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60주년 공연 손숙 “연극은 끝이 없다… 최선을 다할 뿐”

장지영 2023. 8. 5.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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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삼각모자’로 배우 데뷔
지금까지 연극만 200편 넘게 출연
19일부터 신작 ‘토카타’ 선보여
배우 손숙이 지난 1일 서울 양재동 신시컴퍼니 연습실에서 열린 ‘토카타’ 기자간담회에서 주요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살다 보니 연극을 한 지 어느새 60년이 됐네요. 앞으로도 연극을 계속하겠지만 ‘토카타’는 제 이름을 내건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오랫동안 한국 연극을 대표해온 배우 손숙(79)이 올해 데뷔 60주년을 기념한 신작 ‘토카타’(19일부터 9월 10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를 선보인다. 고려대 재학 중이던 1963년 ‘삼각모자’로 데뷔를 한 그는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를 빼고 연극만 200편 넘게 출연했다. 그는 지난 1일 서울 양재동 신시컴퍼니 연습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연극은 정상이나 끝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특히 요즘 ‘토카타’를 연습하면서 1963년 첫 무대를 준비할 때의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소녀였던 손숙은 드라마센터에서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보고 연극에 매료됐다. 그리고 대학 입학 이후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 타고난 ‘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 장민호 선생의 권유로 국립극단에 1971년 입단한 그는 20년간 간판배우로 활약했다. 이어 극단 산울림에서 연출가 임영웅과 함께 ‘위기의 여자’ ‘셜리 발렌타인’ 등에 출연하며 여성연극 붐을 일으켰다. 그는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에서 다섯 차례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유일한 배우이기도 하다.

‘토카타’ 제작진과 배우들. 왼쪽부터 박명성 PD, 배삼식 작가, 손진책 연출가, 손숙, 김수현, 정영두, 이태섭 무대미술 감독. 연합뉴스


극작가 배삼식이 쓰고 연출가 손진책이 연출을 맡은 ‘토카타’는 이탈리아어 토카레(toccare·접촉하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오래 키우던 개를 떠나보낸 늙은 여자(손숙)와 바이러스에 감염돼 혼수상태에 빠진 중년 남자(김수현)가 들려주는 독백, 춤추는 사람(정영두)의 몸짓 그리고 작곡가 최우정의 음악이 각각 독립된 악장이지만 하나의 곡을 이루듯 전개된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앞서 작품의 앞부분이 공개됐는데, 특별한 내러티브 없이 두 명의 이야기와 한 명의 춤이 교차하는 독특한 형식이었다.

손숙은 “60주년 기념 공연이라고 해서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했는데, 대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들었다”면서도 “하지만 대본이 매우 신선했다. 배우가 채워야 할 여지가 많은 만큼 작품이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흔히 기념 공연은 배우의 대표작을 리바이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에 쉽게 올릴 수 있는 잔치 같은 공연보다는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토카타’는 배삼식 작가가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혼자 산책하면서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촉각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오래된 감각이지만 당시 전염 때문에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던 상황에서 접촉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배 작가는 “‘토카타’는 결국 극한의 바닥에서 느낄 수 있는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무대장치를 최대한 배제하고 배우의 목소리에 집중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숙과 각별한) 박정자 선생님으로부터 힘든 작품을 손숙 선생님께 드렸다고 혼났다”면서 “하지만 작가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관객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이야기를 쓰는 게 손숙 선생님에게도 예의라고 생각한다. 또한, 손숙 선생님이 아니면 이 작품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사실상 대사가 많은 독백극이라는 점에서 ‘토카타’는 배우로서 연기하기가 만만치 않다. 첫 부분부터 엄청나게 긴 대사량이 질릴 정도다. 실제로 손숙은 이날 시연에서 대사를 잠깐 까먹은 것을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손숙은 이번 작품에 만족을 표했다. “배삼식 작품을 좋아하는 게 대본에 향기와 품위가 있어서다. 이번에 배 작가의 작품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라는 그는 “이 작품을 하면서 내 인생을 쭉 돌아보게 됐다. 남편,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쓸쓸하게 혼자 남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며 내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당초 ‘토카타’는 지난 3월 개막할 예정이었지만 1월 손숙이 넘어져 다리 부상을 입으면서 연기됐다. 손숙은 3개월간 걷지 못한 채 집에 누워있다시피 해야 했다. 그는 “내 불찰로 공연이 연기돼 신시컴퍼니를 비롯해 많은 사람에게 폐를 끼쳤다. 또한, 꼼짝없이 집에 있다 보니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면서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품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 들어 시력이 나빠지는 바람에 대본을 녹음해야 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듣고 외웠다. 어떤 면으로는 개막이 연기된 것이 배우로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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