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교실, 민주주의의 연습장이 되다
[백경자 기자]
"선생님, 빡세요", "선생님, 여기까지만요", "선생님, 저희가 고3인 것 잊으셨나요?".
고3 학생들의 볼멘 소리이다. 이론 수업을 마치고 수행평가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나온 불만들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활동수업과 수행평가를 하려면 솔직히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기간은 짧게, 내용은 슬림하게. 이것이 학생들을 위한 일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학기 무모한 도전장을 내보았다.
사회과 교육의 목표는 민주 시민 양성이다. 사회 문제에 자기 목소리를 내고 나와 다른 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해결방안을 찾는 것, 이런 민주성이 발달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사회과가 추구해야 할 교육이다. 이런 과정에서 내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에 고3이라고 예외로 할 순 없었다.
마침 이런 생각을 적용할 교과가 고3 교육과정에 생겼다. 바로 '사회문제탐구'인데, 이것은 사회적 이슈를 사회문제 탐구 방법으로 적용해 보도록 한 진로선택교과이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여론을 만들고 그 여론이 제도와 정책으로 이어지면 그 변화와 혜택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또한 변화는 누가 가져다 주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고3 학생들이 교실에서 한번 더 연습하고 졸업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데 적합했다.
교과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수업 시간을 한 학기 중 절반은 이론에, 나머지 시간은 활용 및 적용 시간으로 할애했다. 이론 수업을 마친 후 학생들은 본인들의 관심 분야에서 사회적 이슈를 찾아 문제의 심각성과 원인을 탐색하였다. 개인 탐색을 끝낸 후 관심 분야가 비슷한 친구끼리 모여 모둠을 만들고 주제 관련 독서 활동과 논문 읽기를 시작했고 그것을 통해 문제의 심각성과 원인적 요소를 심화시켰다.
이런 이론적 탐색을 거친 후 수업 시간에 배운 사회탐구 방법을 적용하여 가설을 설정한 뒤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먼저 설문을 작성하고 조사를 거친 후 결과를 분석하고 설정된 변수 간의 상관관계를 통그라미(통계프로그램)를 활용하여 밝혀냈다. 원인 규명을 끝낸 후에는 관련 논문과 도서에서 선진적이고 발전적인 해결방안을 찾고, 그동안 탐구한 내용을 통계 포스터로 작성하여 주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수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로 해결방안의 적용이 남아있었다. 탐구한 해결방안 중 하나를 택하여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과정도 쉽지 않았는데 과정이 하나 더 남아있다고 하니 아이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를 남발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에게 수업의 최종 목표를 설명하였다. 이론을 적용시켜 보는 연습, 이것이 있어야 그것이 습관이 되어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득했다. 다행히 학생들은 마지막 과정까지 최선을 다해주었다.
결과물 발표 시간이 돌아왔다. 한 학기 동안 배운 이론을 적용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낸 수고와 노력 때문인지 발표에 참여한 학생들의 낯빛은 상기되어 있었고 목소리엔 진정성이 배어 있었다.
해양 분야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해양 관련 홈페이지를 만들어 틈틈이 해당 내용을 업그레이드 시키며 해양오염의 심각성을 웹상에서 홍보한 것을 소개했다. 경제경영 분야에 관심있는 친구들은 기업의 그린워싱에 초점을 맞춰 해당 기업들을 찾고 그 기업들을 홍보하며 소비자 주권 회복에 기여한 내용을 소개했다.
의료 분야에 관심있는 친구들은 어르신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제작한 원격 튜토리얼을 소개했다. 교육에 관심있는 친구들은 지역만의 특색있는 '작은 학교 만들기' 계획을 소개하며 지역소멸 위기에 맞서기도 했다. 이런 각각의 결과물을 해당 행정기관에 제안하는 것으로 모든 활동을 마무리 지었다.
플라톤은 이런 말을 남겼다. '정치적 무관심은 나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가능하게 한다'. 학생들은 교실 속 민주주의의 연습을 통해 이 말의 의미를 내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연습이 그들이 맞을 내일의 사회변화와 발전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또한 사회변화의 주체가 자신임을 깨닫고 그들에게 주어진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발전시켜 나가길, 한뼘 더 성장한 그들의 모습 속에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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