지법은 “에버랜드가 시각장애인들에 대해 탑승제한을 한 것은 장애인 차별 행위”라 했다. 하지만 아직 에버랜드 ‘어트랙션 안전 가이드북’엔 ‘시각적으로 장애 있으신 분들은 이용이 제한된다’는 문구가 여러 차례 나온다. 2021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은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가 시·청각 장애인이 영화관람을 할 수 있도록 편의 제공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 달라진 것은 없다. 에버랜드 상대 소송은 항소심, 영화관 상대 소송은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두 사건의 원고인 김준형씨와 그를 대리하는 김재왕 변호사를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시각장애인이다.
Q : 에버랜드 소송은 2015년 6월, 영화관 소송은 2016년 2월 시작했는데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렇게까지 길어질 거라 예상했나.
A : 김재왕 변호사=이렇게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소 제기 들어가면 에버랜드든 영화관이든 협상이나 조정을 통해 자발적으로 문제를 시정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했는데, 소송이 시작되니 완강하게 다투게 됐다. 재판부에서는 화해를 시키고 싶어했으나 모두 결렬됐다. 영화관에선 비용 문제가 컸고, 에버랜드에서는 그래도 T익스프레스와 롤링엑스트레인은 안 된다고 해 조정이 성립될 수 없었다.
Q : 재판이 길어지는 이유는 뭔가.
A : 김 변호사=유사한 소송이 제기돼 결론이 나온 건이 없다 보니 입증하거나 법리적으로 판단하는 데 있어서 재판부가 좀 더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고, 판결 내리기가 부담스러워 하는 것도 있지 않나 싶다. 에버랜드 항소심의 경우, 피고(에버랜드) 쪽에서 1심 감정에 오류가 있다고 하면서 다시 감정을 받아보겠다고 했고, 그 과정 중에 코로나19로 인해 지연된 측면도 있다.
Q : 1심에서 에버랜드로 현장 검증도 다녀오고 다 한 것 아닌가. 항소심에선 또 감정을 했나.
A : 김 변호사=현장 검증은 비상대피 상황을 살피러 간 것이었고, 감정은 놀이기구를 탔을 때 받는 충격량에 대한 것이었다. 피고 쪽에선 동일한 탑승자라도 시각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받게 되는 충격이 다르다고 주장해 왔다. 1심에서 결국 양자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긴 했는데, 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서 2심에서 재감정을 하자고 한 것이다. 그래도 이제 다음 달 기일에 종결하고 올해 안엔 선고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Q : 시각장애인이 놀이기구를 타는 게 여전히 위험하다는 것인가.
A : 김준형씨=에버랜드 측에선 처음에는 안전을 이유로, 만일의 경우 대피가 불가능할 수 있어 탑승 제한을 하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현장 검증을 간 건데, 너무 잘 돼 있었다. 철망도 잘 돼 있고 계단만 따라 내려가면 되고 안전요원들이 안내해주신다. 비상대피 상황에 대한 부분은 그렇게 해소가 된 것 같은데, 이젠 눈이 안 보이면 놀이기구 탈 때 여기저기 부딪혀 물리적으로 가해지는 충격이 크다며 안 된다고 하고 있다.
Q : 실제로 놀이기구를 타면 충격이 있나.
A : 김씨=저는 놀이기구 타면 열 번씩도 타는데, 뇌진탕도 없고 근육통도 없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에버랜드가 주장하는 검증이 이해가 안 된다. 재판 중에도 나왔던 우스갯소리인데, 누가 놀이기구를 눈 부릅뜨고 타느냐는 거다. 비장애인들도 놀이기구 탈 때 무서워서 다 눈 감고 타지 않나. 저는 눈이 안 보이는데도 눈 뜨고 못 탄다. 앞이 보이냐 안 보이냐보단, 손잡이를 안 잡고 타거나 자장면을 먹으면서 타는 게 더 위험하지 않은가.
Q : 어떤 놀이기구를 좋아하나.
A : 김씨=무서운 건 다 탄다. T익스프레스는 세 번은 타는 것 같다. 에버랜드는 장애인인 게 들키면 못 타는데, 또 아닌 척하고 태워주면 탄다. 에버랜드에서 제한하는 7개 놀이기구 중에는 범퍼카도 있다. 범퍼카는 아기들도 태우지 않나. 범퍼카가 아니면 사실 저희는 운전해 볼 기회가 없지 않나. 롯데월드에는 아틸란티스, 자이로드롭, 혜성특급, 프렌치레볼루션 등 무서운 건 다 탄다. 시각장애인들은 활동지원사와 같이 다니는데, 같이 간 활동지원사가 무섭다고 하면 못 탈 수밖에 없는데, 롯데월드에서는 안내인을 붙여줘 같이 탈 수 있도록 한다고 들었다.
Q : 영화관 소송은 1·2심에서 이겼는데 곧 결론이 나는 건가.
A : 김 변호사=대법원에 올라가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 원·피고 어느 쪽에 더 유리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파기환송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항소심에서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 횟수와 장소 등을 나름 정했는데, 이 범위에 대해 원·피고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 상고했다. 저희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건 개방형(모든 화면 해설이 스크린과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방식)은 횟수의 제한이 필요할 수 있어도 장소의 제한은 불필요하고, 폐쇄형(장애인에게 개별 기기를 제공해 해설이 기기를 통해 나오는 방식)은 장소가 한정될 순 있어도 횟수 제한은 불필요하다고 보는데 항소심에선 두 가지 방식을 뭉뚱그려 횟수와 장소를 모두 제한했다.
Q : 지금도 개방형 영화 상영은 하고 있지 않나.
A : 김씨=조금 전 범죄도시3를 개방형 화면해설로 볼 수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온 지 좀 됐고, 이미 온라인에 화면해설 영화가 올라와 저는 이미 봤다(범죄도시3는 5월 31일 개봉했으며 인터뷰는 7월 31일에 이루어졌다). 상영관도 강변, 구로 등으로 한정돼 있고 시간대도 화요일 저녁 7시, 목요일 2시, 토요일 11시로 제한적이다. 칼퇴근이 가능하거나, 백수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볼 수 있다. 영화관에 가면 줄을 서 순서대로 자리를 주는데 앞자리부터 채우는 게 아니라 사이드 자리부터 준다. 비장애인들도 현장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자리는 비장애인을 위해 남겨두는 게 아닌가 싶다.
Q : OTT는 어떠한가.
A : 김씨=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화면해설과 자막해설이 달려 나오고, 한국어로도 다 나온다. 영화는 어떤 것은 해설이 있고 어떤 것은 없다. 국내 OTT도 재밌는 것이 많은데 화면 해설이 없다. 그럴 땐 유튜브에서 리뷰하는 영상을 먼저 보고 드라마를 보는데, 그러면 이해가 잘 된다. 하지만 가끔 영화관도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청각장애인도 큰 화면으로, 시각장애인도 좋은 스피커를 통해 즐기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럴 땐 그냥 영화관에 가기도 한다.
Q : 영화 관람, 놀이기구 탑승 외에 하고 싶은데 잘 못 하는 것이 있나.
A : 김씨=제일 하고 싶은 게 수영이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장애인 시설이 있는 수영장이 고덕동에 있는데, 그곳을 제외하면 보호자를 동반해도 가기 어렵다. 수영 전후로 샤워를 해야 하는데 활동지원사 여성 비율이 높아 남성 활동보조인을 구해야 하는데 쉽지 않고, 이것 때문에 활동지원사를 바꿀 수도 없다. 헬스장은 들여보내 주는 곳을 ‘뚫어야’ 한다. 집이 여의도인데 노원에 있는 헬스장에 가는 사람들도 있다.
Q : 어렵고 긴 소송을 수년째 계속해오고 있는데, 앞으로 바라는 점은.
A : 김 변호사=소송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피고들이 생각하는 ‘고객’의 범위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인식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장애인들도 고객 중 일부니 이런 고객에겐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미국에서는 OTT서비스가 인기를 끌며 영화관 수익성 떨어지니 고객 확대 측면에서 영화관에서 자발적으로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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