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이 된 부모, 잃어버린 아이 포기해도 될까

조영준 2023. 8. 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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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276]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우린 동산에서 왔어>

[조영준 기자]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우린 동산에서 왔어>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1.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두 학생이 있다. 교복을 입은 채로 졸업장을 손에 쥔 모습이 여느 학생들과 다르지 않다. 딱 하나, 남학생의 품 안에 작은 아이 하나가 안겨 있다는 것만 빼고. 그래도 두 사람은 행복한 모습이다. 장미꽃 한 송이를 서로 선물하며 졸업을 축하한다. 물론 이때는 알지 못한다. 1분여의 이 짧은 모습이 영화 속 모든 시간을 통틀어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장면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두 사람에게는 가혹한 일이지만, 그들이 지나게 될 시간 속에는 더 이상 미소를 지을 수 없는 삶보다 더 무거운 현실이 차곡차곡 쌓여만 있다. 이 마지막 교복을 벗는 순간 물밀듯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칠 일들과 한 겹 벗겨지고 나면 모두 사라지고 말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자리의 온기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는 장면이다.

영화 <우린 동산에서 왔어>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시설 보호가 종료되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가 정확하게 나뉘는 생물학적 나이나 법제 위의 주문과는 달리 실제로는 그 경계에서 즉각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참혹한 현실이 그대로 담긴다. 작품 속에 서 있는 두 사람 건우(김성곤 분)와 마리아(오우리 분)가 대표적이다. 가족도 없이 평생을 보호 시설에서 생활하다 내쫓기듯 사회로 던져진 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냉혹한 현실이다. 학교의 담벼락도 보호소의 지붕도 어느 하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더구나 두 사람에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갓난아이까지 있다. 보통이라면 축복이 되었어야 할 세 사람의 시작. 감독은 마치 자신이 세상을 만들어 낸 조물주라도 된 듯 이 어리고 여린 가족의 삶을 찢고 할퀴어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회의 시스템과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02.

영화는 하루라도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곧장 넘어간다. 잠깐의 유예도 주어지지 않는 사회의 본모습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건우는 세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가구점의 배달 기사를 하며 밤낮으로 운전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마리아는 홀로 남겨진 시간 동안 제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보기 위해 동네를 떠돈다. 하지만 아이 때문에 작은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고 남편이 없는 시간을 혼자 외롭게 버틴다. 사실 두 사람은 변변한 집도 하나 없이 세상에 던져졌다. 건우가 일하는 가구점의 쇼룸에 매니저 몰래 들어가 쪽잠을 청하고, 빨래도 공중화장실 세면대를 빌리거나 코인세탁실에서 자리를 떠난 다른 사람의 세탁기 속에 제 빨랫감을 넣어 도둑 세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졸업식 시퀀스가 끝나자마자 영화가 두 사람의 이런 상황을 민낯처럼 드러내는 까닭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등 떠밀리듯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보호가 종료된 청소년들의 현실과 위험을 알리고자 함이고, 또 하나는 다음 장면에서 영화가 던지게 될 현실적인 측면과 도덕적인 측면 사이의 문제를 조금 더 효과적으로 부각하기 위함이다. 이 장면들은 핵심이 되는 문제를 던지기 전에 이 가족이 처해있는 상황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사실, 생존을 위해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은 그다음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사랑하는 존재를 잃게 되었다는 즉각적인 슬픔과 함께 어려운 현실 속에서 무엇 하나를 덜 수 있다는 지연된 안도를 건우와 마리아 두 사람에게 내민다.
 
 영화 <우린 동산에서 왔어>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3.

마리아가 운동장 벤치에서 잠깐 조는 사이 유모차 안에서 자고 있던 갓난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는 설정에서 '왜', '어떻게'와 같은 개요와 관련한 사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의 실종'은 이 현상 이후 두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를 가늠하는 일종의 문제일 뿐이다. 밤새 동네를 찾아보지만 아이를 결코 찾을 수 없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도록 극을 이끌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답답한 마음에 어쩔 도리 없이 두 사람이 지냈던 보호소에 연락을 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 영화는 두 사람이 자력으로 아이를 찾을 수 없도록 이끈다.

청소년이던 두 사람을 단번에 갑자기 어른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와 사회적 제도뿐만이 아니다. 이것이 아니었더라도 두 사람은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건우와 마리아는 하루 아침에 자신의 오늘을 책임지고 보살펴야 하게 된 것뿐만 아니라 엄격한 의미에서 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갓난아이의 오늘을 대신 담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아이의 실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는가. 영화가 던지는 이 문제는 그래서 어려워진다. 스크린 바깥에서 이 이야기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당연히 어떻게든 아이를 찾아야지'라고 이해되는 결론을 이들은 쉽게 내리기가 힘든 이유다.

아이가 사라진 동안 남겨진 두 사람의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한다. 몰래 숨어 살던 가구점의 쇼룸 공간을 매니저에게 들켜 쫓겨나게 되고, 아이를 찾는 동안 세워둔 트럭은 불법 주차로 견인이 된다. 코인빨래방 앞에는 다른 사람의 세탁물 사이로 제 세탁물을 넣는 마리아의 모습이 CCTV로 찍혀 걸려 있고, 이 지난한 시간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 역시 두 사람의 날 선 다툼뿐이다. 아이의 실종이 가져온 결과는 아니다. 사회의 시선이 닿지 않는 그늘진 곳에서 연명해 오던 이들의 삶이 세상에 드러나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었으니까. 다만, 역시 문제는 아이를 잠깐 잃은 동안에도 챙길 수 없는 자신의 안전과 오늘을 아이를 다시 찾게 된다한들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영화 <우린 동산에서 왔어>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4.

"우리 찾지 말까? 이런 상황인데 찾아서 뭐 해?"

영화가 몰고 몰아낸 삶의 끝단에 서서 마리아는 체념한 듯 이렇게 말한다. 자신들의 집, 아니 가구점의 쇼룸으로부터도 쫓겨나 모텔방 안에서 겨우 하루를 머무는 동안이다. 이마저도 보호 시설의 원장으로부터 받은 돈 몇 푼 때문에 구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데려와서 더 어쩌자는 것일까? 하는 생각. 그 마음이 행복할 리 없다. 방 안 작은 거울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모습, 거울 속 반영 너머로 비치는 그녀의 눈빛 속에 슬픔이 매달려 있다.

영화 속에 그려지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런 마리아의 모습에는 두 가지 측면의 심리가 엿보인다. 실제로 아이를 찾는다고 해서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조차 하지 않고 미리 포기하려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슬픔과 어쩔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가 하나. 그리고 오래전 자신을 버리고 보호 시설에서 자라게 만들었던 부모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측면이 또 다른 하나다. 후자의 경우에는 평생을 그리워하고 원망하며 자랐을 대상에 대해 스스로 이해를 하는 측면에서 다시 자신의 현재를 원망하고 자책하는 마음으로 되돌아오는 부분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떨 것인지는 누구보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니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은 원래의 자리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한 번, 다시 가까워지는 자리로 또 한 번 내달리고 걸으며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표현 대신 암시하는 듯한 장면으로 여지를 남겨 놓는다. 이 지점은 건우와 마리아가 내린 결정을 지지하는 작은 여백과도 같다. 두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 결정을 재고하고 다시 등을 돌리더라도 탓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셈이다. 앞으로 어떤 지난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고리를 여기에서 끊어내고 말리라는 그 따뜻한 마음을 응원하는 마음 역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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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열세 번째 큐레이션 ‘일대일의 관계’ 중 한 작품입니다. 오는 2023년 8월 15일까지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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