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유엔 대북 제재 조정관 "중ㆍ러 이견으로 안보리 무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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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마저 힘 빠져"
지난 5월까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로 활동했던 에릭 펜턴-보크 전 조정관은 4일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NK프로가 서울 종로구에서 개최한 기자 간담회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기술이 급격히 성장하는 와중에 유엔 안보리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며 "이에 따라 안보리 산하의 대북제재위가 발간하는 보고서도 상당히 희석된(diluted)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제재 위반을 단호히 지적해야 할 보고서의 "논점이 흐려졌다"는 취지다.
펜턴-보크 전 조정관은 중국과 러시아 출신 조정관이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자주 이견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유엔에서 활동하며 총 4개의 보고서 발간에 참여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8개국에서 파견된 전문가 8명으로 구성되며, 매년 2회에 걸쳐 각국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의 제재 회피 사례 등 대북 제재 이행 현황과 관련한 보고서를 발간한다.
펜턴-보크 전 조정관은 "유엔이 컨센서스(전원 동의)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일부 국가가 딴지를 걸면 효율성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며 "두 국가(중국, 러시아)의 조정관이 마땅히 해야할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ㆍ러 '무기 커넥션'엔 신중
펜턴-보크 전 조정관은 이날 최근 노골화하는 북ㆍ러 간 무기 거래 정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다만 "유엔 차원에서 확보한 증거는 없다"며 "유엔 대북제재위는 증거를 근거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직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백악관은 북한이 러시아의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에 지난해 11월 보병용 로켓과 미사일을 전달하는 정황이 담긴 위성 사진 두 장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서도 펜턴-보크 전 조정관은 "만약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 빈 열차가 오갔다면 제재 위반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분명한 증거를 더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은 북ㆍ러 무기 거래를 뒷받침할만한 자체 증거를 제시한 뒤 바그너 그룹과 북한 국적자에 대한 독자 제재에 나섰고, 최근에도 "추가 제재를 주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3일 전화 브리핑에서 "최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평양에 간 건 북한이 러시아에 군수품을 판매하고 전쟁을 지원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것"이라며 "북ㆍ러 간 무기 거래는 안보리 결의 위반이며 미국은 제재 위반자를 계속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날 펜턴-보크 전 조정관이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한 건 유엔 차원에선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도 지난 1일 "러·북 간 무기 거래에 대해 자체적으로 파악한 사실관계와 관련 법상 요건 충족 여부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독자 제재를 하려면 자체적으로 수집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사이버 활동도 주시
최근 북한의 새 돈줄이 되고 있는 불법 사이버 활동에 대해서도 펜턴-보크 전 조정관은 "북한은 암호 화폐 탈취를 통해 WMD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서방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북한 과학자들 또한 관련 프로그램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익명 기반의 인터넷 공간에서는 누가 무엇을 탈취하는지 알아내기 어렵지만 유엔 대북제재위는 사이버 분야 민간 업체의 도움을 상당히 많이 받고 있고, 최근 들어선 패널 보고서에 구체적인 제재 위반 사례를 명시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유엔 대북제재위는 어디까지나 회원국에 '권고'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실제 이행은 각 회원국이 준수해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중ㆍ러의 협조를 재차 촉구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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