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부림? 각자도생해야”…현직 경찰 글, 공감받은 이유
서울 신림역에 이어 경기도 성남시 분당 서현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이후 전국적으로 ‘살인 예고’가 이어져 국민 불안이 커진 상황에 현직 경찰관이 “각자도생하라”는 글을 올려 이목을 모았다.
5일 온라인에 따르면 경찰청 소속이라고 밝힌 A씨는 분당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지난 3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칼부림 사건? 국민은 각자도생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칼부림 사건으로 피해 보신 분들, 잘 치료받아 건강해지시길 바라고 위로의 말씀을 먼저 드린다”고 말문을 연 뒤 “앞으로 묻지마 범죄 등 엽기적인 범죄가 늘어날 것 같은데 이대로는 경찰에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어 “호우, 폭염 등 이 세상 모든 문제와 민원은 각 정부 부처의 모르쇠 덕분에 경찰이 무한 책임을 진다”면서 “거기에다 범죄자 인권 지키려 경찰들 죽어 나간다. 공무원 중 자살률 1위인 경찰은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토로했다.
경찰이 범인을 적극적으로 진압할 경우 ‘과잉진압’을 이유로 배상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는 게 이유다. A씨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나열했다.
그는 “낫 들고 덤비는 사람한테 총 쏴서 형사 사건은 무죄가 났는데도 민사소송에서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다”며 “또 피해자를 칼로 찌르고 달아난 사람에게 총을 쏘자 형사에선 무죄가 나왔지만 민사에서는 7800만원 배상 판결이 나왔다. 정확히 허벅지를 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칼 들고 있는 흉기 난동범에게 테이저건을 쐈는데 피의자가 스스로 넘어져 자기가 들던 흉기에 찔렸다. 그런데 ‘경찰관이 범죄자 자빠지는 방향까지 예상했어야 했다’며 수억원을 배상하라는 2011년 레전드 판례도 있다”고 소개됐다.
또 경찰이 칼 들고 난동 부리는 사람에게 테이저건을 쏜 뒤 뒷수갑을 채우고 구급대원이 발을 묶었는데 용의자가 9분 뒤 의식을 잃고 5개월 뒤 사망하자 3억2000만원의 배상 판결이 난 사례도 언급했다. 테이저건 맞고도 저항하는 사람에게 뒷수갑 채운 건 물리력 사용 범위를 넘어섰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고 한다.
A씨는 “경찰 지휘부는 매번 총기 사용 매뉴얼이니 ‘적극적으로 총 쏘라’느니 말만 하지 정작 소송 들어오면 나 몰라라 하는 거 우리가 한두 번 보나”라며 “범죄자 상대하면서 소송당하고 심지어 무죄 받고도 민사 수천 수억씩 물어주는 게 정상적인 나라냐”고 비난했다.
그는 “여전히 범죄자를 우대하는 말도 안 되는 판례들이 매년 수십 개씩 쌓여가는데 그거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겠느냐”며 “칼 맞아가며 일해봐야 국가에선 관심도 없고, 선배들 소송에서 몇 억원씩 깨지는 걸 보면 ‘이 조직은 정말 각자도생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일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명감으로 시작한 신입들이 3년이면 무사안일주의 경찰관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적극적인 경찰관은 나올 수 없다”고 토로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개정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시행됐다. 개정안은 범죄가 행해지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범죄 예방 또는 진압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줘도 정상을 참작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경찰들 사이에선 법안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 윤희근 경찰청장은 4일 오후 긴급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국민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흉악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다”며 “흉기소지 의심자와 이상 행동자에 대해 법적 절차에 따라 선별적으로 검문검색 하겠다”고 밝혔다.
윤 청장은 실제 흉기난동 범죄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범인에 대해 총기나 테이저건 등 경찰 물리력을 적극 활용하라고 일선에 지시했다. 범행 제압을 위해 총기 등을 사용한 경찰관에는 면책규정도 적극 적용할 방침이라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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