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불곰' 파블로비치, 헤비급 뒤흔든다
[김종수 기자]
▲ 커티스 블레이즈를 타격으로 압박하는 세르게이 파블로비치(사진 오른쪽) |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
UFC 최강의 하드펀처를 꼽으라면 일단 헤비급으로 먼저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가장 무거운 체급답게 말도 안되는 파워를 갖춘 선수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맷집이면 맷집, 파워면 파워! 그야말로 탈인간급 터프가이들의 전쟁터다. 그런 헤비급에서도 파괴력으로 악명 높은 선수들은 이른바 '괴수'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헤비급에서 한 방으로 임팩트를 남긴 선수로는 케인 벨라스케즈, 브록 레스너, 주니오르 도스 산토스와 함께 2010년대 초반을 후끈 달궜던 '해머펀치' 셰인 카윈(48·미국), 진화한 밥 샙으로 불리는 '더 테러리스트' 데릭 루이스(38·미국) 그리고 현재 복싱쪽으로 떠나 있지만 역대 최강의 괴물로 불리기에 손색없는 전 챔피언 '포식자' 프란시스 은가누(37·카메룬) 등을 들 수 있다.
하나같이 한 방의 위력이 무시무시했다. 경량급의 놀라운 스피드와 테크닉 공방전도 멋있지만 단 한 번의 타격만 잘못 허용해도 그대로 경기가 끝나버리는 거구들간 대전 또한 아드레날린을 들끓게 한다. 때문에 마니아가 아닌 일반 팬들에 대한 접근성에서는 헤비급이 단연 최고다. 단순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을 주는 것을 비롯 대부분 경기가 바로바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체급은 몰라도 헤비급에서는 좀처럼 지루한 경기가 나오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현 헤비급 랭킹 3위 세르게이 파블로비치(30·러시아)는 헤비급을 대표하는 간판캐릭터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다. '헤비급은 파워다'는 말을 입증하듯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불곰을 연상케하는 듬직한 체격(191cm·118kg)에서 뿜어져나오는 주먹에 걸리면 대부분 상대는 그대로 전투불능 상태에 들어가버린다.
단순히 한 방의 위력만 센것이 아닌 앞손 잽이나 여러가지 훼이크 동작으로 빈틈을 찾아내고 기회다 싶은 순간 적중률 높은 강펀치를 빠르게 꽂아넣는다. 난타전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던 루이스를 천천히 압박하다가 엄청난 펀치러시로 1라운드 초반에 박살낸 것이 대표적이다. 사모안계 파이터 타이 투이바사(30·호주)같은 경우 탄탄한 맷집과 돌주먹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좋은 승부가 기대됐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조건에서는 파블로비치와 충분히 해볼 만했다. 하지만 파블로비치는 단순한 하드펀처가 아니다. 자신은 정타를 넣으면서도 상대의 공격은 흘려내듯 피해내는 감각이 탁월하다. 투이바사는 압박해 들어오는 파블로비치에게 용맹하게 맞불공격을 냈지만 대부분 허공을 갈랐다. 반면 파블로비치의 공격은 투이바사에게 계속해서 들어가면서 결국 1라운드 54초 만에 승부가 결정되고 말았다.
가장 최근(4월)에 있었던 헤비급 4위 '면도날' 커티스 블레이즈(32·미국)전 승리는 파블로비치가 대권을 노리기에 손색없는 파이터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6연속 1라운드 KO(TKO)승을 거두며 더 이상의 랭킹전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경기력으로 입증했다. 팬들의 반응 역시 뜨겁다. '하얀 은가누가 등장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분위기다.
▲ 현 헤비급 챔피언 존 존스 |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
하지만 파블로비치는 루이스를 상대로도 1라운드를 넘기지 않았다. 초반 블레이즈의 오른손 카운터에 고전했으나 오버핸드 훅으로 녹다운을 얻어내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후 간결한 잽 선제타를 넣으며 대미지를 누적시킨 후 연타를 몰아쳐 마무리했다. 6연속 1라운드 녹아웃 승리는 UFC 헤비급 역사상 최초다. 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아이스맨' 척 리델(53·미국)의 7연속 기록도 눈 앞에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6연승까지 걸린 경기 시간이다. 불과 12분 17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1경기 평균 2분 3초 정도다. 승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파블로비치는 "솔직히 말하면 5라운드 전체를 소화하려고 준비하고 나왔다. 하지만 블레이즈에게 충격이 들어간 것을 깨닫자 그렇게 오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UFC 헤비급 사상 최다 테이크다운과 최장 상위 컨트롤 시간을 자랑하는 블레이즈는 의외로 레슬링이 아닌 타격 전략을 들고 나왔다. 거기에 대해 파블로비치는 블레이즈의 루이스전 트라우마를 언급했다. 블레이즈는 2021년 루이스와의 경기 당시 테이크다운 시도를 하다가 어퍼컷 카운터를 맞아 실신한 바 있다.
때문에 파블로비치는 은가누, 루이스 등 하드펀처의 한 방에 두려운 기억을 가지고있는 루이스가 상체를 깊이 숙인 뒤 더블레그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고 판단했다. 타격전도 위험하지만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다 카운터를 허용하게되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루이스에게 하드펀처는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파블로비치의 현재 시선은 다음 타이틀전을 향해 쏠려있다. 현 챔피언 존 존스(35·미국)와 전 챔피언 스티페 미오치치(40·미국)의 타이틀전 승자를 기다릴 생각이다. 헤비급 1위 시릴 간(33·프랑스)은 지난 UFC 285에서 존스에게 허무하게 패한 바 있다. 때문에 4위 블레이즈를 이긴 파블로비치 혹은 얼마 전 성공적 복귀전을 가진 톰 아스피날(30·영국) 둘 중 한 명에게 다음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둘다 강력한 한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존스에게 위협적인 상대로 꼽히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파블로비치와 아스피날이 타이틀도전 자격을 놓고 진검승부를 벌일 가능성도 예상된다. 문제는 존스의 행보다. 존스는 라이트헤비급 시절부터 전적관리나 상대 파악에 대해서 매우 영악한 모습을 보여왔다.
방어전을 성공한다해도 현재 몸상태나 기량이 예전에 비해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미련없이 은퇴를 선택할 공산도 크다. 긴 시간 동안 월장에 대해 지나치게 신중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헤비급에서 오래 있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주최측에서는 최대한 존스를 붙잡아 두려고 애를 쓸 것이 분명하다.
'끝판왕' 은가누가 없는 상태에서 존스까지 나간다면 체급 내 무게감은 확 줄어들 것이다. 파블로비치나 아스피날 등이 이후를 이어갈 유력한 주역임은 맞지만 아직은 커리어, 인기 등 모든면에서 부족하다. 현재의 UFC에서 큰판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기량도 중요하지만 인기, 관심 등에서 오는 상품성은 필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후위기 대응법... 가스발전, 12년 후에는 작별해야 합니다
- 근대음악전시관? 화성시와 대한민국을 욕되게 하는 일
- 어느덧 데뷔 55주년, '가왕' 칭호 거부한 가수
- '세비야에 왜 왔을까' 후회, 하루 만에 바뀐 이유
- 육아휴직한 아빠는 이렇게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 "6천억 효과", "대회장 활기"... 의아한 '잼버리 띄우기'
- "서이초 진상규명 촉구" 10번 외친 유족... 4만 교사 눈물
- 전북지역 스카우트 "영내 성범죄 발생…조치 미흡해 퇴소"
- '분당 흉기 난동' 피해 여성 숨져… 피의자 혐의 '미수→살인'
- '돈봉투' 실명 보도에... 민주당 의원들 일제히 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