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가 책 마지막 문장을 '듣고 있다'로 끝낸 이유

유지영 2023. 8. 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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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간 <술래바꾸기> 낸 김지승 작가

[유지영 기자]

 김지승 작가의 신간 <술래바꾸기> 표지
ⓒ 낮은산
 
"이젠 거긴 못 가겠더라." 아무런 악의 없이 사람들은 말했다. 내가 이곳에 사는 데도, 내 앞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이들뿐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지우기 쉬운 말이라는 걸, 감정을 빼고 전달할 여유가 아직은 없다. 그런 말들이 그들을 이곳에서 떠나게 했을 것이다." (책 <술래바꾸기> 197쪽)

지난 7월 13일 출간된 김지승 작가 신간 <술래바꾸기>의 마지막 대목은 그가 사는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나 책에는 정확히 '이태원'이라는 명칭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김지승 작가는 "이태원이라 책에 쓰지 않은 이유는 사실 한국의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죽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책 <술래바꾸기>는 <아무튼, 연필>과 <짐승일기>에 이어 나온 김지승 작가의 신간으로,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사전 연재됐던 글 8편과 새로 쓴 글 6편을 묶어 나온 책이다. 책의 목차는 모두 '의자', '수건', '가발', '안경' 등의 친숙한 물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지승 작가는 여성노인, 외국인, 미혼모 등 타인들과 물건에 깊이 얽힌 기억을 에세이로 풀어냈다. 특히 책에서는 '여성노인'의 목소리가 자주 등장한다.

'여성노인'이라는 단어는 김지승 작가가 만들었다. 그는 '여성'과 '노인'을 붙여 쓴 이유에 대해 "여성노인은 전 생애에 걸친 빈곤화, 높은 질병 발병률, 상대적으로 긴 노년기와 1인 가구의 삶 등 사회학적으로 특수한 위치와 생애 조건을 가진 이들로 '남성' 노인의 이항 대립적 의미만으로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책이 나오고 보름이 지난 7월 27일, 서울 마포구 서점 '땡스북스'에서 열린 <술래바꾸기> 북토크를 앞두고 김지승 작가를 만났다.

유족은 아직 애도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어요
 
 지난 7월 27일 서울 마포구의 서점 땡스북스에서 김지승 작가의 신간 <술래바꾸기>의 북토크가 열렸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김지승 작가.
ⓒ 땡스북스
  
- 책 <술래바꾸기> 마지막 글인 '설탕과 얼음'은 이태원 참사를 주제로 했죠. 다만 이태원이라는 지명은 마지막까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니 그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 말을 하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거기 산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멀쩡히 앉아있으면 칼이 날아와요. '이제 거기는 못 가겠어. 찝찝해'라고요. 내가 거기 사는데.

참사 유가족들이 아직 유골함을 안고 있대요.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했으니까 애도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빨리 이야기하고, 너무 빨리 울고, 너무 빨리 끝내요. 책의 마지막 문장을 그래서 '듣고 있어요'로 끝내야 했어요. 우선 좀 들어야 하니까. 추모의 속도는 적어도 애도의 속도에 맞춰야 하지 않나요.

물론 들으려면 나도 각오해야지요. 아픈 이야기니까요. 몸이 아플 때는 저도 피하고 싶지만 불편하지 않게 이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저에게 없어요. 같이 괴로워지고 불편해지면 돼요. 그리고 사실 내 불편함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에요."

- 작가님께서는 항암치료를 하면서 글을 쓰고 책 <술래바꾸기>를 냈습니다. 전작인 책 <짐승일기> 또한 아프고 난 뒤 거의 다시 썼다고 들었습니다. 힘든 점은 없었나요.
"연재를 진행하면서 글을 쓸 때는 통증이라는 감각이 저를 에워싸고 있으니 다른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어요. 계속 아파요. 약으로 통증을 누른 상태에서 글을 쓰는 거죠. 그런데 아프기 전에 쓴 글은 그 시기에는 분명 진실이었는데 몸이 아프고 나서는 내가 쓴 게 아니라 마치 남이 쓴 걸 읽는 기분이었어요. 현재의 내 목소리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수정을 많이 했어요."

- 아프기 전과 후에 쓴 글이 그렇게나 다른가요.
"코로나를 봐도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언어는 달라요. 코로나를 피해 다니면 안 걸릴 거로 생각하다가 걸리는 순간 아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아픔을 표현하죠. 그런데 아픈 몸을 표현할 언어가 너무 없어요. 버지니아 울프도 에세이 <아픈 것에 관하여>에서 쓴 적이 있는데요.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아니면 무언가 정치적인 것에 대해서는 고전에서도 언어를 찾을 수 있고 참고할 만한 언어들이 너무 많은데 아픈 몸에 대해서는 너무 없다'는 거예요.

병원에서 '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라고 묻는 말에 대답하기가 너무 어렵잖아요. 어디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일은 전 병원에서 주로 듣는데요, 여성노인들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저걸 기록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게는 그 말이 너무 잘 들리는 거예요. <짐승일기>의 많은 부분은 그들의 말을 저의 언어로 바꿔서 나오는 통증과 질병의 언어인 셈이에요."
  
여성노인으로부터 배울 수밖에 없는 것
 
 김지승 작가의 신간 <술래바꾸기> 본문 중(출판사 제공)
ⓒ 낮은산
  
- 책에서 중요한 대목 중 하나가 "보이지 않지만 큰 기척 없이 이 세계의 작고 약한 것들을 연결하는 데 기여하는 이들이 떠올랐다. 그들 대부분은 시적이고 윤리적인 조건으로 관계 맺고 유동적인 몸으로 비인간, 사물과 만난다. 내게는 몇몇 여성노인들이 그런 존재로 남았다"는 부분이에요. '윤리적인 조건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윤리라는 것이 관계 속에서 늘 유동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내게 어떤 위치가 주어지고, 그 사이에서 윤리가 발생 되는 거죠. 윤리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어떤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할 것 같고요.

타자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타자를 내 이해의 범주 안으로 끌고 오는 것이 폭력인데요, 그보다는 어떤 관계는 이해 불가능의 영역에 두는 것이 훨씬 나아요. 그저 나와 같은 세계를 사는 사람으로 존중하는 거지요.

(책에 등장하는) 여성노인들을 뵈러 갈 때에도 내 기준에서 평가를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현실적으로 여성노인들은 이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분들이에요. 수명은 남성 노인보다 8~9년이 길고 만성 질환도 남성 노인들보다 훨씬 많아요. 여기에 돌봄 노동까지 해야 해요.

그런데 저는 여성노인들과 만나면 실컷 웃다가 오거든요. 그분들의 삶은 내가 판단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여성노인들이 엄청 힘들겠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웃기지 않은 할머니를 본 적이 별로 없어요. 인생의 끝에 요양원을 가는 것이 비참한 일인 것처럼 많이들 말하는데 이들은 요양원 안에서도 웃어요. 우리는 어떤 세계를 너무 모르는 거예요.

내가 두려우니까 타자화해서 제대로 안 보려고 하고 그저 내가 그 가난한 노인만 안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는 높은 확률로 가난하게 살아요. 그렇다면 그 나이의 삶을 좀 재밌게 살 수는 없을까. 우리는 그걸 여성노인한테 배울 수밖에 없는 거죠."

- 책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시공간이 분명하지 않은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2010년대의 일인지 1990년대의 일인지. 그리고 한국인지 외국인지가 분명하지 않아요. 그리고 실재하는 사건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혹시 의도한 걸까요.
"글에 따라서는 시공간이 굉장히 중요한 배경이 되기도 해요. 그러나 아픈 몸이라는 건 일상적인 시공간의 문법을 벗어나 있어요. 남들 출근할 때 출근 안 하잖아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 중요하지 않아요. 기억은 반드시 선형적인 시간과 특정 공간 안에서 머물러 있지 않아요. 어디에 있든 내가 있는 곳이 아픈 곳이고 있는 시간이 아픈 시간이에요.

<짐승일기>를 소설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셨던 터라 <술래바꾸기>는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해요. 책을 쓸 때 특정한 장르를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술래바꾸기>는 에세이인 것 같아요.

에세이의 어원인 프랑스어 동사 'essayer(에세이예)'에는 '시도하다'나 '경험하다', '한 번 시험 삼아 해보다' 같은 의미가 있어요. <술래바꾸기>는 삶의 이질적인 요소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해보는 책이에요. '세대도 다르고 인종도 다른 존재들을 한 번 연결해볼까' 시도했고, 장르로 분류하자면 에세이로 볼 수 있어요."

김지승 작가는 실제로 <술래바꾸기>에서 세대가 다르고 인종이 다른 존재들을 연결한다.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술래바꾸기>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주체로 다시 태어난다. 책 <술래바꾸기>를 들어 책표지를 넘기면 저자 소개가 나온다. 저자 소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김지승. 읽고 쓰고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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