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도, 외출도 무서워요”… ‘살인 예고’에 떠는 시민들

유민지 2023. 8. 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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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묻지마 흉기 난동에 시민들 공포
연이은 살인예고에 외출 자제하는 분위기
시민들, “공포가 일상이 된 사회”
3일 서현역 AK플라자 쇼핑몰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으로 14명이 다쳤고 이 중 2명은 위중한 상태다.   사진=임형택 기자

“출근하려고 지하철에 탔는데, 누군가 제 뒤에서 찌를 것 같아 무서웠어요”

4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으로 출근한 직장인 김모(29)씨의 말이다. 김씨는 “3일 서현역 사건에 이어 오리역 살인 예고 글도 올라온 상황”이라며 “두려워서 호신술이라도 배우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3일 분당 서현역 AK플라자 쇼핑몰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 사건 이후, 비슷한 범행을 암시하는 예고글이 연이어 올라와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4일 오전 대전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찌르고 도주한 20대 남성이 검거되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흉기를 소지한 20대 남성이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살인 예고’만 7건… “밖에 안 나갈래요”

3일 오후 6시42분 한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8월4일 오후 6~10시 오리역 인근에서 칼부림을 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흉기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해당 글에선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경찰도 죽이겠다”라며 “전 여자친구가 그 근처(오리역)에 살기 때문에 네가 아는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묻지마 범죄를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이후에도 묻지마 범행을 예고하는 글이 여러 건 온라인상에 올라왔다. 분당 오리역 외에도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잠실역 등에서 범행을 예고하는 글들이었다. 해당 글들은 모두 삭제됐지만, SNS와 카카오톡 등으로 캡처 화면과 정리된 내용이 확산해 시민들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찰특공대 대원이 4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오리역에서 흉기 난동을 벌이겠다는 범행 예고 글에 대응해 순찰을 돌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서울 중랑구에 거주 중인 이모(29)씨는 3일 커뮤니티에 올라온 ‘살인 예고’ 글을 단체 메시지방에 공유했다. 지인들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그동안 기사를 통해 살인예고 글이 자주 있던 건 알았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글에서 살인 예고 장소가 친구 회사 근처인 걸 알고 손이 덜덜 떨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두려운 마음에 자녀를 직접 데리러 간 부모도 있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최모(61)씨는 퇴근하는 딸을 데리러 회사 앞으로 찾아갔다. 최씨는 “단톡방에서 받은 (살인 예고) 글을 보고 딸이 걱정됐다”며 “대중교통도 위험할 것 같았다. 직접 차를 운전해서 딸을 데려와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전했다.

“바로 옆 동네에서 칼부림이라니”… 공포의 일상화

직장인들의 출근길도 달라졌다. 판교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김모(28)씨는 4일 오전 출근길에 오리역과 회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거리를 확인했다. 김씨는 “출근도 외출도 겁나는 세상”이라며 “회사 단톡방에서 호신용품 공구 얘기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 중인 박모(28)씨는 당분간 여자친구를 집 앞까지 데려다줄 생각이다. 그는 “최근 사건들은 대낮에 유동 인구 많은 곳에서도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마음을 놓을 수 없다”며 “힘들어도 한동안은 (여자친구를) 집까지 데려다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했다. 

계획된 저녁 약속을 미루는 시민도 있었다. 서울 양재동 한 무역회사에 근무 중인 신모(30)씨는 “오늘 저녁 강남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미뤘다”며 “한국은 그래도 치안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서워서 어디 나갈 수가 없다”고 걱정했다. 신씨는 “살인 예고 글이 쏟아지는데, 경찰은 아직 추적 중이라고 하니 답답하다”며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당분간 외출을 자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4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의 흉기난동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가 생중계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력 총동원, 초강경 대응”

일부 시민들은 공권력이 아닌 자체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증권사에서 근무 중인 정모(30)씨는 “오늘 하루 종일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묻지마 흉기난동에 대해 얘기했다”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건을 접할 때마다 공포감과 두려움이 가득하다”고 불안을 호소했다. 정씨는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묻지마 범죄가 총기소유 논의 시발점이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자영업에 종사하는 김모(27)씨는 “공권력이 묻지마 범죄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개인 호신의 방법으로 총기 소유 얘기를 하게 될 것”이라며 “총기 휴대로 번지지 않게 행정력이 대비책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불안이 커지자 4일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정부는 경찰력을 총동원해 초강경 대응하라 지시했다”고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경찰은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흉기 난동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2주 동안 흉기 소지 의심자와 이상 행동자는 법적 절차에 따라 선별적 검문검색 실시하는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흉기 난동 범죄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회의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 신설을 논의했다”며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고 국민 여론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당정이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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