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이 ‘트럭 맛집’…과도한 ‘육성’ 팬덤 문화에 우는 기획사들 [D:이슈]

박정선 2023. 8. 5.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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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엔터테인먼트(이하 YG) 사옥은 케이팝(K-POP)팬덤 사이에서 소위 ‘트럭 맛집’으로 통했다. 팬들의 트럭 시위가 잦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런데 이젠 트럭 맛집의 별명은 YG의 것만이 아니게 됐다. 그만큼 팬덤의 트럭 시위가 많아졌다..

ⓒ보이즈플래닛 파생그룹 반대연합 트위터

트럭 시위는 큰 LED 전광판을 탑재한 트럭이 시위를 벌일 회사 사옥 주위 도로를 돌거나, 사옥 앞에 정차시켜 두고 전광판에 메시지를 노출 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기획사 관계자를 향한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된다. 종종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한다.

연예계의 트럭 시위는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이미 2010년 후반, 팬덤 사이에서 ‘트럭 총공’으로 불리며 종종 사용하던 시위 방법이었다. 대표적으로 YG의 경우 2017년 소속 아이돌 그룹 아이콘의 한국 활동을 요구하는 시위가 진행됐고, 이후 2020년 위너 송민호와 강승윤의 솔로 활동 지원, 2019년 블랙핑크의 컴백 요구 등을 둔 트럭 시위가 이어졌다.

이 같은 트럭 시위가 일종의 유행처럼 번진 건 코로나 팬데믹 이후다. 당시 오프라인 집회가 제한되면서 적은 인력 대비 효과가 큰 트럭 시위가 잇따라 진행된 셈이다. 이 밖에도 신문이나 버스 광고보다 파급력이 높고, 트럭을 동원하기 위한 요금을 모금하는 것 만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는 편리성 등이 트럭 시위를 부추긴 요소들이다.

지난 7월, 한 달간 진행된 트럭 시위만 하더라도 최소 10건이 넘는다. 지난달 김재환과 장원영의 팬덤이 각각 악플러 처벌 등 가수 보호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있지 멤버 유나의 개인 활동 요구하는 팬덤의 시위도 진행됐다. 또 르세라핌 멤버 사쿠라의 개인 일정 제한 금지를 촉구하며 트럭 시위를 위한 팬덤의 옥외집회 신고서 접수증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레드벨벳, 태연, 더보이즈 등을 비롯한 다수 아이돌 팬덤이 트럭 시위에 나섰다. 현재도 정세운의 음악 활동 보장 촉구 시위, ‘보이즈플래닛’ 파생 그룹 반대 시위 등이 이어지고 있다.

팬덤의 트럭 시위의 영향력은 결코 우습게 볼 수준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5월 샤이니 팬미팅 진행 당시 팬덤은 시야 제한이 우려되는 장소를 섭외한 SM에 트럭 시위를 벌였고 SM은 이를 반영, 장소를 변경해 팬미팅을 진행했다. 같은 달 엔하이픈의 팬덤도 당시 발매된 신곡 ‘바이트 미’(Bite me)의 안무가 선정적이라며 하이브 사옥에서 트럭 시위를 진행했고, 하이브는 이들의 월드투어 콘서트 무대에서 해당 안무를 삭제하고 퍼포먼스를 선보이도록 했다.

그렇다고 모든 요구가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기존 아티스트의 활동 촉구 및 지원, 악플러 처벌 등 가수 보호, (논란이 된)특정 멤버 퇴출 요구 등에 머물렀다면 최근엔 아이돌의 메이크업 방식을 바꾸라는 요구부터 과도하게 스케줄에 개입하는 모습도 만연하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팬덤의 트럭 시위를 통한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에 기반하기 때문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회사의 방침이나 방향성, 전략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모든 의견을 다 반영하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 “특히 최근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요구를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데 팬덤은 곧 아티스트의 생명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소속사 입장에서 어떤 피드백을 내놓기도 곤란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이돌 팬덤의 트럭 시위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주체적으로 변한 아이돌 팬덤의 특성도 반영되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티스트를 동경의 대상으로 여기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팬들이 아티스트를 ‘육성’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한 아이돌 그룹 매니저는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그렇고, 소속사의 경우도 팬들이 아티스트의 육성에 개입하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아이돌이 만들어지기 전이나 신인 그룹의 경우 팬들이 직접 이들의 성장에 개입할 여지를 주면 팬덤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럭 시위 등 팬들의 개입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이 업계가 만든 셈”이라고 꼬집으면서도 “소속사와 팬덤은 아티스트의 성장을 위한 파트너십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소속사는 팬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고 팬덤 역시 대중의 피로도를 높이는 무리한 시위보다는 더 올바른 소통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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