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자숙은 없고, 뻔뻔한 인맥 자랑만 남았다
[이준목 기자]
지난 8월 4일 TV조선의 신규 스포츠 예능 <조선체육회> 첫 회가 전파를 탔다.
<조선체육회>는 TV조선에 신설된 부서 '스포츠 예능국'에서 국가대항전 해설, 취재, 홍보, 응원 등의 다양한 업무를 직접 수행하게 될 출연진들의 이야기를 그린 '리얼 다큐 스포츠 예능'을 표방했다. 전현무가 메인 MC를 맡고 허재(농구), 김병현(야구), 이천수(축구),조정식(전 SBS 아나운서) 등이 각 종목을 대표하는 중계진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TV조선은 최근 축구 A매치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 중계권을 확보했고, 이를 <조선체육회>와 연계하여 앞으로 예능과 스포츠를 넘나드는 다양한 컨텐츠를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농구계에서 퇴출까지 당했음에도, 최소한의 반성과 자숙은 커녕 버젓이 방송활동을 이어가는 허재의 출연이다. 과연 대중은 그의 뻔뻔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TV조선 스포츠 예능 <조선체육회> 한 장면. |
ⓒ TV조선 |
첫 회는 이천수를 중심으로 지난 3월 열린 대한민국과 콜롬비아의 축구 A매치를 다루는 내용들이 주로 등장했다. 해설자로 나선 이천수는 역시 경기장에서 들어서던 이강인, 조규성, 김민재 등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친분을 과시했다. 기자로 나선 전현무는 클린스만 국가대표팀 감독을 단독 인터뷰했고, 제작진은 '캡틴' 손흥민과 체육회팀의 독점 인터뷰까지 예고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특히 '데이원 사태'로 농구계에서 퇴출당한 허재의 방송 출연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다.
허재는 한때 '농구대통령'으로 불리우며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구단 대표를 맡으며 지난해 창단했던 프로농구 고양 데이원이 회원사 가입비와 선수단 임금 체불, 구단 인수 대금 미지급, 부실 경영 등으로 파행을 거듭하다가 지난 6월 16일 KBL(한국프로농구연맹)으로부터 전격 제명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프로농구단이 퇴출된 것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허재는 자타공인 데이원의 간판이었다. KBL이 구단 운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데이원을 회원사로 받아들인 데는 농구계 거물이던 허재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허재는 공식석상에서 자신을 '데이원의 구단주'로 홍보했고 이를 내세워 예능 방송에 선수단과 함께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허재의 호언장담과 달리 1년도 안되어 구단 운영은 파행을 거듭했고, 임금 체불에 지친 선수단과 구단 직원들이 국회까지 찾아와 사태해결을 읍소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그리고 구단 대표라던 허재는 데이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췄다.
데이원이 KBL로부터 제명이라는 철퇴가 내려지는 순간에도 허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KBL은 허재에게도 책임을 물어 퇴출조치를 내리면서 앞으로 구단의 대표, 지도자 등 모든 농구계 관련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다행히 데이원의 선수단은 대명소노그룹이 그대로 인수하여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구단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하마터면 심각한 파행을 겪을뻔했던 농구계는 구세주처럼 등장한 고양 소노 덕분에 10개구단 체제를 유지하며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데이원 사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관련자들의 잘못이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허재가 데이원의 구단 운영이나 재정 위기에 직접 개입한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부실 구단인 데이원에 리그에 들어오는데 관여한 것이나, 제명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기까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정작 허재는 공식석상에서 단 한번도 반성이나 사과도, 책임지려는 모습도 보인 적이 없다.
▲ TV조선 스포츠 예능 <조선체육회> 한 장면. |
ⓒ TV조선 |
이미 첫 회부터 개인의 친분과 유명세를 앞세운 인맥팔이에 더 치중한듯한 연출은 이런 우려를 더욱 높인다. 전현무와 허재는 방송에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귀>에 함께 출연했던 인연이 있다. 허재는 <조선체육회> 제작발표회에서는 스스로를 '무라인'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또한 허재는 발대식에서부터 자신의 친아들인 농구 국가대표 허웅-허훈을 비롯하여 배구스타 김연경, 야구스타 이종범-이정후 등의 이름을 들먹이며 "섭외는 잘할수 있다"고 인맥 과시에 치중했다. 본인과 엮이게 되었을 때 당사자들이 처할 수 있는 난처한 입장은 안중에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는 허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인물을 굳이 섭외한 제작진과 방송가의 고질적인 '도덕 불감증'과도 관련이 있다. <조선체육회> 제작진 역시 허재의 섭외에 대하여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방송, 특히 '예능'이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의 일방적인 변명이나 '이미지 세탁'을 위한 창구가 되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비판이 나와도 시청률과 화제성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방송사의 사회적 역할, 프로그램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제작진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차승원-방글이 PD 조합, tvN 판 '걸어서 세계속으로'?
- 32명의 목숨 앗아간 분노 범죄, 이들은 왜 살인했나
- "한 번도 없었던 국가의 사과, 'D.P.'에 꼭 넣고 싶었다"
- 스무살이 된 부모, 잃어버린 아이 포기해도 될까
- 김혜수는 오늘도 기적같은 '연기'를 합니다
- 의대 합격하고 동생 대신... 형이 죽고 난 뒤 알게 된 진심
- 그해 여름, 처음 간 다방에서 생긴 나만의 비밀
- 천국이 더 두려웠던 두 소녀, 그들은 왜 지옥을 택했나
- "몸값 절반 줄 수 없다"... '비공식작전'의 숨겨진 이야기
- 무장탈영병 비난하는 군 수뇌부, 진짜 '용서받지 못할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