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의 KT? 올해는 가을의 KT가 더 무서울걸?”
어떤 업이든 오랫동안 성실히 일한 자의 철학은 깊고 단단하기 마련이다. KT 롤스터의 베테랑 미드라이너 ‘비디디’ 곽보성이 2016년 프로게이머로 데뷔하고, 3회의(2017년·2020년·2021년) ‘LoL 월드 챔피언십’을 겪으며 체득한 것도 그 중 하나다.
지난 4일 농심 레드포스전 직후 인터뷰 자리에서 곽보성에게 젠지나 농심 시절과 플레이 스타일에 차이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현재 팀원들은 내가 도움을 주면 줄수록 더 잘하는 선수들”이라면서 “다른 라인에 지원하려는 움직임에 치중하고 있다”고 답했다.
물론 미드라이너가 희생만 하는 팀은 정규 리그 막판까지 선두 경쟁을 이어갈 수 없다. 곽보성은 “팀원들도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나의 움직임에 맞춰준다”면서 “서로의 요구사항에 맞춰 나는 라인 밖으로 최대한 많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가 갈 듯 가지 않는 얘기다. 로밍 플레이는 젠지 ‘쵸비’ 정지훈이나 T1 ‘페이커’ 이상혁과 가장 차별화되는 곽보성만의 특징이 된 지 오래됐다. ‘반지원정대’로 불렸던 젠지 시절에도 그는 눈앞의 미니언 웨이브를 포기하고 다른 라인을 지원하는 플레이를 자주 했다.
곽보성은 젠지와 KT에서의 로밍은 결이 같은 듯 다르다고 했다. 그는 “젠지 시절과 지금의 플레이 스타일은 비슷한 듯 다르다. KT는 확실히 속도가 더 빠르다”며 “메타 때문이 아니다. 팀원들 전부 스노우볼을 빠르게 굴리고 싶어하는 성향을 지녔다”고 말했다.
반지원정대와 KT를 놓고 스타일의 차이일 뿐 실력의 차이는 아니라고도 못 박았다. 그는 “나도 속도가 빠른 게임을 선호한다”면서 흥미로운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빠른 게임에 강한 팀이 LCK 무대에선 아닐지언정 롤드컵에선 더 빛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곽보성은 3번의 월드 챔피언십 외에도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미드 시즌 컵(MSC)’ ‘리프트 라이벌스’ 등을 통해 동서양의 강팀들과 맞붙어본 적이 있다. 그는 최전성기 ‘우지’ 젠 쯔하오가 있던 로열 네버 기브업(RNG)과 손가락 싸움을, 유럽 슈퍼팀 G2 e스포츠와 머리싸움을 모두 해본 몇 안 되는 선수다.
“LEC나 LPL 팀을 상대해보면 확실히 좀 다르다. LCK는 선수들이 ‘생각할 수 있을 만한’ 플레이를 한다. 가령 라인을 정리하고 시야 작업을 한다든지…라인을 무조건 먼저 정리하고 플레이를 한다. LEC와 LPL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 상대가 뭔가 할 것 같다 싶으면 라인도 포기하고 바로 대비를 시작한다.
한 마디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플레이를 한다. 바론을 칠 때 리스크는 늘 있기 마련이지만, 이들은 50% 승률의 강타 싸움도 당연하다는 듯이 한다. 안전하게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LCK보다 덜 한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이렇게 게임의 룰이 갑작스럽게 바뀌면 LCK 선수들은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곽보성은 “어떨 때는 그들이 게임을 ‘막 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해외 팀들은 터프한 게임에서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면서 “LCK 팀들은 국내에서 리스크를 줄이는 데 집중하다가 국제 대회에 나가서 이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플레이에 당하면 부담감을 배로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다시 처음의 플레이 스타일 얘기로 돌아가서, 곽보성은 올해 KT의 폭발적인 스노우볼 굴리기 전략이 LCK보다 월드 챔피언십에서 빛을 볼 거라고 말했다. 서머 시즌의 KT는 경주마처럼 게임을 하고 있다. 때로는 선수들이 초반에 큰 이득을 보고도 턴을 욕심내다가 스텝이 꼬이기도 한다.
곽보성은 “내가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LPL을 상대해보기도 했고, 바로 옆에서 LPL이 우승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라며 “LCK와 월드 챔피언십에선 각각 다른 플레이를 해야 한다. 천천히 파밍하다가 딜러의 강함을 이용하는, LCK가 좋아하는 메타가 주류인 시기를 제외하면 두 대회는 선수가 체감하기에 완전히 다르다”고 전했다.
월드 챔피언십만을 바라보고 팀의 스타일을 결정한 것은 아니겠지만, KT는 이런 LPL·LEC식 하이 리스크 플레이에 대한 면역력을 1년 내내 길렀다는 게 곽보성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는 미리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팀 스타일을 맞춰놓고, 같은 플레이를 하고 있다”면서 “가을에 중국이나 유럽 팀을 만났을 때 맞대응을 가장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곽보성은 “국내 최상위권인 두 팀이 LCK에서 붙었을 때와 월드 챔피언십에서 붙었을 때의 경기 양상도 또 다르다”면서 “해외 팀들과 대결하고, 그들을 분석하다 보면 LCK 팀들의 체질이 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 팀들이 잘할 때, 그리고 우승할 때마다 느꼈던 점들”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나는 개인적으로도 이런 플레이 스타일을 선호한다”면서 “KT가 월드 챔피언십에서 빠른 게임을 선호하는 LPL 팀들과 붙으면 LCK에서 보여드리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게임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 또한 기대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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