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강등, 한국이었다면… [임상균 칼럼]
한국도 국가 채무 위험 수위…수출·경기는 ‘최악’
돈풀기 포퓰리즘 빠졌다간 투자자금 썰물 불 보듯
소식이 전해진 직후만 해도 전 세계 금융 시장은 바짝 긴장했다.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을 때 전 세계 증시가 큰 충격에 빠진 경험이 있다. 한국 코스피의 경우 당시 6거래일 만에 17%나 급락했다.
다행히 신용등급 강등 이벤트는 일과성 이벤트로 지나가는 분위기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결과다. 우선 미국 신용등급이 내려갔다고 해서 글로벌 투자자금이 옮겨 갈 곳은 마땅히 없다.
DB금융투자에 따르면 글로벌 3대 신용기관 중 한곳에서라도 최상위 등급을 받은 국가가 미국을 포함해 총 12곳이다. 12개국이 발행한 국채 잔액이 33조달러인데, 그중 미국채가 27조달러로 82%의 비중을 차지한다. 독일, 캐나다, 호주 등의 국채가 미국 다음으로 많은데, 규모 면에서 미국 국채를 팔고 사들일 만한 규모가 못 된다. 신용등급이 떨어졌다고 미국 국채를 팔아봐야 다른 대체 투자 대상이 없는 상황이다.
경제 상황도 다르다. 2011년은 미국 경제의 더블딥 우려와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글로벌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반면 지금 미국 경제는 한마디로 강건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 정책 종료를 머뭇거려야 할 정도로 고용 상태가 최고조다. 투자자들은 달러를 팔아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강등의 대상이 미국이었으니 다행이지 만약 한국이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피치가 미국 신용등급을 내리면서 밝힌 이유를 꼼꼼히 보면 한국도 안심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피치는 미국의 재정 적자 규모가 급격히 증가할 것을 지적했다. 한국의 국가 채무는 이미 위험 수위다. 2017년 660조원이더니 문재인정부에서 400조원 이상 급증했다. 올해는 10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런데도 재정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5월까지 쌓인 재정 적자가 52조5000억원으로 연간 목표치인 58조원에 육박한다. 세수를 36조원 이상 덜 거뒀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도 불안하다. 주요국 중 올해 GDP 성장률이 하향 조정되는 유일한 국가가 한국이다. 수출은 10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무역수지가 2개월 연속 흑자를 보였지만 수출이 잘된 게 아니라 수입이 급감하면서 나타난 ‘불황형’ 흑자다.
피치는 미국에 대해 여야의 정치적 교착 상태를 재정 관리에 대한 신뢰 약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재정 적자를 GDP의 일정 범위 내로 묶는 재정 준칙 제정을 놓고 여야가 34개월째 정쟁을 벌이는 한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한국이 더 걱정되는 이유는 신용등급 강등이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투자자들 입장에서 대체재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ATM’이라는 불쾌한 호칭으로 불리듯 자금을 빼내기도 매우 용이하다.
그런데도 야당은 35조원의 추가 경정 예산을 편성해 나라에서 돈을 퍼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총선에 다가갈수록 ‘돈풀기 포퓰리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파국을 막아야 하는 정부 책임이 막중하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1호 (2023.08.09~2023.08.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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