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일하는데 수십 번 "엄마"... 방학이 좀 버겁다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박순우 기자]
▲ 우도 하고수동 해수욕장 여름바다는 뛰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장사를 해야... |
ⓒ 박순우 |
육지에 살 땐 여름이 되면 으레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름 휴가 가?"
가면 어디로 가는지, 기간은 얼마나 잡았는지, 요즘은 어디가 좋은지, 여름철마다 지인들과 당연히 나누던 대화였다. 제주에 터를 잡고부터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여름에 어디 가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가긴 어딜 가. 돈 벌어야지."
대표 관광지인 제주의 여름은 분주하다. 일 년 중 최대 성수기이기 때문이다. 시기를 가리지 않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휴가를 보내는 사람은 여름에 가장 많다.
바닷가마다 물놀이 하는 피서객으로 붐비고, 관광지에도 차들이 빼곡하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집들이 주위에 많다 보니, 여름이면 다들 손님을 맞느라고 바쁘다.
성수기에 바짝 벌어야 또 비수기를 그럭저럭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민들은 이런 생활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물어보면 하나 같이 답변은 같았다.
"제주에서 여름에 휴가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관광지에서 아이 돌보며 장사 하기란
장사를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남들 쉴 때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직업이 바로 자영업이라는 걸. 특히 관광지 장사는 여름철이나 황금연휴, 명절 등 남들이 쉴 때 가장 분주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제주로 이주하기 전에는 잘 몰랐다. 타인의 휴가를 위해 자신의 휴가를 반납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대충 짐작하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건 꽤 차이가 컸다.
남편과 둘 뿐일 때는 큰 타격이 없었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이런 사이클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기관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무는데, 부모는 일을 해야 하니 말이다.
특히 긴긴 방학에 들어가면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방학을 앞두면 괜히 가슴에 돌덩이라도 하나 얹어놓은 듯하다. 또 이 여름을 어찌 보내나 싶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맞벌이다 보니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는 다행히 방학에도 돌봄교실에 간다. 방과후 수업도 몇 가지 참여하고 있다.
문제는 4시간 후면 집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방과후도 하고 돌봄도 하지만, 귀가 시간은 오후 12시 40분이다. 일하는 부모들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학 돌봄 시간은 턱없이 짧기만 하다. 그렇다 보니 점심을 챙기고 오후 시간에 아이를 돌보는 건 고스란히 엄마인 내 몫이다.
아이가 집에 오면 몸과 마음이 덩달아 분주해진다. 장사를 하면서 아이 밥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집과 카페가 가까이 있는데, 손님 동향을 파악한 뒤 재빨리 집으로 가 아이 밥상을 차려야 한다.
혼자 식사를 하게 두고 나는 다시 일하러 나온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손님들은 주인장이 대체 어디를 갔다 왔나 궁금한 표정이다. 밥을 다 먹은 아이는 혼자 잘 놀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손님이 많아도 걱정, 없어도 걱정인 것이다.
평소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돈보다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라 믿기에. 카페도 아이가 귀가하는 시간이면 문을 닫는다. 그렇다 해도 방학이라고 여름 성수기 장사를 통째로 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 년 밥벌이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를 돌보며 동시에 성수기에 늘어난 손님도 챙겨야 하는 게, 여름방학 동안의 내 일상이다.
이웃에 숙소를 운영하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사정은 비슷하다. 방학 때마다 아이들을 챙기며 숙소를 청소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속상해 한다. 혼자라면 금세 끝마칠 일도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두 배 넘는 시간과 수고가 든다고 하소연을 한다.
한참 쑥쑥 자라는 아이들이다 보니 돌아서면 자꾸 먹을 걸 달라는 통에, 숙소 청소가 끝나고도 주방에 매여 있어야 한단다. 아이들은 살찌고 엄마들은 골골 하는 계절이 다름 아닌 여름인 것이다.
▲ 함께 활동하고 있는 아이들 방학에도 일하는 보호자를 위해 촘촘한 돌봄이 이뤄진다면 좋을텐데... |
ⓒ pixabay |
자연과 가까이 있는 게 위안이 많이 되지만, 관광지라는 특성 때문에 방학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건 늘 미안하다. 방학 때마다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는데도, 제주 지역 방학 돌봄 시간은 2009년 도입된 이래 여전히 그대로다. 학기중 오후 5시 이후 돌봄교실을 시범 운영하고 있는 20여 개 학교에서만 방학중 오후 돌봄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 외 다른 지역은 어떤지 알아보니,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몇 학교가 돌봄교실을 오후 늦게까지 운영하기도 하지만, 오전에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오후까지 하더라도 학기중(오후 7시)보다는 훨씬 짧게(오후 3, 4시)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돌봄교실의 경우 지역마다 운영방식이 다르고, 일선 학교의 재량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 전체 운영 현황을 파악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돌봄교실의 운영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려면, 인력과 예산의 문제가 뒤따른다. 돌봄전담교사만 확충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담당 교직원의 시간별 근무제 도입 등이 필요한데, 결국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아이들의 돌봄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담당 교직원 역시 누군가의 부모일 수 있기에 문제 해결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제주도교육청에 문의하니, 제주도의 경우 돌봄교실 연장 운영을 하려면 일선 학교의 보호자들이 직접 나서야 했다. 돌봄교실 연장 의견을 내고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친 뒤, 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자의 임금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돌봄교실 연장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 이런 식으로 연장 운영을 하는 곳은 찾아보기가 거의 어려웠다. 그러니 각 가정이 방학마다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관광지에서 장사를 하는 집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워낙 맞벌이가 많아 방학 동안 아이들을 완전히 책임지고 돌볼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여름 휴가가 있다 해도 길어야 일주일일 텐데, 나머지 기간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건지. 돌봄교실이나 지역아동센터에 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조부모 등 타인의 손을 빌리거나 학원에 매달리고 있지 않을까?
잘 놀던 아이가 또 엄마를 부른다. 저쪽 테이블도 치워야 하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엄마를 외친다. 이번엔 간식을 달란다. 나는 입맛이 영 없는데, 아이는 아닌가 보다. 사춘기 오기 전이 육아하기는 꿀이지 싶다가도, 저렇게 애타게 불러대면 얼른 커버렸으면 싶기도 하다. 엄마를 찾아줘서 고맙지만, 엄마는 좀 힘들다. 방학이 참 길고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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