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갔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추천 답사 코스
[정명조 기자]
환하게 웃는 산신령과 작은마누라와 본마누라가 새겨진 바위가 산허리에 있다. 작은마누라는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을 볼에 대고 있다.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며 놀린다. 본마누라가 이를 보고 짱돌을 집어던지려고 한다.
▲ 백제의 미소 마애여래삼존상을 마주하면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
ⓒ 정명조 |
한여름 더위가 절정을 보인 8월 초, 국립용현자연휴양림을 찾았다. 백제의 미소를 보며 같이 웃음 짓고, 보원사 터를 거닐며 중생이 되었다. 배롱나무꽃이 핀 개심사에도 들렀다.
이웃처럼 포근한 백제의 미소
마애여래삼존상은 천년 넘게 바위 절벽에서 숨 쉬고 있었다. 보원사 터를 조사할 때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찾아낸 마애불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다. 여래상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반가상의 보살, 왼쪽에 봉주보살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반가상은 미륵보살을, 봉주보살은 관음보살 또는 제화갈라보살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여래상은 연꽃잎을 새긴 대좌 위에 서 있다. 초승달 같은 눈썹, 은행알 닮은 눈, 오뚝한 코, 두툼한 입술이 풍만한 얼굴에 잘 어울린다. 오른손은 앞으로 뻗어 손바닥이 보이고, 왼손은 가슴께로 올려졌다. 둥근 광배 안쪽은 연꽃을, 둘레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그윽하게 웃는 모습이 이웃집 아저씨처럼 포근하다.
봉주보살상은 길쭉한 얼굴에 눈웃음을 치고 있다.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졌고, 하트 모양을 한 목걸이를 찼다. 보배로운 구슬을 두 손으로 감싸 품에 안고 있다.
반가상은 둥근 얼굴에 볼살이 통통하다. 누가 뭐래도 꺼릴 것 없다는 듯 한 발짝 물러나 의자에 앉아 있다. 여래상과 사이도 봉주보살상보다 더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은 표정이다. 왼손은 오른발 발목을 잡고, 오른쪽 손가락은 턱을 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 마애여래삼존상 관리소 뒤에 있는 산신각에서 마애여래삼존상이 새겨진 바위 전체를 볼 수 있다. 불이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스님이 찾아와 예불을 올린다. |
ⓒ 정명조 |
산신각 뒤로 가면 성원 할아버지가 손수 세운 묘비가 있다. 그는 오랫동안 마애불 관리인이었다. 정년퇴직으로 마애불을 떠나게 되자 그동안 있었던 흔적을 비석에 새겨 남겼고, 유홍준 교수는 문화유산답사기에 성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실었다.
절 여행의 으뜸은 폐사지 답사
▲ 보원사 터 발굴하면서 모아 놓은 돌과 기와 조각이 절의 크기를 가늠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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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간지주 당간지주 사이로 오층석탑과 금당 터가 나란히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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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원사 오층석탑 개울을 지나면 금당 터 앞에 오층석탑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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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석탑 상륜부에 긴 찰주가 천년 넘게 잘 박혀있다. 해방 무렵까지는 여러 장식품이 화려하게 달려있었다고 한다. 기단 위에 넓적한 굄돌이 오층 몸돌을 떠받치고 있어 안정감을 준다. 기단부 위층과 아래층에는 각각 불법을 지키는 신 여덟 명과 사자 열두 마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금당 터 한가운데에 큰 돌만 남았고, 그 뒤쪽에 법인국사탑과 탑비가 있다. 법인국사는 고려 초 광종 때 왕사를 거쳐 국사가 되었고,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
꽃 잔치로 북적거리는 곳
개심사는 일락산과 이어지는 상왕산 자락에 있다. 보원사 터 법인국사탑 옆이 들머리다. 비탈진 계단을 힘들게 올라 산등성이에 다다랐다. 그늘진 흙길이 이어졌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후덥지근했다.
▲ 배롱나무 150년 된 보호수다. 나무에서 수명을 다한 배롱나무꽃은 연못에 떨어져 물 위에서 다시 핀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는 인생 사진 찍는 곳이다. 그곳에 서면 연못에 반영되어 멋진 사진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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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 물속에도 배롱나무꽃이 피었다. 금붕어가 꽃 속을 헤엄쳐 다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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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자승 심검당 담벼락 기왓장 위에 동자승들이 한껏 멋을 내고 앙증맞게 모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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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앞마당에 섰다. 마주하는 안양루 천장에 연등이 빈틈없이 매달렸다. 그 밑에는 창문을 통해 배롱나무꽃이 액자 속으로 들어와 있다. 명부전 앞에 있는 나무에 청벚꽃 팻말이 매달려 있다. 꽃이 피면 사진 찍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는 곳이다.
▲ 산신각 개심사 최고의 명당이다. 푸른 나무들이 빙 둘러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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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을 넘었다. 전망대를 지나 임도를 따라가다 물소리를 만나면 용현계곡이다. 군데군데 넓적한 바위와 물웅덩이가 여름나기에 안성맞춤일 듯하나 텅 비었다. 자연휴양림에 이르자 비로소 아이들 소리로 왁자지껄했다. 아이들은 물놀이하느라 정신없고, 부모들은 물가에 앉아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집에 오는 길에 마애여래삼존상을 다시 찾았다. 오후 늦은 시간, 햇빛은 부드러워졌고 백제의 미소도 조금 엷어졌다. 사람에 따라서 더 호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백제의 미소는 언제가 가장 멋지다고 굳이 고집하지 말지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부러 그 시간에 맞추려는 수고를 덜어 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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