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부터 美학교 변기 닦았다…바이든 때린 '1조 달러 칩의 왕' [후후월드]
“미국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를 팔지 않으면, 미국 빅테크 기업은 대체 불가능한 거대 시장(중국)을 잃고 엄청난 피해를 입겠지만, 중국은 결국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만들어 기술 자립을 이룰 것이다.”
젠슨 황(황런쉰·黃仁勳)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분야 대중(對中) 수출 규제와 투자 제한 등에 대해 “오히려 미국 기업의 손을 등 뒤에서 묶는 격”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황은 말로만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정부 방침 때문에 엔비디아의 고사양 칩(A100)의 중국 수출길이 막히자, 이를 대체할 저사양 모델(A800)을 개발해 중국에 팔았다. 첨단 산업에서 중국을 고립·배제하겠다는 미 정부 입장과 별개로,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외신은 이 같은 황의 행보에 대해 “미·중 갈등을 바라보는 ‘미국 재계의 입장’”이라 전했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스탠리 회장 등도 연달아 미 정부를 향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문하며 황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 등 그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AI 최대 수혜주, GPU의 창시자
황은 ‘인공지능(AI) 시대, 가장 가치있는 회사’로 꼽히는 엔비디아의 창립자다. 엔비디아는 창업 30주년인 올해 ‘시가총액(시총) 1조 달러 클럽’에 입성했다. 세계 반도체 기업 중 몸값 1조 달러를 넘어선 건 엔비디아가 유일하다.
엔비디아는 전세계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의 90%를 독점 중이다.1999년 엔비디아가 내놓은 ‘지포스256’이 세계 최초의 GPU다. 단순한 그래픽 카드가 아닌, 중앙처리장치(CPU)와 대등한 역할을 맡는 주요 반도체란 의미로 이름을 GPU라 붙였다.
지난해 말 생성형 AI 열풍이 불면서 GPU 값은 말 그대로 수직 상승했다. 사실상 독점 기업인 엔비디아의 주가는 올해만 300% 가까이 치솟았다. 황의 개인 자산도 엄청나게 불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순위 통계에 따르면 황의 순자산은 392억 달러(약 51조원)로, 올 초까지만 해도 세계 70~80위였던 황의 부호 순위는 단숨에 34위로 올랐다.
9살에 美 기숙학교서 모진 인종차별…“그 시절 사랑한다”
엔비디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창업자인 황에게 옮겨졌다. ‘수조 달러 규모의 칩 회사를 거느린 가죽 재킷의 보스’(로이터), ‘실리콘밸리에 등장한 새로운 스타일 아이콘’(뉴욕타임스), ‘화장실 청소부에서 1조 달러 칩의 왕이 된 남자’(더 타임스) 등 유수의 매체가 그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황은 1963년 대만의 타이난에서 태어나 태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다. 과학자인 아버지, 영어 교사인 어머니는 태국에 내전이 발발하자 아홉살 난 황을 한살 터울 형과 함께 사실상 깡촌인 미국 켄터키주(州)의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 학교’에 보낸다.
황은 이곳에서 온갖 차별을 겪는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일을 나눠 맡기는 시스템이었는데, 황은 아시아인이란 이유로 3년 넘게 화장실 변기 닦는 일을 도맡아야 했다. 2012년 NPR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모두 주머니칼을 갖고 다녔고, 싸울 때는 예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극심한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
모진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황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이를 극복했다. 그는 “이 얘기의 결말은, 내가 그곳에서의 시간을 정말 사랑했다는 것”이라며 “힘든 시간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일했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2019년 이 학교에 여학생 기숙사이자 교실 건물 건축비로 200만 달러(약 26억원)를 기부했다.
자기희생 리더십, 지적 정직함 강조
황은 1984년 오리건 주립대에서 전기공학 학사, 1992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엔 애플에서 최초의 맥 컴퓨터가 출시해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막 펼쳐지던 때였다. 전기공학 전공자인 그는 “정말 완벽한 시기에 졸업했다”고 말할 정도로 취업과 창업의 기회가 널려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LSI로직 이사, AMD의 마이크로프로세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황은 자신의 30세 생일인 1993년 2월 17일 실리콘밸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동료 엔지니어 크리스 말라초프스키, 커티스 프림과 의기투합해 그해 4월 그래픽 카드 개발 회사인 엔비디아를 설립했다.
당시 컴퓨터의 영상과 그래픽은 CPU를 통해 처리하는 방식이었는데, 유년시절 컴퓨터 게임광이었던 황은 “게임 산업이 발달할수록 그래픽과 영상만 빠르게 처리하는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라 내다본 것이다.
처음엔 사명조차 없었다. 황은 “당시 모든 파일에 ‘향후 버전(next version)’의 앞 글자를 딴 NV를 붙였는데, 법인 설립할 때 N과 V 두 글자가 들어간 단어를 찾다가 라틴어 ‘Invidia(부러움)’를 발견했다”면서 “그게 지금의 회사명이 됐다”고 설명했다.
창업 이후 황은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해 사업을 확장했다. 시장의 흐름을 읽어 ‘비디오 게임 콘솔용’이었던 그래픽 카드를 ‘PC 게임용’으로 전환했고, GPU 개발까지 이어갔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삭감하고 인재 영입에 집중해 오히려 기술력을 키우는 ‘자기 희생’의 리더십을 보였다.
황이 강조하는 엔비디아의 기업 문화는 ‘지적 정직함’이다. 그는 “실수에 관대하되, 실수를 감추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경영철학은 지난달 27일 국립대만대학 졸업식 연설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이날 학생들에게 “실패에 맞서고 실수를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면서 강조했다.
날개 단 ‘검은 재킷의 CEO’…韓 속내 복잡
황은 공식 석상엔 늘 검은색 라이더 재킷을 입고 등장해 ‘검은 가죽 재킷의 CEO’라고 불린다. 실리콘밸리의 이미지 컨설턴트인 조셉 로젠펠드는 황의 가죽 재킷에 대해 “1950년대 할리우드를 상징하며 독립심, 탁 트인 길, 반항심, 성적 매력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단정하게 다듬은 백발머리, 안경 너머의 강인한 눈빛, 엔비디아 주가가 100달러를 돌파했을 때 왼쪽 팔에 새긴 회사 로고 문신 등도 그를 상징하는 스타일이다.
날개를 단 듯한 엔비디아의 성장세를 바라보는 한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대만계 미국인인 황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기업인 엔비디아의 GPU 파운드리(위탁생산)를 대만의 TSMC에 주로 맡기고 있다. 최근 미국 기업 인텔이 파운드리에 재진출하자 “인텔과의 협력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말했다. 황은 미 정부의 대중 규제에도 비판적이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와 경쟁하며, 첨단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한국이 엔비디아의 ‘압도적 강세’에 고민이 깊은 이유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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