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기의 민낯 보는 일 여전히 괴로워요”

임세정 2023. 8. 5.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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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수’ 주연 김혜수 인터뷰
최근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신작 ‘밀수’에서 주인공 춘자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기를 쓰고 연기를 준비하는 건 배우로서 ‘기본’을 하는 것일 뿐 열심히 했다고 해서 잘 못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을 순 없다. 현장이 좋을 수 있지만 행복하긴 어려운 건 누가 나를 괴롭혀서가 아니라 내가 내 민낯을 보는 게 괴롭기 때문이고, 그래서 눈물이 나더라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이렇게 말했다. 연기 경력이 40년에 가까워졌지만 그는 여전히 한계와 싸우고 있다고 했다. 겸손한 말 속에 오래된 고민이 담겨있었다.

최근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신작 ‘밀수’에서 김혜수는 주인공 춘자 역을 맡았다.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해녀들이 일생일대의 큰 밀수판에 휩쓸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춘자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면서도 1970년대 배경에 맞춰 화려한 패션을 선보인다.

김혜수는 춘자에 대해 “태생적으로 외로운 캐릭터다.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내면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밝게 행동한다”며 “그런 춘자에게 진숙(염정아)은 안락함과 따뜻함을 주는 유일한 존재, 가족 이상이다. 춘자의 외적인 요소들은 위장에 가까운데 당시 자료들을 참고해 영화의 재미 요소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촬영을 시작할 당시에는 걱정도 많았다. 영화 ‘도둑들’ 촬영 당시 수갑을 찬 채 물에 빠지는 장면을 찍으면서 물에 대한 공황이 생긴 탓이다. ‘해양범죄활극’을 표방한만큼 해녀들은 깊은 바다에 들어가 액션 연기까지 소화해야 했다.

그는 “배우들이 3개월 정도 열심히 수중 훈련을 받았는데 ‘소년심판’을 촬영하고 있을 때라 참여하지 못했다. 물이라는 공간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내 상태가 예측이 안 돼 불안했다”면서 “물에 몸을 담가보고 괜찮은지 체크해보고 안 좋으면 수면에서 적응하고 다시 들어가는 작업을 반복했다”고 촬영 과정을 설명했다.

김혜수는 이번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팀워크와 시너지를 강조했다. 김혜수는 “‘밀수’는 처음으로 행복하다고 느낀 현장이었다”며 “배우들이 한 팀으로서 느꼈던 일체감, 파트너인 염정아와의 호흡, 물 속에서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라고 돌이켰다.

이어 “매 작품 구성원으로서 현장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팀원으로서 내 역할과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상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도 했다. 김혜수는 “캐스팅도 대본 작업도 내가 하는 게 아니다. 난 긴밀하게 준비해서 연기를 해낼 뿐인데 좋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건 운”이라며 “좋은 사람들이 모였다 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연기, 영화적인 성과와 별개로 잊지 못할 경험”이라고 말했다.

‘특급 칭찬’으로 후배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답게 이번에 함께 작업한 고민시, 박정민 등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김혜수는 “잘 하는 배우가 눈 앞에 있으면 흥분되고 신난다.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하지 싶었다”며 “앞으로 보여줄 게 훨씬 더 많은 배우들을 보며 나는 과거에 어땠는지 돌이켜보기도 했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서 연기한 장면을 계속 모니터링하게 됐다”고 말했다.

상대역 권상사를 연기한 조인성에 대해선 “외모가 멋지기도 하지만 연기할 때는 주로 상대방의 눈을 보게 된다. 원래 성격은 유한데 눈이 엄청 매서운 사람”이라며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서늘한 눈빛을 가진 배우”라고 전했다.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스스로 편안해지는 방법을 김혜수는 찾고 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체를 인정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해도 극복이 안 되는 단점도 있다”며 “자조하는 게 아니라 나를 제대로 보고 너무 괴롭히지 말아야겠다는 의미인데, 그게 뜻대로 잘 되진 않는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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