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내담자와 성관계’ 마약중독상담가, 버젓이 강의도
관련 문제 인지하고도 늑장 대응
서울 남부보호관찰소서 교육 강의도
유명 마약중독회복상담가 A씨가 마약중독 여성 내담자들과 성관계를 갖는 등 ‘상담 윤리·행동 강령’을 중대 위반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본부)는 이를 인지하고도 A씨를 법무부 마약류 사범 재활 교육에 강사로 파견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퇴본부가 다른 곳보다 더 엄격한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는 마약중독 분야에서 A씨의 부적절한 교육 상담 활동을 사실상 용인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중독재활상담실장으로 근무하던 병원에서 내담자와의 성관계가 공론화돼 지난해 11월 해고됐다. 당시 여성 내담자 B씨와 성관계를 가져 중대 윤리 위반 사실이 알려졌고, 이후 또 다른 여성 내담자 C씨에게서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A씨는 두 여성 내담자와의 성관계 사실은 각각 인정했으나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C씨의 성폭행 고소 건에 대해 지난 7월 불송치(무혐의) 처분을 내린 뒤 A씨는 마약중독 재활 치료를 받는 전직 아이돌과 유튜버 등과 함께 외부 활동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마약중독 재활·치료 분야의 전문가들은 ‘내담자와의 성관계’는 ‘중독 상담 윤리’ 중대 위반에 해당한다며 A씨의 활동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중독전문가협회가 규정한 ‘중독전문가 윤리강령’은 “중독전문가는 현재나 이전의 클라이언트(내담자)와 성관계를 형성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 협회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중독 재활·회복 상담가의 양성을 지원하는 곳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상담가와 내담자는 권력 관계이다. 환자는 치료자의 요구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존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며 “심리 상담 현장에선 내담자, 즉 환자와의 성관계는 굉장히 악질적이고 나쁜 사안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서울지부(서울마퇴본부)는 A씨의 성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법무부 마약류 사범 재활 교육에 A씨를 강사로 파견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치소나 교도소 등에서 마약사범을 상대로 ‘중독 관련 전문 강의’를 하기 위해선 마약중독상담 자격을 비롯해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주관하는 ‘회복자 전문 상담사 강사 과정’을 1년에 걸쳐 수료해야 한다. 법무부 교정본부가 ‘수강명령 의무교육’ 등을 요청하면 마약퇴치운동본부의 각 지부에서 강의 일정과 내용 등을 편성하고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상담사를 파견한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A씨는 서울 남부보호관찰소에서 지난 6월 1일부터 9일 사이 5일 40시간 과정으로 진행된 교육에 참여했다. 그는 ▲회복의 여정 ▲남성 이슈 ▲12단계 촉진 치료 등 총 6시간 강의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폭행 혐의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도 버젓이 활동을 이어간 것이다.
해당 강의는 마약류 사범을 대상으로 마약 투약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 등을 공유하는 ‘개별·집단 상담·강의’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A씨는 20여년간 마약 중독 상태로 지내다 이를 끊고 전문 상담사로 나선 뒤 언론과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활발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마퇴본부는 남부보호관찰소 강연 외에 지난 5월 16일 대치동 학원가에서 진행한 ‘불법 마약류 퇴치 캠페인’에 A씨를 동행시키기도 했다. A씨는 성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서울마퇴본부를 통해 법무부 교정본부 산하 기관에서 상담 및 강의 활동을 이어왔다.
정병민 서울마퇴본부 팀장은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A씨가) 남부구치소로 출강할 때까지는 해당 사건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부에서도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며 “관련 문제가 있다는 걸 안 즉시 상담은 바로 중단했고, 강의도 대체 인력 강사를 섭외했다”고 해명했다.
각 지역 본부를 총괄하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A씨의 문제를 알고서도 뒤늦게서야 A씨의 교육 상담 활동을 제한했다. 한국마퇴본부는 A씨의 윤리 위반 사실이 알려진 지난해 11월로부터 7개월이 지난 6월 15일에서야 A씨의 ‘상담 및 교육 등 강사 활동 일시 중단’을 요청하는 문서를 마퇴본부 각 지부로 내려보냈다.
그러다 지난달 9일 경찰이 A씨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리자 열흘 만인 18일 ‘강사 활동 일시 중단’을 해제하는 문건을 마퇴본부 각 지부에 내려보냈다. 강원석 한국마퇴본부 사무총장은 “(A씨에 대해) 떠도는 얘기가 있긴 했지만 법적으로 공식적으로 확인된 게 없었다. 공직유관단체로서 떠도는 얘기만으로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었다”며 “윤리 위반으로 활동을 제한할 수 있는지는 내부적인 법적 검토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A씨는 현재 수도권에 있는 민간 약물중독 치료공동체의 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최근엔 마약 중독 재활을 받는 전직 아이돌, 유튜버 등과 함께 방송과 유튜브 채널 등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선 ‘마약중독재활치료상담(50분)’을 내걸고 예약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마약 중독 분야 종사자들은 마약중독 재활·회복 분야에선 ‘윤리 문제’가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마약 중독자는 성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는 데다 중독 회복 과정에서 민감한 개인 정보 등이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담사들은 중독자의 ‘단약 의지’를 보증하는 탄원서, 재활센터 입소증명서, 자조모임 참석증명서 등을 통해 재판을 앞둔 중독 내담자에게 유리한 양형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모종의 권력 관계가 형성될 수 있어 상담자에게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독 재활·치료 전문가는 “성적접촉 금지 등의 윤리 위반이 명백하지만, 마약퇴치본부가 A씨에 대해 쉬쉬하고 있다”며 “약물 하는 여성들은 성적인 부분이 취약하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마퇴본부가 조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직에 있는 중독 회복 강사는 “마퇴본부가 내담자를 위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A씨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는지 마퇴본부가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중독 회복 강사도 “중독자가 회복자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에서 상담사가 지켜야 할 책임과 직업윤리를 저버린 것”이라면서 “중독 분야는 사법적인 판단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그는 윤리적으로 강의나 상담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당사자인 A씨는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건 이후) 중독전문가로서 상담 활동을 하지 않았다”며 “회복 강사로서 그냥 교육한 것이다. 강의는 상담과 관련이 없다”며 자신의 활동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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