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25%를 한국인이 쥔 미국 회사…타오른 '양자 컴퓨터' 테마 [바이 아메리카]
[한국경제TV 김종학 기자]
한국 연구진발 상온 초전도체의 진위 여부를 두고 전 세계가 들썩인 한 주가 지났습니다. 각국 물리학계에서 재현해보려 검증이 진행 중인 이 기술이 실현될 경우 크게 영향을 받게 될 산업 중 하나가 바로 양자 컴퓨터 분야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일들이 아주 작은 미시의 세계에서 일어난다고 하죠. 마치 불을 켜고, 끈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고, 출발했지만 동시에 멈춰있기도 하고,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일들이 말입니다. 마블 영화 주인공 중 하나인 앤트맨이 양자의 세계로 들어간 것처럼 그 작은 세계에서는 마치 OX 정답판이 뒤섞여 하나가 된 것 같은 상태가 존재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초고성능 컴퓨터라고 해도 기본 원리는 0과 1의 2진법 비트 단위로 작동하는 트랜지스터가 들어찬 프로세서, 일종의 0과 1의 스위치를 고속으로 차례대로 켜고 끄고 다시 켜고 끄는 식으로 수를 계산하고 복잡한 언어와 이미지를 생성하기까지 발전해왔어요.
이제 5나노 이하 단위까지 회로폭을 좁히고 손톱보다 작은 크기에 이 스위치들을 밀어넣었지만 물리적으로 한계가 다가오고 있죠. 마치 요즘처럼 더운 날 지옥철을 탄 것같은 상태가 컴퓨터 프로세서 안에서 일어난다고 상상하면 비슷할 겁니다. 그래픽 처리할 일 많아질 수록 당연히 열이 많이 나고, 전기 많이 잡아먹고, 작업시간도 길어집니다.
그런데 양자의 세계에서는 온-오프, 0과1 두 가능성이 동시에 발생하는 '큐비트'로 작동해요. 0과 1, 비트로 하나의 스위치에서 2가지 경우만 계산하던 기존 컴퓨터와 달리 00, 01, 10, 11를 한 번에 계산할 수 있습니다. 지금같은 집약도로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우주 전체를 설계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방대한 계산도 가능해집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계산할 양이 많아도 순서 기다릴 것없이 시험지 받자마자, 경기장에서 땅! 출발 신호내자마자 결승점에 도달할 정도로 빠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해요. 당연하게도 이렇게 제어할 수 있는 큐비트, 일종의 양자 스위치가 많아지면 RSA 공개키 암호 체계를 깨뜨려 보안 기술을 완전히 새로 쓰는 건 물론이고, , 신약 개발을 위한 설계, 자율주행의 상황 판단에 유리해지고,이들 미래 기술에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미국 뉴욕 주식시장에서 반짝이는 기업들을 들여다보는 바이 아메리카.
오늘은 지난주 전 세계 과학계, 투자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소식, 그리고 이 와중에 주목을 받은 테마, 양자 컴퓨터 이야기입니다.
한경글로벌마켓 유튜브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XaoD050VMfg
아직 산업 초기라 수익구조가 불안정한데도 이 뉴스 때문에 난데없이 주가가 갑자기 불붙었어요.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주장에 이번주 잠깐 세상이 뒤집힐 뻔 했죠.
저렴한 금속으로도 저항 없이, 자기장을 밀어내는 초전도체를 만들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 이미 노벨상이고 거대한 샹들리에 같은 냉각기도 필요가 없으니,이 소재를 이용한 컴퓨터, 반도체 개발은 다시 해야한다면서 말이죠.
팬데믹 기간에도 밈(Meme) 테마와 함께 주가가 크게 출렁였지만, 이번 주엔 아이온큐, 리게티 컴퓨팅, 퀀텀 컴퓨팅이 10~20%씩 큰 변동을 보이기도 했죠. 이 중에서도 한국인 투자자들이 테슬라, 빅테크 다음으로 좋아한 종목이 바로 아이온큐인데, 올해에만 5배 가까운 상승을 기록 중입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첫 투자한 양자컴퓨터 기업이면서 크리스토퍼 먼로, 한국인 김정상 교수가 공동 창업해 왠지 한국 회사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문제는 실적인데, 올해 초까지 양자컴퓨터 관련 기업들에 대해 긍정적 전망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아이온큐도 현지시간 지군 다음주 10일이면 2분기 실적을 공개하는데, 1분기까지 매출은 2배 가량 늘었지만, 운용비용이 증가하면서 순손실 2,733만 달러로 적자 규모가 6배 늘었구요.
지난달 주가가 꽤올라 시총이 39억달러 정도인데, 영업으로 현금 흐름을 이번 분기엔 회복했는지 따져가며 봐야할 기업이기도 합니다.
올해 기준 이 분야에서 마땅히 수익을 낸다고 볼 만한 회사는 애플리케이션 최적화를 돕는 디웨이브 시스템 정도였는데, 몇몇 월가 매출 전망이 깍인 건 부담스러운 부분이기도 해요. 과거 테슬라가 그랬듯이 아직 대부분의 양자 컴퓨터 연관 상장기업들은 그 폭발적인 가능성에 더 주목하는 것처럼 보이죠.
개발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지금까지 성능 면에선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아직 압도적입니다. 2018년까지 트랜지스터에 기반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는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서밋(Summit)'이었어요.
최근 화두가 된 방대한 언어, 기계학습, 인공 신경망 구축을 위해 설계된 건데, 전체 크기가 테니스 코트장 2개 면적에 IBM POWER 9 CPU, 엔비디아 GPU. 초고성능인 건 다 집어넣어서 187펩타플롭스, 초당 20경번 부동소수점 연산을 할 정도의 성능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이 기록을 넘보는게 양자 컴퓨터예요. 아직 일부 영역에서만 빛을 발하지만 호환성·범용성만 확보되면 대체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해요.
2019년 구글이 만든 첫 양자컴퓨터 시카모어(sycamore)는 53개의 큐비트로 슈퍼컴퓨터가 1만 년 걸려서 할 계산을 약 200초만에 해냅니다.
IBM도 같은해 27큐비트의 양자 프로세서를 만든 뒤 해마다 약 2배씩 성능을 개량해 지난해 11월 433 큐비트의 프로세서를 가진 오스프리(Osprey)를 내놨습니다. 올해 1천121개 큐비트를 가진 새 양자컴퓨터(콘도르·Condor)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하니, 제어 가능한 양자 비트 수에서 가장 앞선 성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초전도체를 이용해 큐비트로 불리는 양자비트 개수만큼 제어하는 기술을 구현 중인데, 문제는 0 K(켈빈), 즉 섭씨 영하 273도의 극저온 상태에서만 안정적으로 구현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이 때문에 앞에서 나온 샹들리에를 닮은 거대한 냉각기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데, 너무 크고 전기요금이 많이 들겠죠. 그래서 이거 말고 그냥 진공 상태에서 더 작고 효율적으로 양자 프로세서를 만들려는 연구도 활발합니다.
초전도체로 지금의 슈퍼컴퓨터를 완전히 대체하려면 넘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불량을 줄이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진공상태에서 이온을 붙잡아 전체 연산장치의 크기도 줄이고 레이저로 양자비트를 하나하나 뒤집어 제어하는 방식인데, 바로 아이온큐, 허니웰이 보유한 퀀티움 등이 쓰는 방식이예요. 콕 집어 스위치를 작동하는 방식에 가깝다보니 제어 수준에선 가장 정확도가 높지만 큐비트 개수로는 아직 29개, 2025년에야 64개 수준으로 IBM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다른 특허 연구도 활발한데 빛(광자)을 쏴 양자를 제어하거나 중성원자를 이용한 스타트업들까지 전세계에서 현재 약 200여개 기업이 경쟁 중이기도 해요. 안타깝게도 어느 특허를 살펴봐도 이들에 비해 두각을 보이는 한국기업은 아직 없습니다.
이 가운데 상장 주식은 대부분 미국, 주로 구글, IBM 등 빅테크 기업인데 이들은 워낙 주력 사업이 방대하니 양자컴퓨터 대표주로만 보긴 무리가 있습니다.
나머지 기업들은 언급한대로 디웨이브 시스템, 리게티 컴퓨팅, 아이온큐, 그리고 퀀텀 컴퓨팅 등인데 이슈를 따라 주가가 출렁입니다. 리게티 컴퓨팅은 마치 ARM이 프로세서 설계하듯이 양자컴퓨터에 쓰일 회로를 개발하는 회사인데, 80큐비트의 성능을 설계할 정도입니다.
이것만으로 눈에 띄는 기술이지만, 사줄 곳이 아직 많지 않아요. 지난 1분기까지 매출 220만달러, 영업적자 약 2,200만달러로 고군 분투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들어 주식시장을 요약하자면 기-승-전-인공지능, 아니 기-승-전 엔비디아였죠. 그 틈에 투자자들의 곁눈질에 들어온 테마가 양자 컴퓨터입니다. 그런데 '암호해독'만으로도 워낙 국가간 민감한 전략기술이고, 미국과 중국간 지정학적 갈등까지 겹치다보니까 특허 경쟁도 치열하죠. 한국도 뒤늦게 시작했고 유럽, 일본 등 나라마다 양자컴퓨터 1위 기업을 만들어 공들이려는 티도 팍팍납니다. 미국의 견제를 받아온 중국은 올해에만 19조원 정도, 5배 더 많은 돈을 베팅하면서 정말 머니게임이 벌어지는 중이구요.
이 덕분에 크고 있는 양자컴퓨터 기업들은 투자의견은 적지만 가능성으로 시장의 관심이 끊이지 않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상용화가 착실히 진행 중이고 규모면에서도 낙관적인 전망이 보이는 기술이라는 겁니다. 투자은행 코웬(Cowen)의 의견을 참고하자면 양자 컴퓨팅 하드웨어와 서비스 시장 규모가 연간 50%씩 성장할 전망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정리해보자면, 상상으로 여겨지던 우주급 성능의 양자컴퓨터가 조금씩 현실로 들어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투자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한편으로 생각해볼 만한 점은 누가 승자가될지 모를 양자컴퓨터보다 나은 대안도 있다는 겁니다. 누가 되었든 초고가의 양자컴퓨터 장비를 들여놓든 빌리든 써야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건 분명해 보입니다.
아직은 가능성을 탐구하고 과학계의 흥분을 일으키는 양자의 세계. 투자자들에게는 전세계 완성차 업체들이 경쟁하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다음 팬데믹을 대비하거나 알츠하이머 등의 완치를 위한 바이오 신약개발 등에서 지금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초격차로 벌리게 될 회사를 찾는 것이 어쩌면 더 쉬운 일일 것도 같습니다.
김종학기자 jhkim@wowtv.co.kr
Copyright © 한국경제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