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잡이'의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이유

김성호 2023. 8. 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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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519] <귀멸의 칼날> 3기 도공마을편

[김성호 기자]

흔히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들 하지만, 실은 선명한 귀천이 있다. 귀함과 천함이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나뉘게 마련이고 직업의 귀천 또한 그와 마찬가지다.

직업이란 결국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란 관점에선 돈을 많이 버는 일이 더 나은 일일 테다. 반면 수익이 적은 일은 그렇지 못하다고도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번다는 것만으로 그 일을 귀하다고 하지 않는다. 또 수입이 적다하여 어느 일을 천하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에게 귀함과 천함을 나누는 기준이 단순히 돈만은 아닌 탓이다.

세상의 온갖 가치가 일의 좋고 나쁨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가 있다. 누군가는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또 누군가는 제게 주어지는 여유로, 저를 변화하게 하거나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따위로도 일의 의미를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기준들이 서로 평등한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 귀멸의 칼날: 도공마을편 포스터
ⓒ 유포터블
 
대체 귀한 직업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과 그렇지 못한 업이 있다. 아주 많은 경우 주목받고 수입이 높으며 대접받는 직업이 그렇지 못한 직업보다 낫다고 평가된다. 처우가 좋지는 않으나 스스로 의미가 있다고 믿으며 꿋꿋하게 나아가는 이는 갈수록 줄어들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평가 또한 좋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귀멸의 칼날> 3기 '도공마을'편은 바로 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격렬했던 지난 싸움들, 즉 1기와 극장판인 무한열차편, 2기인 환락의 거리편을 거쳐 주인공 탄지로는 드디어 휴식기를 갖게 된다. 전편에서 또 한 번 제 검을 부러뜨린 그는 동생 네츠코와 함께 칼을 만드는 이들이 사는 도공마을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제가 만든 칼을 자꾸 분질러먹는 탄지로에게 화가 나 잠적한 대장장이를 만나 사과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다.

혈귀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숨겨진 도공마을엔 수많은 대장장이가 산다. 가업으로 전승돼온 기술로 오랫동안 쇠를 두들겨 잘 벼려진 검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검을 귀살대 대원들에게 전달되고, 대원들은 그 검으로 인간을 해하는 혈귀를 벤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이어진 혈귀와의 싸움 가운데 수많은 검이 못쓰게 됐고 또 그만큼 많은 검을 만들어야만 했을 테다. 그것이 대장장이의 업이다.
 
▲ 귀멸의 칼날: 도공마을편 스틸컷
ⓒ 유포터블
 
칼잡이 만화가 주목한 대장장이의 업

그 같은 기여에도 대장장이는 대접받지 못한다. 주목받는 건 언제나 귀살대 대원들이다. 같은 귀살대 안에서도 직접 검을 들고 적과 맞서는 이들과 그 뒤처리를 맡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시선이 다르니 대장장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최근까지 방영된 <도공마을> 편은 마을에 진입한 혈괴와 이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다. 지난 시리즈보다 규모를 키워 강력한 혈귀인 '상현'을 둘, 귀살대 최정예인 '주' 또한 둘을 등장시킨다. 탄지로는 두 명의 주와 함께 혈귀들을 상대하는데, 이 과정에서 도공과의 여러 에피소드가 등장하게 된다.

2기인 <환락의 거리> 편은 남성을 대상으로 술과 웃음을 파는 유곽의 이야기였다. 이곳에서 아름다움은 돈이 되었고, 그에 따라 아름다운 자에겐 온갖 영예와 존경이 따랐다. 반면 아름답지 못한 자는 멸시의 대상이 됐다. 드러난 혈귀의 사연은 이에 대한 것으로, 추하게 태어난 자가 겪은 온갖 고통이 그에게 차라리 혈귀의 삶을 선택하도록 했던 것이다.
  
▲ 귀멸의 칼날 스틸컷
ⓒ 유포터블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도공마을에서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곽에선 아름다움이 힘이었다면, 귀살대에 검을 납품하는 도공마을에선 기술이 추앙받는다. 그러나 그 기술은 가장 높은 가치가 되지 못한다. 검을 만드는 건 혈귀를 베기 위해서고, 혈귀를 베는 건 결국 귀살대 대원들이란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선망을 받는 것 역시 귀살대이며 주어지는 혜택 또한 크기에 귀살대의 일이 더욱 대단하다는 인식이 많은 이들에게 자리잡은 것이다.

그러나 <도공마을> 편은 거듭하여 이들의 일에 대단한 가치가 있음을 일깨우려 든다. 혈귀의 습격에도 끝까지 칼을 가는 일에 몰두하는 대장장이의 모습, 또 그렇게 만들어진 칼로 상대를 베어내는 장면 등을 통하여 일에 제각각 쓰임과 역할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탄지로가 거듭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싸움을 하는 것'이라거나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류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렇게 의미를 갖는다. 대장장이의 혼이 담긴 검을 통해서야 벨 수 있는 상대가 있고, 그렇다면 검을 든 귀살대원 만큼이나 그 검을 만든 대장장이의 역할도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귀멸의 칼날>의 폭발적 인기 가운데는 그저 악귀를 베는 칼잡이들의 이야기를 넘어 사람들에게 울림을 던질 수 있는 메시지가 자리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 중 상당수는 오늘의 세상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여러 가치, 이를테면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의 귀함이나 가족이며 동료의 의미 등의 것들이다. 사회가 놓친 것을 예술이 그러모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바로 <귀멸의 칼날>이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이유라 할 것이다.
 
▲ 귀멸의 칼날: 도공마을편 스틸컷
ⓒ 유포터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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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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