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이 된 부모, 잃어버린 아이 포기해도 될까
[조영준 기자]
▲ 영화 <우린 동산에서 왔어> 스틸컷. |
ⓒ 인디그라운드 |
01.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두 학생이 있다. 교복을 입은 채로 졸업장을 손에 쥔 모습이 여느 학생들과 다르지 않다. 딱 하나, 남학생의 품 안에 작은 아이 하나가 안겨 있다는 것만 빼고. 그래도 두 사람은 행복한 모습이다. 장미꽃 한 송이를 서로 선물하며 졸업을 축하한다. 물론 이때는 알지 못한다. 1분여의 이 짧은 모습이 영화 속 모든 시간을 통틀어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장면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두 사람에게는 가혹한 일이지만, 그들이 지나게 될 시간 속에는 더 이상 미소를 지을 수 없는 삶보다 더 무거운 현실이 차곡차곡 쌓여만 있다. 이 마지막 교복을 벗는 순간 물밀듯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칠 일들과 한 겹 벗겨지고 나면 모두 사라지고 말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자리의 온기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는 장면이다.
영화 <우린 동산에서 왔어>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시설 보호가 종료되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가 정확하게 나뉘는 생물학적 나이나 법제 위의 주문과는 달리 실제로는 그 경계에서 즉각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참혹한 현실이 그대로 담긴다. 작품 속에 서 있는 두 사람 건우(김성곤 분)와 마리아(오우리 분)가 대표적이다. 가족도 없이 평생을 보호 시설에서 생활하다 내쫓기듯 사회로 던져진 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냉혹한 현실이다. 학교의 담벼락도 보호소의 지붕도 어느 하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더구나 두 사람에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갓난아이까지 있다. 보통이라면 축복이 되었어야 할 세 사람의 시작. 감독은 마치 자신이 세상을 만들어 낸 조물주라도 된 듯 이 어리고 여린 가족의 삶을 찢고 할퀴어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회의 시스템과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02.
영화는 하루라도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곧장 넘어간다. 잠깐의 유예도 주어지지 않는 사회의 본모습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건우는 세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가구점의 배달 기사를 하며 밤낮으로 운전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마리아는 홀로 남겨진 시간 동안 제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보기 위해 동네를 떠돈다. 하지만 아이 때문에 작은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고 남편이 없는 시간을 혼자 외롭게 버틴다. 사실 두 사람은 변변한 집도 하나 없이 세상에 던져졌다. 건우가 일하는 가구점의 쇼룸에 매니저 몰래 들어가 쪽잠을 청하고, 빨래도 공중화장실 세면대를 빌리거나 코인세탁실에서 자리를 떠난 다른 사람의 세탁기 속에 제 빨랫감을 넣어 도둑 세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 영화 <우린 동산에서 왔어> 스틸컷 |
ⓒ 인디그라운드 |
마리아가 운동장 벤치에서 잠깐 조는 사이 유모차 안에서 자고 있던 갓난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는 설정에서 '왜', '어떻게'와 같은 개요와 관련한 사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의 실종'은 이 현상 이후 두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를 가늠하는 일종의 문제일 뿐이다. 밤새 동네를 찾아보지만 아이를 결코 찾을 수 없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도록 극을 이끌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답답한 마음에 어쩔 도리 없이 두 사람이 지냈던 보호소에 연락을 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 영화는 두 사람이 자력으로 아이를 찾을 수 없도록 이끈다.
청소년이던 두 사람을 단번에 갑자기 어른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와 사회적 제도뿐만이 아니다. 이것이 아니었더라도 두 사람은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건우와 마리아는 하루 아침에 자신의 오늘을 책임지고 보살펴야 하게 된 것뿐만 아니라 엄격한 의미에서 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갓난아이의 오늘을 대신 담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아이의 실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는가. 영화가 던지는 이 문제는 그래서 어려워진다. 스크린 바깥에서 이 이야기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당연히 어떻게든 아이를 찾아야지'라고 이해되는 결론을 이들은 쉽게 내리기가 힘든 이유다.
▲ 영화 <우린 동산에서 왔어> 스틸컷 |
ⓒ 인디그라운드 |
"우리 찾지 말까? 이런 상황인데 찾아서 뭐 해?"
영화가 몰고 몰아낸 삶의 끝단에 서서 마리아는 체념한 듯 이렇게 말한다. 자신들의 집, 아니 가구점의 쇼룸으로부터도 쫓겨나 모텔방 안에서 겨우 하루를 머무는 동안이다. 이마저도 보호 시설의 원장으로부터 받은 돈 몇 푼 때문에 구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데려와서 더 어쩌자는 것일까? 하는 생각. 그 마음이 행복할 리 없다. 방 안 작은 거울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모습, 거울 속 반영 너머로 비치는 그녀의 눈빛 속에 슬픔이 매달려 있다.
영화 속에 그려지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런 마리아의 모습에는 두 가지 측면의 심리가 엿보인다. 실제로 아이를 찾는다고 해서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조차 하지 않고 미리 포기하려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슬픔과 어쩔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가 하나. 그리고 오래전 자신을 버리고 보호 시설에서 자라게 만들었던 부모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측면이 또 다른 하나다. 후자의 경우에는 평생을 그리워하고 원망하며 자랐을 대상에 대해 스스로 이해를 하는 측면에서 다시 자신의 현재를 원망하고 자책하는 마음으로 되돌아오는 부분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떨 것인지는 누구보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니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은 원래의 자리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한 번, 다시 가까워지는 자리로 또 한 번 내달리고 걸으며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표현 대신 암시하는 듯한 장면으로 여지를 남겨 놓는다. 이 지점은 건우와 마리아가 내린 결정을 지지하는 작은 여백과도 같다. 두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 결정을 재고하고 다시 등을 돌리더라도 탓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셈이다. 앞으로 어떤 지난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고리를 여기에서 끊어내고 말리라는 그 따뜻한 마음을 응원하는 마음 역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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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열세 번째 큐레이션 ‘일대일의 관계’ 중 한 작품입니다. 오는 2023년 8월 15일까지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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