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화장품은 없다?
화장대를 지배한 가스라이터
저자극, 10無, 자연 유래 성분, 비건 인증 등 온갖 문구로 치장한 대한민국 화장품들. 이처럼 어느 순간부터 화장품 산업은 자연, 휴식, 힐링과 같은 언어들로 포장되고 있다. 자연스레 우리의 화장대와 파우치 역시 해당 카테고리에 부합하는 것으로만 채워가고 있지만 사실 화장품은 앞서 말한 아름다운 단어들과는 거리가 멀다. 정확히 말하면 전혀 연관이 없다. 화장품은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제조 산업에 해당하며, 이를 만들어내는 기술부터 과정까지 100% 화학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자연 친화적인 문구들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잘못된 신념과 신빙성 없는 정보들이 화장품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우리 화장대야말로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포의 대상, 화장품
어느 순간부터 화장품이 공포의 대상이 됐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화학 성분의 유해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우리는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자연 친화적인 제품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된 것. 하지만 흔히 말하는 ‘착한’ 화장품은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쁜’ 화장품과 큰 차이가 없다. 또 우리가 피해야 하는 성분 역시 해당 화장품에는 유효한 성분 중 하나며, 사용해야 하는 비율과 배합 모두 몇 년간의 연구를 통해 검증된 결과를 바탕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때 발암물질로 문제가 됐던 미네랄 오일을 예로 들면, 당시 많은 매체가 ‘석유 찌꺼기로 만든 싸구려 오일’, ‘휘발유보다 더 안 좋은 오일’ 등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공포감을 조성했다. 이후 화장품업계에서 미네랄 오일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며, 이제껏 본 적 없던 각종 식물성 오일이 쏟아져 나왔다. 과연 사실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해외 각종 매체와 과학 저널들은 미네랄 오일에 대해 가장 뛰어난 보습 효과를 가진 순한 오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 내용에는 어떤 정제 과정을 거쳐 화장품의 성분으로 활용되는지 정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자극적인 헤드라인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보도로 소비자들은 제대로 된 정보는 모른 채 단편적인 예만 믿으며 가스라이팅당해온 거다.
세상에 나쁜 화장품은 없다
각종 유튜브, 화장품 관련 앱은 ‘20가지 주의 성분’, ‘알레르기 유발 성분’으로 화장품을 구분 지어 “착하다”, “나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단순 명료하게 정리한 순위만 확인하며 손쉽게 착한 화장품을 고른다. ‘알아서 지식을 떠먹여주는 전문가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들을 더 찾을 수밖에 없게 된 거다. 그렇다면 이들은 ‘진짜’ 전문가라 할 수 있을까? 이들이 말하는 ‘20가지 주의 성분’만 봐도 알 수 있다. 신뢰할 만한 과학적 출처가 바탕이 된 것도 아니고, 특정 기관의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화장품 비평가 최지현은 생리대,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화학 성분에 대해 소비자들의 불안과 공포심이 커지며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블랙리스트는 소비자를 혹하게 했을 거라 말하며 케미포비아 시대, 전문가들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고, 소비자들 역시 불분명한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길 권했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자
나쁜 화장품도 착한 화장품도 없다. 점수를 매기 듯 등급을 나눠 열을 짓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알레르기 유발 성분과 독성 성분이 어떤 이에게는 자극을 줄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마치 수많은 화장품을 추천받아도 호불호가 갈리는 것처럼 말이다. 화장품의 선택지가 이렇게 변한 것은 심리적인 문제가 크다. 미디어와 수많은 전문가가 만들어낸 화장품에 대한 불신과 공포심. 하지만 이는 잘 알아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잘 몰라서 두려운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파문피부과 문득곤 원장 역시 화장품 원료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화학 성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민간 단체에서 만든 기준을 통해 베스트 화장품으로 선정됐다고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니 좀 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답했다. 그의 말처럼 화장대 위를 가스라이터들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화장품을 고르는 기준이 나 자신이 되면 된다.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을 때 비로소 화장품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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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 list
화장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ㅁ 안전성은 성분 하나로 판단할 수 없다
화학제품의 경우 절대적 안전도, 절대적 위험도 없다. 화장품은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유해한 성분이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함유돼 있지 않다는 말이다. 또 해당 성분의 양과 노출량, 노출 방식 등을 고려해 유해성을 따져야 하며, 독성과 유해성, 위해성을 구분해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ㅁ 착한 화장품에 대한 근거는 희박하다
임상 시험, 테스트 등 꽤나 신빙성 있어 보이는 그럴듯한 말들을 상용하지만, 조사 표본의 규모가 너무 작거나 빈약해 100% 정확하다 판단할 수 없다. 즉 이를 자세히 보면 객관적인 자료보다는 취향에 가까운 결과물이 많으니 오히려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ㅁ 검증받은 나쁜 성분이 더 많다
화장품 업계에서 금기어처럼 생각하는 파라벤, PEG 등의 성분은 모두 식약처에서 허가했을 뿐 아니라 FDA, EU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 등 공인된 기관을 통해 검증된 성분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성분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문제는 이런 성분 대신 함유된 일부 대체 성분이 더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ㅁ 알레르기는 쉽게 유발되지 않는다
특정 성분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반응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극소수의 사례를 예시로 활용하며 ‘착한 화장품’이라 칭송하는 사례 역시 많다.
ㅁ 금지된 성분은 어디 있을까?
딱 20개만 외우면 누구나 착한 화장품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함정이 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위험한 성분은 애초에 화장품 성분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들도 있기 때문. 애초에 ‘화장품 안전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사용할 수 없는 원료들을 그럴 듯하게 적어 특정 성분들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 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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