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내 나는 매트리스가 휴전선까지 간 까닭

장혜령 2023. 8. 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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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다섯 번째 흉추>

[장혜령 기자]

 영화 <다섯 번째 흉추> 스틸컷
ⓒ 인디스토리
 
영화 <다섯 번째 흉추>는 버려진 매트리스에서 증오와 분노, 사랑을 먹고 자란 곰팡이의 생성 과정을 지켜보는 독특한 여정이다. 헤어진 연인의 매트리스에서 탄생한 곰팡이가 인간의 흉추를 탐하며 유의미한 생명체가 되려 한다. 아늑한 방에서 모텔로, 그리고 병원으로 도시에서 외곽으로 옮겨져 이름 모를 강에 종착한 매트리스의 오디세이다.
곰팡이는 숨죽여 매트리스에 도사리고 있다가 인간의 흉추를 먹고 점차 성장한다. 오랜 시간 옮겨 다니면서 비와 눈을 맞고 땀과 진액을 머금는다. 뒹굴고 떨어져서 너덜너덜해지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다.
  
 영화 <다섯 번째 흉추> 스틸컷
ⓒ 인디스토리
 
흉측한 곰팡이 크리처의 변태 과정이 압권이다. 습기를 머금고 있는 요즘 날씨, 얼마 전 요란한 장마와 폭우를 지난 대한민국의 지금과 매우 잘 어울린다. CG 없이 다양한 각도의 매크로 렌즈 촬영, 타임랩스를 통해 곰팡이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표현했다. 직접 만든 크리처는 뼈 모형, 돼지 껍데기, 저렴한 정육 부위를 이어 붙여 흉측하고 이상한 질감을 만들어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올해 가장 독특한 콘셉트의 영화 <다섯 번째 흉추>의 줄거리다. 딱 부러지는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영화는 추상적인 무언가가 곰팡이가 되고 점차 생명체로 자라나는 시간의 추적극이다. 감각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세계관을 선보인 박세영 감독은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3관왕을 시작으로 세계 유수 영화제를 돌며 화제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왜 하필이면 인간의 척추 중 다섯 번째 흉추일까. 독특한 제목에 대해 박세영 감독은 심장과 가장 가까운 뼈이며, 인간 뼈를 탐하던 곰팡이가 유일하게 침범하지 못한 게 다섯 번째 흉추라고 의뭉스러운 말을 전했다. 인간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매트리스에서 피어난 생명체가 증오, 사랑, 슬픔, 외로움, 친절을 배웠지만 중요한 마음을 갖지 못한 공허함이 몽환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경험에서 출발한 곰팡내 나는 여정
  
 영화 <다섯 번째 흉추> 스틸컷
ⓒ 인디스토리
 
영화는 박세영 감독이 영국으로 이민 갔다가 8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을 때 느낀 낯선 감정이 반영된 자전적인 이야기다. 반지하 자취 시절 매트리스와 곰팡이의 연결성을 보고 착안해 영화화했다. 각본부터 연출, 촬영, 편집, 색보정, 사운드, 디자인을 맡은 프로티언(protean)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미술원의 조형예술과 비디오아트 전문사를 졸업했다. 첫 단편 <캐쉬백>(2019), <호캉스<2021)을 연출했고, <다섯 번째 흉추>로 장편 데뷔했다. 차기작 <지느러미>를 편집 중이다. 주로 패션필름, 뮤직비디오, 사진 등의 작업을 이어왔다. 패션 브랜드 버버리, 생로랑, 루이비통 등의 브랜드 패션 필름도 연출한 주목할 만한 감독이다.

박세영 감독은 가난하고 추운 시절에 찍었지만 화면만큼은 가난의 티가 드러나지 않고 싶었다며 알렉사 아미라로 촬영했다고 밝혔다. 고화질에 담긴 기묘한 생명체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색채를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비주얼텔링리다. 그로테스크한 장면과 신비로운 음악의 콜라보는 복합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혐오스럽고 희한하게 생긴 곰팡이를 우렁각시라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형상으로 만들어 낸 박천규 감독의 단편 <팡이요괴>(2013)가 떠오른다.

매트리스는 끝없이 버려지고 주워지며 북쪽으로 항해한다. 서울의 강북구, 노원구로 이동하다가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경기도의 휴전선 부근까지 당도한다. 서울의 끝에서 외곽으로 밀려나던 매트리스는 남북 대치점에서 이동을 멈춘다.

기이한 경로만큼이나 실험적인 표현이 옴니버스 구성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 곰팡이에게 공격 당한 사람들 뼈와 살을 먹고 태어났지만 결코 이 세상에 환영받지 못할 존재의 처연함. 눅진한 타액과 피, 연인들의 사랑과 증오가 뒤엉킨 얼룩이 서려 있는 외로움이 65분 동안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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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혜령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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