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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현 2023. 8. 5.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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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 만연한 ‘무급 인턴’
월급 대신 받는 증명서 한 장
“인턴은 공짜 노동자 아냐”
게티이미지뱅크


여름 방학이면 전 세계 대학생들은 ‘인턴’ 기회를 잡기 위해 분주하다. 높은 취업 문턱을 뛰어넘기 위해 경험의 포트폴리오를 쌓는 시간이다. 한정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이런 ‘간절함’을 이용해 세계 곳곳의 기업, 기관들은 인턴직 상당수를 ‘무급’으로 운영한다. 노동 착취라는 비판이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으로 생활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무급 인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보도했다.

주 35시간 한 달 일해도 ‘무급’

프랑스 파리1대학(팡테옹소르본)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릴루 개이(20)는 지난 6월 2일부터 지난달 1일까지 파리에서 30㎞ 떨어진 보레알의 한 미술 도서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도서관 이용객에게 비치된 예술 작품을 설명하고 도서관에 작품을 보낸 작가들의 정보를 담은 팸플릿을 제작하는 업무를 맡았다. 새로 추가된 작품을 모아 컬렉션을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다. 책 정리, 반납·대출 등 도서관 업무도 그의 몫이었다. 주 35시간, 한 달을 꼬박 일했지만 급여는 없었다. 무급 인턴이었기 때문이다. 인턴십을 마친 개이가 얻은 건 인턴 활동을 인증하는 증명서 한 장이었다.

프랑스는 2014년부터 학위 이수와 무관한 무급 인턴십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2개월 이상 근무하거나 309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에만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마저도 최저생계비의 15%인 4.05유로(약 5677원)를 시간당 받게 된다. 개이처럼 학위를 위해 인턴을 할 경우는 법적으로 무급이 가능하다.

개이는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무급’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제 조금 알 것 같다”며 “내 업무도 전문가들이 하는 일만큼이나 가치 있는 일이고 그러므로 보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도 인턴 자리를 구하는 일이 매우 복잡한데 무급 인턴이 완전히 금지되면 회사가 인턴을 채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현재 개이가 다니는 대학은 학년 진급을 위해 인턴을 필수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급여보다 기회를 얻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라면’만 먹어도 월 145만원 필요

유럽만의 문제는 아니다. WP에 따르면 유엔, 미국 의회 사무실, 박물관 등에서 무급 인턴십이 여전히 운영된다. 백악관은 지난해에야 인턴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무급 인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전미대학고용자연합(NACE)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미국 인턴의 47%가 무급이었다.

유럽연합(EU) 의회는 지난 6월 학업 완수와 관련이 없는 무급 인턴십을 금지할 것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통과시켰다. 고용주가 각국의 생활비를 고려해 식비와 주거비, 교통비 등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단 법적 구속력이 없고 대학원생은 이 규칙에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한계가 있다.

유럽청년포럼 연구에 따르면 무급 인턴이 라면만 먹는다고 가정해도 월평균 1028유로(약 145만원) 생활비가 필요하다. 무급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최소 생활을 보장할 여유가 부족한 사람들을 차별한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통비와 식비, 생활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청년들은 인턴을 하고 싶어도 쉽게 나설 수 없는 것이다. ‘인턴 경험’ 한 줄은 노동 시장에서 중요한 요소다.

유럽청년포럼 이사회 소속 마크 맥널티는 벨기에 일간 브뤼셀타임스에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급해야 하는 것은 보편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들은 젊은이들이 첫 직장 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점을 기꺼이 이용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또 “EU 의회는 더 이상 청년들을 배신해서는 안 되며 무급 인턴십을 금지하는 구속력 있는 법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공짜 노동은 윤리적이지 않다”
무급 인턴제 폐지를 촉구하는 청년들이 지난해 11월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국 앞에서 ‘무급은 불공정하다’ ‘인턴에게 급여를 지급하라’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청소년 자원봉사자 기반 활동 단체 ‘공정 인턴 이니셔티브’ 인스타그램 캡처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에서는 지난달 3일 무급 인턴십 금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청년들은 거리에서 “무급은 불공정” “가치 있는 경험에서 밥이나 쌀이 나오지 않는다(Valuable experience won’t pay the rent)” 등의 내용이 담긴 팻말을 들고 무급 인턴 폐지를 촉구했다. 키프로스 청년 위원회는 “우리의 입장은 모든 직무에 대해 유급 인턴십이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EU 집행위원회가 필요한 규정을 만들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한 학생이 학위 취득에 필수 조건인 무급 인턴십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여 SNS에서 주목받았다. 대학생 라시아 알주니드(24)는 지난달 14일 X(옛 트위터)에 곧 인턴십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히며 “인턴은 공짜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 사진을 올렸다. 그는 “인턴은 말레이시아 고용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해 기업으로부터 착취당할 위험이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인턴을 하는 동안 학생들은 대학 시설을 사용하지 않고 수업을 듣지 않는데 왜 일반 학기와 같은 액수를 등록금으로 내야 하느냐”고 따졌다. 이 글은 1만500건 이상의 공유, 790만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미 위스콘신 매디슨대의 대학 인력 전환 연구센터의 책임자인 매슈 호라는 “무급 인턴십의 금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면서도 “조만간 이러한 제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낙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공짜 노동의 비윤리적 본질’을 무시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호라는 “노동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주어져야 하고 특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급여를 지급하는 게 옳다”고 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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