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보존’과 ‘개발’ 사이…고도 제한 완화의 경제학 [경제칼럼]

2023. 8. 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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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약수 역세권, 북한산 주변 고도 제한 완화
각종 정비사업 탄력 받지만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고도 제한은 국가보안시설이나 문화재가 위치한 곳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설정된다. 도시 경관 보호와 과밀 방지를 위해 건축물 높이의 최고 한도를 정하는 도시관리계획이 고도지구다. 서울시는 1972년 남산 성곽길 일대에 고도지구를 최초 지정한 이래 북한산, 경복궁 등 주요 시설물 주변을 고도지구로 지정, 관리해왔다.

예를 들어 공항은 항공기의 잦은 이착륙에 따른 사고 방지를 위해 인접 지역을 고도지구로 설정한다. 궁궐이나 고분 같은 시설물이라면 해당 지역 경관도 중요한 변수다. 쉽게 말해 고층 건물이 빽빽한 빌딩숲에 문화유산이 가려지거나 묻히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고도 제한 효과는 남산 같은 자연물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에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을 수요층으로 1972년 준공된 남산외인아파트는 경제 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이었지만, 남산 기슭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남산 경관을 가로막는다는 문제로 1994년 결국 철거됐다. 이때 국내에서 흔히 쓰이지 않던 폭파 해체 공법이 적용된 것은 사안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시가 최근 고도지구 완화를 추진하면서 도심 고도 제한이 이슈로 떠올랐다.

서울시의 ‘신(新)고도지구 구상안’에 따르면 남산 약수 역세권 일대는 최대 20m에서 최대 40m로, 북한산 주변은 20m 이하에서 최대 45m로 높이 제한이 각각 조정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은 51m 이하에서 170m 이하로 대폭 완화된다. 서초동 법원단지 주변과 오류동 일대 고도지구를 비롯해 높이 규제가 있던 한강변 역사문화특화경관지구는 지정 해제된다.

고도 제한 완화는 과연 필요할까. 고도 제한 완화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내세운다.

만약 높이 제한이 완화된다면 용적률 완화는 물론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까지 탄력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높이 규제 완화가 건폐율 감소로 직결되는 지역에서는 아파트 등 신축 건축물 환경이 크게 개선된다. 당연히 집값에도 호재라는 논리다. 더 나아가 일부 정비사업지는 한강변 단지 층수와 높이 제한이 완화된 만큼 타 지역 규제도 완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핵심이 단순히 서울의 고층 스카이라인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비춰보면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해묵은 규제인 고도지구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보존, 전면 개발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우려할 점이 적잖다. 남산을 가리든, 한강변이 안 보이든 일단 높게 지어 집도 많이 짓고 건물도 많이 올리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분석은 위험하다.

실제로 과거 인사동과 피맛골의 정경, 멀티플렉스 열풍을 따라 재건축되면서 과거의 모습을 상실한 서울 유명 극장을 떠올려보면 아쉬움이 크다.

이런 이유로 고도지구 완화도 보다 폭넓은 논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구도심과 신도심, 지역 보존과 개발은 각각의 매력이 있고 이들 모두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0호 (2023.08.02~2023.08.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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