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아냐, 골든타임 놓친 것" 서현역 흉기범 앓은 이 질환
‘분당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가 과거 ‘분열성 성격장애’ 진료를 받았다고 경찰이 밝히면서 이 질환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분열성 성격장애는 조현병과 다른 병이다.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은 조현병 환자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잇따르는 묻지마 범죄의 원인이 정신질환이라는 근거가 없다. 사회적 안전망 부재나 주변 환경 탓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4일 경찰은 전날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백화점에서 흉기를 휘둘러 14명의 부상자를 낸 피의자 최모(22)씨에 대해 “범죄경력은 없고, 대인기피증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며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아 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또 조사과정에서 “특정 집단이 나를 스토킹하며 죽이려 한다” “사생활을 전부 보고 있다” 등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경찰은 “피해망상 등 정신적 질환에 따른 범행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가 진단받았다는 분열성 성격장애는 사회적 관계에 관심을 두지 않고 고립돼 살아가고, 감정 표현이 제한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 질환도 부정적 뉘앙스를 고려해 한국표준질병분류상 정식 명칭이 ‘조현성 인격장애’로 바뀌었다.
조현병과 조현성 인격장애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전자의 주요 증상은 망상·환청, 와해된 사고와 언어 등이다. 조현성 인격장애는 공상 등 기이한 사고 패턴이 나타날 수는 있으나 조현병의 망상 수준은 아니다.
따라서 최씨가 망상 증상을 보였다면 치료를 받지 않아 조현병으로 악화했거나,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 당시 조현병 초기 단계였을 가능성이 있다.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두 질환은 다른 질환이지만, 조현병 증상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이전 단계에서 진단받았다면 조현성 인격장애로 보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2015~2020년 정신과 2곳에서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으나, 최근 3년간은 치료 기록이 없다.
최씨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20대 초반이라는 점에서 조기정신증 치료를 적절히 받지 못한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기정신증은 주로 10~20대 젊은 사람에게 정신질환이 발병했으나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의 상태를 뜻하는 말로, 정신증 치료에 있어 ‘골든타임’으로 불린다. 한창수 고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진단을 내리기 불확실한 조기정신증 단계에서는 조현병이나 조울증, 분노조절 장애 등 어떤 정신장애로도 발전할 수 있다”며 “호주 등에는 조기정신증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특화된 기관이 있는데, 한국에는 아직 그런 조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 같은 질환은 만성화될수록 망상이 환자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게 돼 조기에 발견하는 게 중요하지만, 정신질환자의 입원 절차를 복잡하게 한 정신보건법 개정 이후 꼭 필요한 치료마저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며 “대학병원들이 수익 문제로 입원 병상을 줄인 문제까지 합쳐져 중증 정신질환 치료 환경이 굉장히 위축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현성 성격장애는 물론 조현병도 범죄로 직결되는 것은 아닌 만큼 범죄의 원인을 피의자의 정신질환에 초점을 맞춰 찾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창수 교수는 “정신질환자가 모두 폭력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사회·경제적인 스트레스나 개인의 불만을 외부에 터뜨리는 게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 등이 범죄를 촉발하는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사회 안전망 차원의 문제로 다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덕인 교수도 “정신질환자라고 해서 아무 이유 없이 분노를 터뜨리지는 않는다. 주변에서 누적된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며 “‘병 때문에 저렇게 됐으니, 병만 치료하면 된다’는 식의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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