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위협에도 콧방귀…35조원어치 韓무기 산 이 나라의 원한 [지도를 보자]
"사각형 모양과 비슷한 이곳은 어디일까요?"
추가 정보를 드리자면
■ 힌트
「 ①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년)의 나라
②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곳. '동유럽의 파리' 바르샤바는 폐허가 됨
③ 대우차(1993년)·LG전자(2005년)·삼성전자(2010년) 등 韓기업 300여개 진출
」
주변 지도를 살펴볼까요.
정답은 중부 유럽에 있는 폴란드입니다. 무려 7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입니다. 북쪽으로는 발트해와 러시아의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 동쪽으로는 리투아니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 남쪽으로는 슬로바키아·체코, 서쪽으로는 독일과 접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위치 때문에 강대국의 패권 경쟁에 희생양이 된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정치학과 석좌교수는 '전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나라'로 한국과 함께 폴란드를 꼽았다고 합니다.
강대국에 지배당한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 폴란드는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1989년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후, 친(親)서방 노선을 선택했죠.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2004년 유럽연합(EU)에 차례로 가입했고요. 지정학적 이점과 저렴한 인건비·양질의 노동력을 내세워 유럽 생산·물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고속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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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벨라루스, 폴란드 위협 고조
정치·경제 자유화를 이루고 30년 넘게 성장해온 폴란드에 최근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지난달 무장 반란에 실패한 러시아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 용병들이 러시아 최대 우방국인 벨라루스로 거점을 옮겼는데요. 러시아·벨라루스가 폴란드에 '발톱'을 드러내고 있답니다.
지난달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폴란드가 벨라루스 영토에 대해 야망을 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벨라루스에 대한 공격은 러시아 연방에 대한 공격을 의미하며, 러시아는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했죠. 그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바그너 용병은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적극 도운) 폴란드에 원한을 품고 있다"며 "바르샤바(폴란드 수도)와 제슈프(폴란드 국경 인근 도시)를 보고 싶어한다"고 말했습니다.
긴장한 폴란드는 벨라루스와의 국경 지대를 주시하고 있는데, 벨라루스 측의 도발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일에는 국경 근처에서 훈련 중이던 벨라루스 군용헬기가 폴란드 영공을 침범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29일엔 바그너 용병 100여명이 폴란드 국경과 리투아니아 사이의 약 100㎞ 길이 국경지대 '수바우키 회랑' 인근으로 이동한 게 확인됐죠.
수바우키 회랑은 '나토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립니다. 벨라루스·러시아군이 이곳을 점령하면 러시아 본토~벨라루스~칼리닌그라드를 잇는 육지 회랑이 만들어지면서, 나토 가입국인 발트 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과 폴란드 사이가 차단됩니다.
우크라이나 지원 줄이려는 의도
사실 바그너 용병과 벨라루스군이 보내는 이런 위협 신호는 "공허한 협박"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나토국인 폴란드를 공격하면 나토 헌장 5조가 발동돼 미국 등 다른 나토 회원국들이 공동방어에 나서기 때문이죠. 자칫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어 러시아나 벨라루스도 원치 않는 상황이죠.
그런데도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 용병과 벨라루스를 이용해 폴란드를 위협하는 건 우크라이나에 대한 폴란드의 각종 지원을 줄이게 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어요. 폴란드는 다가오는 가을 총선을 치릅니다. 리호르 니즈니카우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푸틴이 폴란드 국민에게 불안감을 조성해 3차 세계대전을 막으려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건, 그만큼 폴란드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가 크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지원 추적기'에 따르면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1월 말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우크라이나에 약 43억 유로(약 6조1000억원)의 군사·재정·인도적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아울러 다른 서방 동맹국이 꺼리는 전차·전투기까지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등 우크라이나의 최우방국을 자처하고 있어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반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도 폴란드인 10명 중 6명은 우크라이나인을 계속 돕겠다고 합니다.
200년 넘게 러에 당한 역사 새겨
푸틴 대통령이 폴란드에 공포 전략을 쓰려 하지만 폴란드 국민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듯합니다. 이들은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러시아의 바로 다음 목표는 폴란드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거든요.
폴란드는 18세기 이후 200년 이상을 러시아의 침략으로 고통받았습니다. 1772∼1795년 3차에 걸쳐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 삼국에 의한 영토 분할 끝에 결국 123년 간(1795~1918) 나라를 잃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 폴란드 공화국을 세웠지만 20여년 만에 또 분할 지배당합니다. 1939년엔 2차 세계대전의 전쟁터가 됩니다. 나치 독일과 소련은 양국이 폴란드를 분할 지배한다는 비밀 약정을 맺었습니다. 이어 두 강대국이 차례로 침공해 폴란드를 폐허로 만들었죠.
당시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독립국으로 일어설 수 없도록 '폴란드 엘리트'의 씨를 말려버리겠다"며 대학살을 저지릅니다. 소련 비밀경찰은 러시아 남부 스몰렌스크에 있는 카틴 숲에서 폴란드 장교·경찰·교사·의사 등 2만2000명을 총살하고 매장했죠.
폴란드인에게 카틴 숲 학살은 러시아에 대한 원한의 상징이 됐죠.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1945년 다시 독립했지만, 소련의 통제를 받는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또 자유를 박탈당했습니다.
한국 무기로 '유럽 최고 지상군'
카틴 숲의 학살을 기억하는 폴란드가 러시아군의 침공을 받게 된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겠죠. 폴란드는 군사력 증강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국방비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하고, 신무기 구입과 병력 보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산 무기를 대거 구입해 화제가 됐습니다. 지난해 7월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72문, FA-50 경공격기 48대, 천무 288문 등 35조원 규모의 무기를 사들이는 기본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병력도 2배 이상 늘릴 계획입니다. 폴란드군은 현재 약 12만명 정도인데, 2035년까지 30만명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지난해 1만4000여명의 신병이 입대했는데, 이는 지난 2008년 징병제가 폐지된 후 가장 많은 수였답니다. 민간인을 위한 단기 군사훈련 과정도 인기가 높습니다. 총·수류탄 등 무기 사용법을 배우는데 하루 정원 10명에 1500명이 몰리는 등 엄청난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하네요.
폴란드의 최우선 목표는 지상군 전력의 확충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전차·포병·보병 등 재래식 전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차·자주포 등을 대거 사들인 거죠. 제이미 셰어 전 나토 대변인은 "한국에서 구입한 전차(1000대)를 전부 인수하면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의 전차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전차를 갖게 될 것"이라면서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지상군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해 11월 독립기념일에 "폴란드군은 싸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힘이 있는 강력한 군대가 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죠. 물론, 군사비 지출이 커져 국가 예산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맞아 '역사 전쟁'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세계 2위의 군사 대국 러시아의 위협에도 '콧방귀'를 뀔 정도로 당당해졌습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지난해 독일 매체 빌트와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을 독일 나치 독재자였던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에게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는 사람이 있었나?" 푸틴 대통령과 대화를 시도하는 독일·프랑스 정상을 정면 비판한 겁니다.
지난달엔 푸틴 대통령이 "폴란드는 자신들의 서부 영토가 스탈린의 선물임을 잊고 있다"고 발언하자, 폴란드 정부는 곧바로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습니다. 파벨 야블론스키 폴란드 외교차관은 “(과거 스탈린에 비견되는) 푸틴이라는 현대의 전범이 옛 전범 스탈린의 무죄를 주장하려는 시도”라고 푸틴의 주장을 반박했고요.
푸틴의 발언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 과정을 언급한 건데, 당시 미국·영국·소련 등 3대 연합국이 패망한 독일 영토 일부를 폴란드에 넘기고 폴란드 동쪽 영토는 소련이 가져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푸틴의 주장은 억지에 가깝습니다. 독일 영토 일부를 폴란드에 넘기도록 한 조치는 스탈린 혼자 결정한 게 아니고 미국·영국·소련의 합의 사안이었을 뿐더러, 대신 폴란드는 동쪽 땅 일부를 소련에 빼앗긴 거니까요.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엔 성소수자 정책, 사법권 독립 문제 등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나라'로 꼽히며 EU·미국과 자주 마찰을 빚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서방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으로 떠올랐죠. 폴란드의 소망처럼 자주국방 노력이 결실을 거둬 러시아의 서진을 막는 '유럽의 방패'가 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 용어사전 > 지도를 보자
글로벌 초연결의 시대, 국제뉴스가 21세기 한국인의 삶에 더욱 긴밀해지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국제부의 ‘지도를 보자’는 지구촌 곳곳 뜨거운 이슈를 지정학의 틀에서 흥미롭게 파헤쳐 드립니다.
」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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