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없었던 국가의 사과, 'D.P.'에 꼭 넣고 싶었다"

이선필 2023. 8. 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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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D.P. > 한준희 감독

[이선필 기자]

 < D.P. > 시즌1과 2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
ⓒ 넷플릭스
 
2개의 시즌, 총 12개 에피소드로 일단 드라마 < D.P. >(아래 <디피>) 시리즈는 일단락됐다. 시즌1이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안준호(정해인), 한호열(구교환)의 개성 다른 캐릭터성을 바탕으로 군대 내 부조리함과 주변인들이 겪는 상처에 집중했다면, 최근 공개된 시즌2에선 이 모든 비극이 바로 국가와 조직의 책임이고, 방관자들의 책임임을 주지하는 데 할애했다.

서울 강남 봉은사로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한준희 감독은 "이야기가 총 12부라 생각해서 시즌2를 7화부터 시작했다"며 "결국 큰 틀에선 책임과 사과를 이야기한다"고 운을 뗐다. <디피> 시즌2는 공개 이후 전 세계 순위에서도 5위에 오르며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에 국한된 소재라 여기기 십상이지만 그만큼 공통된 정서를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감독은 "징병제 국가 아니면 공감이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든 직장이든 조직 생활을 하는 곳이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씩은 이해해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직의 생리, 그리고 사과

시즌2에서도 병사의 총기 난사, 군사분계선 인근 기지인 GP 내 가혹행위 등 여러 소재를 다룬다. 다만 해당 사건으로 탈영했거나 붙잡힌 이들을 대하는 안준호와 호열, 그리고 이들의 책임관인 박범구 중사와 임지섭 대위의 정서가 시즌1 때와 다르다. 어딘가 모르게 더 무거워 보이고,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이전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들을 표현하려는 감독의 복안이었다.

"애초에 드라마를 1부부터 12부까지 한 번에 봐주시길 원했다. 끊어서 보신 분들은 안준호에 감정 이입하기 쉬운데, 사실 그도 박성우(고경표)를 구타했고, 부대에서 쫓겨나게 했잖나. 안준호가 계속 가해자와 군대 조직에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 또한 성우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시즌2를 시작하게 됐을 때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시즌1 때 있었던 사건을 책임지고 이야기를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조석봉 사건이 준호와 호열, 그리고 주인공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있기에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캐릭터가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시즌2 초반 실어증을 앓게 된 호열과 더욱 무거워진 표정의 준호가 등장하는 이유다. 대신 이들의 상사이자 간부인 박범구(김성균) 중사와 임지섭 대위(손석구)의 활약을 크게 늘렸다. 일각에선 <나의 해방일지>나 <범죄도시2> 흥행을 염두에 두고 분량을 대거 늘렸다는 말이 있었지만, 두 캐릭터는 드라마의 원작인 웹툰 < D.P 개의 날 > 속 박범구 대위를 둘로 쪼갠 결과물이었다. 애초부터 이들의 역할을 크게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시즌2 대본은 <나의 해방일지>가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나와 있었다. 간부들이 사건에 맞서기 위해 임지섭 대위가 발화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범구나 지섭 또한 조석봉 사건에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생각했다. 그런 엄청난 일을 겪은 사람이 과연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있을까? 이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갔을까가 제겐 시즌2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치열하게 상급자와 부조리에 대항하던 네 사람은 힘겹게 국가를 재판정에 세운다. 시즌2 후반부 국가의 배상 및 책임 판결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궁극적으로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자료나 기사를 보면 군대에서 발생한 일로 수차례 국가 손배소 재판이 있었다. 기사에 안 나온 적도 많겠지. 그 어떤 경우라도 국가는 한 번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라도 개인들이 몸부림치고 발버둥치며 나아가는 모습과 함께 절반의 승리라도 한 번은 보여주고 싶었다. 이 드라마를 만들며 계속 생각한 건 2년간 징병제로 간 이들이 가해자나 피해자로 구분되지 않았으면 한다였다. 물론 총을 쏜 김루리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래서 마지막 법원 장면에서 그가 엄마에게도 인사하지만 유가족들에게도 사과했어야 한다고 봤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시즌2 스틸 이미지
ⓒ Netflix
"기억에 없다고 사건이 없었던 게 아니다"

시즌1을 마친 뒤 한 인터뷰에서 한준희 감독과 원작자이자 시나리오 공동 집필자인 김보통 작가는 "내가 보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일이 없었던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작의를 밝힌 바 있다. 시즌2 공개 직후로 현역 군인들 일부에서 드라마가 너무 판타지 같다는 평이 나오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해당 드라마 배경인 시대와 현재 군대는 그 풍경이 많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준희 감독은 시즌1 때 했던 말을 다시 강조했다.

"군대 기억이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난 안 그랬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다. 사실 군대 2년의 시간은 정말 가까운 사람 아니면 그 사람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괴롭힘 가해자였던) 황장수 병장 지인들도 아마 그가 그렇게 가혹행위를 했는지 몰랐을 것이다. 시즌2 나중석 하사(임성재)도 지섭에겐 아끼는 동생이었지만, 부대에선 천하의 나쁜 사람이었잖나. 관점의 차이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그 회를 만들고 싶었다.

제 경험이기도하고, 여러 군필자 경험이기도 한데 부대 밖에서 우연히 선임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 회 황장수와 준호처럼 말이다. 가해자도 일상을 잘 살고 있어가 아니라 모두가 그런 기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 아마 남들은 몰라도 본인들은 알 것이다. 누군가는 뜨끔할 것이고, 누군가는 또 다른 감정이 들겠지."

한준희 감독은 이번 시리즈 중 어떤 에피소드를 가장 강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개연성과 고증도 중요하지만, 인물들이 갈등을 겪고 성장하는 과정이 중요했기에 이들이 누굴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는 게 중요했다"며 그는 대답을 이었다.

"정말 매회 다 힘들었고 인상이 저마다 다른데 하날 꼽자면 7부다. 시즌2 첫 회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데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큰 일을 겪고 땅바닥을 파고 밑까지 꺼진 감정에서 인물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니까 그게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 D.P. > 시즌1과 2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
ⓒ 넷플릭스
일관성

넷플릭스 드라마로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한준희 감독은 영화 <차이나타운> <뺑반> 등으로 우리 사회 소수자나 구조적 문제를 때론 날카롭게 혹은 장르 영화로 풀어내왔다. 그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좋은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를 하려고 애쓰는 직업이라 생각한다"며 "소재나 인물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일원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방향성이 있다면 하는 것"이라고 나름의 직업 의식을 밝혔다. <디피> 또한 현실에 안주하거나 무력해 하지 않고 변화를 위해 한 걸음 내딛는다는 방향을 잡고 시작한 결과물이었다고 한다.

"국가가 사과한 판례가 없기에 이 드라마 결말이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충분히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결말을 위해 인물들이 더욱 처절해야 했다. 마지막 격투신도 그런 의미로 담긴 것이다. 지금의 군대가 바뀌었거나 조금은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는 안준호일 수 있고, 박범구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내부 고발자도 있어왔고, 군인권센터에서도 애쓰는 분들이 있잖나. 이런 분들 덕에 조금씩은 나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안준호 같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번거로울 순 있다. 남들은 예스라는데 혼자 노라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조금씩은 바뀌는 것 같다. 저도 그런 사람을 본다면 번거롭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덕에 내가 혜택을 보는 것이다. 돌아보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인물이 애쓰는 이야길 좋아하는 것 같다. 거창한 위업을 달성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결국 속마음에선 동의하더라도 자신은 그러지 않았기에 나오는 자책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말미 안준호의 남은 군생활이 숫자로 뜨며 일각에선 시즌3를 예고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한준희 감독은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시즌1도 그랬지만, 인물들이 맞이한 일을 매듭지어주고 싶었다. 이후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겠지. 호열은 제대했고, 준호도 남은 기간 혼자서 지내야 할 것이다. 황장수도 석봉도 각자 위치에서 살아갈 것이다. 행복이란 표현이 맞나 모르겠지만, 화면 밖에선 조금은 행복하려 애쓰며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즌2의 결말을 그렸다. 연기한 배우들 감정이 엄청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준호가 웃잖나. 호열이도 또 보자고 말하고. 이들이 살아갈 동력을 얻고 이야기를 끝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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