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을 ‘완전히’ 잃기 싫었던 요코의 선택 [유경희의 ‘그림으로 보는 유혹의 기술’]

2023. 8. 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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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친구나 남편에게 파트너를 찾아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 여성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통상적으로, 그 여성은 남자 친구나 남편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싶은 경우일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는 자기 남자를 다른 여인에게 줘버리는 내용이 존재한다.

미노스 왕과 파시파에 왕비의 딸 아리아드네는 어머니가 황소와 관계해 낳은 반인반우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러 아테네에서 온 테세우스에게 첫눈에 반한 나머지,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그곳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아버지와 조국을 배반한 그녀에게 돌아온 건 테세우스의 배신. 이때 아프로디테는 낙소스섬에 홀로 버려진 채 망연자실하던 아리아드네 앞에 나타나 서슴없이 자신의 애인이었던 디오니소스를 소개시켜주고 결혼까지 하게 만든다.

그뿐 아니다. 아프로디테는 일부일처제 시각으로 봤을 때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제안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점지해준 사건이다. 불화의 여신이 던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고 쓰여 있는 황금 사과를 두고 세 여신이 다툴 때, 제우스에 의해 공을 넘겨받은 파리스는 고민에 빠지지만 너무도 쉽게 선택을 해버린다. 그는 아프로디테가 제안한 인간 여자 중 최고의 미녀를 선택했다. 최고의 미녀는 유부녀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였다.

아프로디테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인 만큼 사랑에 있어 자유인, 한마디로 폴리아모리(Polyamory·비독점적 다자연애 관계)의 화신이었다. 단순히 아름답고 향기로운 여신이 아니라 파괴와 음탕함의 여신이기도 했던 아프로디테는 사람들이 뜨거운 본능에 충실하도록 고무하는 한편, 크고 작은 경계를 넘어 관계 맺도록 자극하던 존재였다. 아프로디테 자신만 해도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했지만, 전쟁의 신 아레스와 사실혼을 유지하면서 자식을 넷씩이나 낳았다.

현실 속에서도 ‘내 남자의 연인 찾아주기’가 실재했다. 바로 오노 요코(1933년~)와 존 레논(1940~1980년)의 만년 이야기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존과 요코의 사랑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요코를 향해 뜨겁게 불타올랐던 존의 사랑은 5년쯤이 지나면서부터 차츰 진정되기 시작했다. 1973년 10월 레논 부부는 마침내 별거에 들어갔다.

당시 존 레논은 개인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최악의 상태였다. 마약 소지, 불법 체류, 정치적 입장 등으로 인해 이민국과 FBI, 법무부 같은 미국 정부기관과 충돌했다. 급기야 존이 거부하던 닉슨이 대통령에 재당선되자 그의 입지는 더욱 암담해졌고, 분노와 우울과 파괴 성향이 나타났다. 존은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졌고, 섹스에 탐닉했으며,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등 미성숙한 행동을 일삼았다.

요코는 언제나 불편한 분위기를 감지하는 데 민감했다. 존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존이 요코의 인생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를 되찾고 싶었던 요코가 생각해낸 것은 존이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사하는 것. 바로 연인을 소개해주는 일이었다.

(1) 틴토레토, 아리아드네와 아프로디테와 디오니소스, 1575년, 테세우스에 의해 버려져 낙소스섬에서 상심해 있던 아리아드네에게 자신의 애인 디오니소스를 소개시켜주는 아프로디테. (2) 개빈 해밀턴, 파리스에게 헬레네를 소개시켜주는 아프로디테, 1784년.
크레타 공주에게 자신의 애인 소개한 아프로디테

남편 비서를 남편 여자 친구로 낙점한 오노 요코

요코는 부부의 비서였던 메이 팡을 존의 여자친구로 점지했다. 1950년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 여성 메이는 주급 90달러를 받는 비서였다. 그녀는 ‘레논 부부의 제국’에서 가파른 출세의 사다리에 올라탔고, 마침내 부부의 개인 보좌관으로 임명됐다. 메이는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고, 부부는 그녀에게 깊은 신뢰를 보냈다. 사실 요코와 메이는 서로에게서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세탁부였던 다혈질적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된 채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메이와 부유했지만 부모에게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요코는 서로를 깊이 이해했다. 메이는 아주 지척에서 부부를 보좌했기 때문에 사업 문제든 개인적인 문제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그들과 공유했다. 서서히 막을 내리던 부부 관계도 메이에게는 비밀이 될 수 없었다. 요코는 메이에게 부부 문제가 심각한 위기라고 숨김없이 토로했다.

요코가 존에게 메이를 붙여준(?)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메이가 세상 물정과 남자를 잘 모르는 어린 여성이라는 점, 자기처럼 동양 여성이라는 점 등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요코가 존과 메이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눈치 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육체적인 것으로 해소했는데, 그 대상이 메이 팡이었던 것. 요코는 누구보다 빨리 이 사실을 감지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존의 불륜까지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요코는 메이에게 존의 요구에 응할 것을 요청하는 등 대범하게 대처했다. 존을 완전히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메이 팡은 존의 애인이 됐다.

(3) 오노 요코, 그리고 존 레논과 메이 팡의 연애 시절. (4) 1980년 살해당하기 전날 롤링스톤즈의 잡지 표지 촬영하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처음 메이가 맡은 역할은 존이 완전히 타락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감시자 역할에 불과했다. 메이는 정기적으로 존의 동태에 대해 요코에게 보고해야 했고, 이를 통해 요코는 존의 상태를 낱낱이 파악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진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자, 요코는 빠르게 조치를 취했다. 결국 오랜 결별 끝에 존은 관대한 사면을 받아 1975년 다시 두 사람의 집인 다코타하우스로 들어갔다. 이때 요코는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술과 마약을 끊고, 캘리포니아에서의 생활 방식을 버리라는 요구였다. 1968년 첫 만남 이후 늘 그래왔듯 언제나 주도권은 요코에게 있었다. 존은 다시 겸손하게 요코의 소망과 조건을 수락했다. 이후 아들을 낳은 요코는 당당하게 양육을 부탁했고 존은 그대로 따랐다.

이렇게 존이 ‘잃어버린 주말’이라고 불렀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메이 팡은 18개월의 애인 역할을 그만둬야 했고, 스스로 요코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노리개에 불과했음을 인정했다. 훗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메이는 “나는 처음부터 요코가 존과 나와 그녀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존은 요코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유경희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0호 (2023.08.02~2023.08.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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