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나이 75세, 할머니들이 영화 찍겠다 나선 이유

이학후 2023. 8. 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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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작은정원>

[이학후 기자]

▲ <작은정원> 영화 포스터
ⓒ 아나레스
 
국제연합(UN)은 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7.2%)에 진입한 뒤 불과 18년 만인 2018년 고령사회(14.3%)로 들어섰다. 7년 뒤인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20.6%)로의 진입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노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배움과 도전이 젊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증가하는 추세다. 미술 교사로 평생을 살았던 아버지가 은퇴 후 인생의 꿈인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의 화가를 이루기 위한 도전을 그린 <몽마르트 파파>(2019), 70~80세 나이에 한글을 깨치면서 삶이 풍성해진 할머니들을 다룬 <시인 할매>(2018)와 <칠곡가시나들>(2019), 노인한글학교를 다니는 할머니들을 통해 그동안 문자로 기록하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은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2019)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지난 7월 1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작은정원>은 강릉의 구도심인 명주동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의 모임인 '작은정원'이 뜨거운 꿈과 열정을 갖고 영화 제작에 도전하는 과정을 쫓는다. 연출은 주민등록증 제도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제기한 <주민등록증을 찢어라!>(2001),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본질을 파고든 <더 블랙>(2018) 등을 연출한 바 있는 이마리오 감독이 맡았다. 그는 <무비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동안 만든 정치, 사회적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 작업과 달리, <작은정원>은 "힘을 뺀 편안한 작업"이었다고 밝힌다.

"2016년 '작은정원' 분들이 사진 찍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그래서 3년 동안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법을 수업했다. 그러던 중 그분들이 영화를 찍겠다고 하셨다. 마침 3년 동안 (사진) 수업을 하니 지겹고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서 그분들은 단편영화를 만들고 난 (과정을) 다큐로 담아보기로 했다."
 
▲ <작은정원> 영화의 한 장면
ⓒ 아나레스
 
<작은정원>은 데뷔작 촬영부터 영화제 수상, 그리고 차기작을 완성하는 시간을 기록한다. '작은정원'의 문춘희씨(1946년생), 김희자씨(1946년생), 박정례씨(1956년생), 김숙련씨(1939년생), 김혜숙씨(1945년 생), 고 최정숙씨(1939년생), 정옥자씨(1944년생), 최순남씨(1947년생)는 2019년 진행된 단편극영화 제작 수업으로 단편 영화 <우리동네 우체부>를 함께 만드는데 처음엔 카메라를 만지는 법이 낮설고 그 앞에서 연기한다는 사실을 어색하게 느낀다. 

어느새 무전기를 들고 액션을 외치거나 헤드폰을 낀 채로 화면을 응시하고 영상에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신경을 쓰는 전문가로 발전하는 평균 나이 75세 할머니들은 노년기에도 새로운 기술과 문물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독특한 우체부가 명주동 골목에 자리한 어르신들의 집을 차례차례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일들로 구성된 <우리동네 우체부>는 2020년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서 초청을 받고 서울노인영화제에선 관객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자신감을 얻은 '작은정원'은 2020년 진행된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 과정으로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으로만 구성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제작에 들어간다. 무엇을 찍어야할지 고민하던 할머니들은 산책하거나 미용실에 가고 요리하는 일상적인 풍경을 비롯하여 세상을 떠난 남편을 향한 그리움이나 자식에게 갖는 미안함 등 각양각색의 모습과 감정을 카메라 앞에 드러낸다. 이들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누군가의 아내, 엄마, 할머니가 아닌,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성장한다. 자신이 화면에 찍히고 그 영상을 다 같이 보는 과정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전에는 내가 없었어요. 상대방만 눈에 보이니 평생 상대방 위주로 살고 뭐든지 양보하고 섭섭한 일이 있어도 참고 살았죠. 그런데 화면에 내가 보이니까 내 마음도 보이게 된 거 같아요."
 
▲ <작은정원> 영화의 한 장면
ⓒ 아나레스
 
'작은정원'의 할머니들이 참여한 스마트폰 사진 수업, 단편극영화 제작 수업,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운영한 '인디하우스'는 강릉의 지역 영화인들이 모인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이들은 영화를 매개로 사람과 지역을 연결한다는 모토를 바탕으로 제작부터 배급에 이르는 영화 만들기의 모든 과정이 지역 내 협업을 통해 가능하도록 지원하여 지역 영화 생태계의 기반을 다지는 중이다.

'작은정원'의 할머니들이 만든 <우리동네 우체부>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이런 지역 영화인들과 협업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작은정원'의 할머니들이 노년에 지향할 수 있는 공동체를 보여주었다면 '인디하우스'는 지역 영화인들이 연대할 수 있는 공동체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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