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8배 수익 올려준 48마리의 '돼지배우'
[양형석 기자]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조사한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약 2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로는 약 1300만 명 정도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여전히 반려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이제는 '사랑하며 즐긴다'는 의미의 '애완'동물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을 정도로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반려동물의 종류는 여전히 개와 고양이가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려동물의 종류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개와 고양이, 토끼 같은 포유류부터 구관조와 참새, 병아리 같은 조류, 거북이와 도마뱀 같은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금붕어로 대표되는 관상어를 키우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도 있고 드라마를 보면 재벌가 사람들이 개인소유의 땅에서 말을 키우는 장면도 볼 수 있다.
▲ <매드맥스>의 조지 밀러 감독이 제작한 <꼬마 돼지 베이브>는 2억5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 UIP KOREA |
관객들 감동시키는 인간과 동물의 교감
이경규와 박세리, 강형욱 등이 출연하는 KBS의 <개는 훌륭하다>는 연예인들의 개 훈련사 도전기를 다룬 프로그램으로 4년 넘게 방송되며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동물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동물도 충분히 인간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과 동물의 이야기는 영화에서도 많이 다뤄지고 있는데 특히 영화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더욱 극적으로 교감하며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할리우드의 신사'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맡은 <하치 이야기>는 따뜻한 감성의 대학교수와 그가 기차역 플랫폼에서 발견한 길 잃은 강아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하치 이야기>는 10년 동안 기차역에서 주인을 기다린 하치의 정성과 헌신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하치 이야기>는 리처드 기어의 전성기 작품들만큼 높은 흥행을 하진 못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줬다.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짐 캐리 주연의 <파퍼씨네 펭귄들>은 아버지로부터 살아있는 펭귄을 유산으로 받은 주인공과 그 집안의 이야기를 그린 가족 코미디다. 가족 코미디 장르가 대부분 그렇듯 <파퍼씨네 펭귄들> 역시 펭귄과 함께 좌충우돌 소동을 벌이다 펭귄들과 정이 들고 펭귄들로 인해 가족 사랑도 새삼 깨달으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파퍼씨네 펭귄들>은 1억 8700만 달러의 성적으로 흥행에도 성공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한국에서 동물이 출연했던 대표적인 영화는 이제는 서른을 눈 앞에 둔 청년배우 유승호의 소년시절을 볼 수 있는 <마음이...>가 있다. '쌍천만 배우' 김향기의 연기 데뷔작이기도 한 <마음이...>는 김향기가 연기한 소이가 얼음에 빠져 익사하는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을 울렸다. 전국 104만 관객을 동원한 <마음이...>는 2010년 당시 신예였던 송중기와 성동일 주연으로 속편이 개봉해 70만 관객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물론 영화 속 모든 동물들이 언제나 사람과 교감하면서 뜨거운 정을 나누고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출세작이기도 한 <죠스>에서는 무서운 식인상어가 등장해 인간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특히 존 윌리엄스가 음악을 맡은 <죠스>의 시그니처 음악은 역대 공포영화들 중 가장 무서운 음악으로 꼽힌다. 1975년에 1편을 선보였던 <죠스>는 감독이 계속 바뀌면서 1987년까지 4편에 걸쳐 제작됐다.
▲ <꼬마 돼지 베이브>에서는 무려 48마리의 돼지배우(?)들이 베이브 역으로 출연했다. |
ⓒ UIP KOREA |
<꼬마 돼지 베이브>는 동네 축제의 경품으로 끌려 간 꼬마 돼지가 호겟(제임스 크롬웰 분)이라는 농부의 집으로 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영화다. <꼬마 돼지 베이브>는 3000만 달러의 썩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2억 5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사랑 받았다. 국내에서는 서울관객 5만 9000명에 그쳤지만 흥미롭고 감동적인 내용으로 EBS와 영화 관련 케이블 TV 등을 통해 수시로 방송되고 있다.
스타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스타감독이 연출한 것도 아닌 <꼬마 돼지 베이브>의 제작진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이름은 바로 제작과 각본에 참여한 조지 밀러 감독이다. 1979년부터 1985년까지 SF액션 대작 <매드맥스> 3부작을 연출했던 밀러 감독은 1992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휴먼 드라마 <로렌조 오일>을 연출한 데 이어 1995년에는 돼지가 주인공인 가족 드라마 <꼬마 돼지 베이브>의 제작과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제작비의 8배가 넘는 <꼬마 돼지 베이브>의 엄청난 흥행성적에 고무된 걸까. 밀러 감독은 1998년에 개봉한 <꼬마 돼지 베이브2>의 연출에 직접 나서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1편의 3배에 달하는 90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꼬마 돼지 베이브2>는 6900만 달러의 성적에 그치며 제작비조차 회수하지 못했다. 그리고 밀러 감독은 2006년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를 연출할 때까지 무려 8년의 공백을 가져야 했다.
CG가 아닌 진짜 돼지배우(?)를 캐스팅해 촬영했던 <꼬마 돼지 베이브>는 베이브 역의 돼지가 무려 48번이나 교체됐다. 촬영속도에 비해 실제 돼지들의 성장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른 성장으로 영화에서 하차한 돼지들은 영화 속 베이브 엄마처럼 도축장으로 끌려 가지 않고 농장에서 새끼를 낳고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제작사에서 촬영 전 돼지주인에게 "베이브를 연기한 돼지들을 절대 도축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꼬마 돼지 베이브>는 실제 조련사들의 훈련을 받은 동물배우들로 1차적인 촬영을 진행한 후 CG작업을 통해 눈매와 입모양 등에 생동감을 입히는 효과를 줬다. 그 결과 개봉 30년 가까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봐도 동물들의 표정이 상당히 생생한 편이다. <꼬마 돼지 베이브>에는 돼지뿐 아니라 개, 고양이, 양, 오리 등 다양한 동물들이 출연하는데 많지 않은 제작비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만들어냈다.
▲ 처음 출연을 꺼렸던 제임스 크롬웰은 <꼬마 돼지 베이브>를 통해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
ⓒ UIP KOREA |
<꼬마 돼지 베이브>는 아서 호겟이라는 농부가 동네축제 경품에 당첨돼 꼬마 돼지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호겟은 아내와 마찬가지로 베이브를 크리스마스 파티 때 상에 올릴 음식 정도로 생각했지만 베이브의 남다른 영특함에 점점 베이브에게 마음을 연다. 특히 고양이의 꾀임에 넘어간 베이브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때는 베이브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베이브 앞에서 열심히 춤을 추기도 했다.
농부 호겟을 연기한 제임스 크롬웰은 < LA 컨피덴셜 > <딥 임팩트> <아이, 로봇> <스파이더맨3>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등에 출연했던 198cm의 큰 신장을 자랑하는 배우다. 당초 크롬웰은 '동물들의 들러리가 되기 싫다'는 이유로 호겟 역할을 꺼렸지만 '영화가 잘 안되면 동물 탓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지인의 설득으로 호겟을 연기하게 됐다. 그리고 크롬웰은 <꼬마 돼지 베이브>를 통해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스미스 요원과 <반지의 제왕> <호빗>의 요정 영주 엘론드, <퍼스트 어벤저>의 레드 스컬 등으로 유명한 휴고 위빙은 양치기 개 렉스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 <꼬마 돼지 베이브>에 등장하는 사람과 동물을 모두 합쳐 가장 기구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렉스는 처음에는 베이브를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후반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베이브가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베이브를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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