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에 우는 교사들… ‘교권 지키기’ 국회가 나설 때
교사들 초중등교육법 개정 요구
법 개정 없인 ‘생활지도권’ 반쪽
교권침해 학생부 기재 진통 예상
서울 서이초등학교 2년차 교사의 극단적인 선택에서 촉발된 교직사회의 분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교권 침해와 관련해 교사들이 ‘미투’(나도 당했다)에 나서면서 일부 학생·학부모로부터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폭로되고 있다. 교사가 교육활동을 제대로 못하면 교실은 붕괴하고 학교는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몫으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교직사회만의 분노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이달 중 ‘교권 보호 종합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하지만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손보기 위해서는 국회에서의 입법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사들은 아동학대 관련 제도 개선을 가장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교사들은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면 협의를 벗을 때까지 교단에 설 수 없다. 가해자·피해자 즉시 분리를 통해 아동을 보호한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최근 5년 동안 교사가 아동학대로 고소·고발돼 수사받은 사례 1252건 중 무혐의 종결이나 불기소 처분을 받은 사례는 676건(53.9%)으로 절반이 넘는다.
교사는 혐의를 벗더라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은 채 교실로 돌아가게 된다.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 주저하고,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2030청년위는 “수업 중 자는 아이 깨웠다고 폭언, 돌아다니는 아이 훈계했더니 폭행, 음료수 자주 마시면 살찐다고 말했더니 아동학대 사과 요구가 돌아온다. 이제 놀랍지도 않다”며 “그렇게 해도 교사가 할 게 없으니까, 참고 넘어가니까 교권 침해와 악성 민원은 끝없이 교사를 막다른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교원 단체들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요구해 왔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에 대응해 교원에게 면책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아동학대로 규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아동학대처벌법 개정 요구도 이와 맞물려 있다. 교사들은 학부모의 단순 의심만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고 있으며, 이 경우 지방자치단체 조사와 경찰 수사를 받는 ‘이중고’에 시달린다고 주장한다. 교사가 정당하게 학생을 지도하다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을 경우 지자체와 경찰은 조사나 수사 착수에 앞서 반드시 교육청 의견을 청취토록 법을 고쳐 달라는 요구다.
국회가 아동학대 관련 법률을 개정하지 않으면 최근 법령 개정으로 교사에게 부여된 학생생활지도권도 반쪽짜리가 될 우려가 있다. 교사에게 생활지도권을 부여하는 초중등교육법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 6월 28일부터 시행됐다. 교육부는 이를 구체화한 훈령을 준비 중이다. 학교 현장에서 적용할 생활지도 범위와 방식을 담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교사들은 상황별 예시를 담아 구체적으로 지침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을 교실 뒤나 복도에 세워두거나, 교실에서 퇴장할 것을 지시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또는 수업시간에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떠들거나 딴짓하는 학생에게 반성문을 부과하고, 학부모를 학교로 불러 상담을 요구할 수도 있다. 교사들은 이런 생활지도에 따르지 않는 학생에 대한 구체적인 처분도 담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가 악성 민원 관철 수단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악용하고, 교사가 이를 두려워하는 상황에선 생활지도권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게 다수 교사의 생각이다.
교사들은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를 지원하는 학교폭력예방법 개정도 시급하다고 본다.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올라 있다. 정당한 학교폭력 사안 처리나 학생생활지도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 내용이 핵심이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의 수업시간을 줄여주고, 법률 지원단을 통해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는 과중한 업무와 민형사상 책임 부담 등으로 기피 업무 1순위로 꼽힌다. 교원 단체들은 일부 학부모가 학교폭력 관련 생활지도나 사안 처리 과정에서 꼬투리를 잡아 아동학대 신고 등으로 대응하는 일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교권 침해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교원지위법 개정안은 진통이 예상된다. 학교폭력 가해 처분을 학생부에 남겨 입시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과 비슷한 조치다. 학교폭력 가해 전력의 경우 대입 학생부 중심의 수시뿐 아니라 정시에서도 불이익이 돌아갈 예정이다.
찬성 측은 교사의 생활지도에 힘이 실리려면 필요한 조치라고 본다. 반면 반대 측은 낙인 효과와 소송 남발 우려를 이유로 든다. 교권 침해 문제가 민감한 입시와 연계되면 학교폭력 사안처럼 소송 증가가 불가피해 결과적으로 교사가 더욱 힘들어지고,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여당은 학생부 기재 찬성 입장이지만 야당은 부정적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 ‘교육활동 침해 예방 및 대응 강화 방안’에서 중대한 교권 침해 사안은 학생부에 기재하는 방안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교원지위법이 야당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불발에 그쳤다. 최근 교사들의 공분이 확산하고 사회적으로도 교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자 교육부가 재차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은 여전히 부정적 입장을 보인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젊은女 얼씬 마” 칼부림 예고글…이대 긴급 문자발송
- 대전 교사에 흉기 휘두른 20대 “사제지간” 진술
- 중국, 한국인 마약사범 사형집행…필로폰 소지죄
- “피투성이 쓰러져” “피팅룸 숨었다”…목격자들도 ‘쇼크’
- 녹취 들은 전문가 “주호민에 연민 느껴…아내 사과하라”
- “잠실역 20명 죽인다” 오리·서현역 이어 또 칼부림 예고
- 강남 고속터미널서 흉기소지 20대 체포…인명피해는 없어
- “서현역 흉기난동범, 대인기피증으로 고교 자퇴”
- [단독]서현역 난동범 중학생때 정신질환 “최근 3년 진료기록 없어”
- ‘신림 칼부림’ 조선 사이코패스 판정…“기준 부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