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살면 남는 장사? 인식 뜯어고친다…檢 칼 빼든 범죄수익환수

허정원, 김정민 2023. 8.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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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700억원대 횡령 범죄를 저지른 우리은행 직원 전모씨 형제에게 재판부가 판결을 선고하려고 하자 검찰이 거세게 항의했다. 전씨 형제는 횡령한 돈 가운데 91억원을 가족·지인 등 ‘제3자’ 20여명에게 무상으로 주는 방식으로 빼돌렸다. 부패재산몰수법상 1심 선고 이후 제3자는 재판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날 선고로 국가가 전씨 형제의 횡령액 91억원을 환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647억원 추징명령과 함께 형에게 징역 13년, 동생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재판을 끝냈다. 이어진 항소심에서 검찰은 “범죄수익이 어디로 갔는지 밝혀냈는데도 전씨의 가족과 지인들이 총 91억원에 달하는 범죄수익을 그대로 보유하게 됐다”며 “1심 재판을 다시 열어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1심이 647억원을 추징했지만 전씨 형제 명의로는 이제 돈이 한 푼도 없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는 판결이라는 게 검찰 입장이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이원범)는 올해 3월, 전씨 형제가 제3자 명의로 넘긴 횡령액 91억원에 대한 추징 심리를 열기로 했다. 가족·지인 명의로 넘긴 돈을 찾아올 길이 열린 것이다.


전국 주요 검찰청에 '범죄수익환수부' 설치 추진


우리은행에서 6년간 세 차례에 걸쳐 회삿돈 700억 원을 횡령한 직원 전모씨가 지난해 5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검찰은 이처럼 범죄수익을 박탈해 국고에 귀속할 전담부서를 전국 주요 검찰청에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2월 서울중앙지검엔 범죄수익환수부가 처음으로 생겼다. 하지만 다른 검찰청에선 환수전담 검사가 송치사건 등 형사 업무와 공판을 병행하고 있고, 정식 직제가 아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검찰은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 테라·루나 사태 등 대규모 금융범죄 수사가 진행되는 서울남부지검과 부산지검에 우선 범죄수익환수부를 설치하기로 하고 행정안전부와 논의에 들어갔다. 대검찰청은 각 검찰청에 공문을 보내 “100억원 이상 추징금을 미납한 주요사건을 추린 뒤 사건관리방안도 마련해 보고하라”며 범죄수익 환수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검찰이 범죄수익 환수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범죄예방 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범죄수익 환수 업무를 담당하는 한 부장검사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몸만 고생하고 나오면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있으면 범죄 차단이 불가능하다”며 “결국 ‘형(刑)도 살고 돈도 뺏긴다’는 환수 가능성이 있어야 수사에서도 입을 연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장동 개발비리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김만배씨 등 대장동 일당의 재산 2070억원을 처분하지 못하게 하는 기소 전 추징보전 결정을 법원에서 받아냈다.


미집행액 31조원인 이유…차명수익은 민사소송까지 난관


전국 검찰청 중 범죄수익환수부가 정식직제로 운영되는 곳은 서울중앙지검 뿐이다. 다른 검찰청은 '팀' 등 비직제 조직으로 운영된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추징보전까지 받아내더라도 실제 몰수·추징에 이르는 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점도 범죄수익환수부 확대의 배경이 됐다. 검찰 관계자는 “요즘 범죄수익은 대부분 차명으로 돼 있는데, 차명재산은 몰수·추징 선고를 받아도 집행이 안 된다”며 “범인 A의 재산이 B씨 명의로 돼 있다면 검찰이 B씨에 대해 별도로 채권자 대위소송을 하지 않으면 국고로 환수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A의 범죄수익을 B로부터 추징한다’고 판결하면 채권자 대위소송을 건너뛸 수 있는 ‘제3자 추징선고’ 제도가 있지만, 우리은행 전씨 형제의 700억원대 횡령 사건처럼 1심에서 제3자들이 재판에 참여하기 전에 선고를 해버리면 이런 길도 막힌다.

이 같은 범죄수익 환수 과정의 복잡함은 실적에도 나타나고 있다. 대검에 따르면 검찰이 올해 6월까지 추징보전한 범죄수익은 5조2216억원이지만, 실제 집행된 건 696억원이었다. 작년에도 추징보전액 3조4480억원, 집행액 1201억원, 2021년에도 추징보전액 5조9543억원, 집행액 1763억원으로 늘 차이가 크다. 지난해 기준 미집행 추징금은 누적 31조4000억원 수준이다.


법 없어 집행 멈춘 전두환 재산…독립몰수제는 과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폭로성 발언을 해온 손자 전우원 씨가 3월 2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 체포된 뒤 입국장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범죄수익 환수 경험이 풍부한 한 부장검사는 “부패재산몰수법상 유사수신, 보이스피싱, 다단계, 범죄단체 사기죄 등의 경우 민사소송 없이도 국가가 환수해 피해자들에게 돌려주게 돼 있다”며 “최근 급증한 전세사기의 경우도 피해 복구를 위해 수사기관이 범죄단체 조직죄로 의율하는 추세인데, 이런 기술적인 작업이나 국고 확충을 위해서라도 범죄수익환수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 요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세월호 사건 피의자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처럼 범죄인이 사망하거나 해외로 도피해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경우에도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독립몰수제’가 대표적이다. 몰수·추징은 재판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만 집행하고 채권·채무처럼 상속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2021년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약 923억원의 미납 추징금은 추징이 요원하게 됐다. 독립몰수제 시행을 위해선 형법·형사소송법·공무원범죄몰수법(추징3법) 개정이 필수적인데, 현재 개정안은 3년째 국회 계류 중인데다, 이 제도가 시행돼도 이를 소급적용할 가능성은 낮다.

허정원ㆍ김정민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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