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잼버리보다 더 중요한 갯벌, 이 장면에 울컥했다
[유동걸 기자]
▲ 영화 <수라> 포스터 이미지 |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
기억을 압도하는 망각의 세월이 이십 년 가까이 흘렀다.
생명의 바다와 갯벌을 죽이고 새만금 방조제를 쌓는 논란의 시작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이다. 삽질이 시작된 이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죽임의 개발 공사를 막지 못한 채 2010년 새만금은 1차 완공되었다. 가장 뜨거운 반대 운동의 절정은 지금과 같은 무더위가 한창이던 2006년 여름이었다.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네 분을 필두로 삼보일배에 나선 분들의 헌신과 많은 생명운동단체의 노력으로 새만금을 저지하는 듯했으나 대법원의 판결로 결국 새만금 사업은 해창과 수라 갯벌 등 생태계의 보고 속을 살아가는 저어새, 갈매기, 도요새, 농게 등을 서서히 죽여가며 아름다운 생명의 땅을 시커먼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다시 2023년 여름, 전북 새만금이 온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17년 한국이 세계 잼버리 대회를 유치했고, 2023년 여름 잼버리 대회가 한창 진행 중이다. 세계 청소년들의 아름다운 축제의 장이다. 대통령 부부도 나서서 응원의 목소리를 더한다. 하지만 대회가 열리는 새만금 주변에는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수십 년간의 노력을 멈추지 않은 새만금 개발 반대 생태단체들이 잼버리 반대를 외치며 운동 중이다.
특히 올해 6월에 개봉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는 4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며 전국적으로 새만금 개발의 추가 사업의 문제점을 알리는 중이다. 제목 '수라'(繡羅)는 '아름다운 비단에 놓은 수'라는 뜻이다. 수라 갯벌은 새만금 사업의 희생양으로 사라져간 해창 갯벌과 더불어 새만금의 생명을 상징하는 곳으로 떠올랐다.
▲ 영화 <수라> 스틸 이미지 |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
영화 속 대사, 비상하는 도요새의 군무를 보고 황홀한 아름다움에 빠져 새만금을 떠나지 못한다는 동필씨가 '아름다움을 본 죄' 때문에 새만금을 떠나지 못한다는 말은 심장에 박혀 잊히지 않는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진리를 본 자는 눈이 먼다'는 격언을 연상케 하는 이 말은 진실한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진리의 길을 사수하는 고독한 전사의 모습을 조명한다.
바닷물이 빠져 나간 뒤 살기 위해 지하 흙속으로 몸을 감추었던 조개들이 빗줄기를 바닷물로 알고 나왔다가 다시 흙속으로 들어가지 못해 집단 폐사한 장면이나 삼보일배 후에 절규하는 대표단의 오열 앞에서는 눈물을 주체하기 어렵다. 반면 병들어가는 자연 속에서도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안쓰러운 몸부림을 치는 각종 새들과 게, 조개 등의 힘겨운 노력과 생태는 고귀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점점이 보여주며 관객들을 환상의 시간으로 초대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이제 희곡 속의 대사만이 아니다. 범세계적인 기후 위기 속의 지구가 뜨거운 열기로 죽어간다. 영화 속에서는 아름다운 갯벌에 새만금 방조제를 쌓아 아수라의 세계 만들었으나 일시적이나마 바닷물을 갯벌로 통과시켜 수라 갯벌을 조금씩 살리려는 운동이 한창이다.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군산 지역에 공항을 건설해 결국 갯벌의 숨통을 끊으려는 행정, 토건의 압력이 거센 가운데 세계 청소년의 야영 대회인 잼버리 대회가 새만금에서 한창이다. 4만 3천 명의 참가자가 활동하는 야영장의 시설과 운영이 엉망이라는 보도가 지면을 장식하는 가운데 35도 안팎의 고온으로 수백 명의 온열 환자가 속출한다. 시설과 운영이 아수라같은 대회 시작에 백작 같이 고고한 대통령 부부가 등장해서 행사의 취지를 살리는 인사말을 했지만 공감하는 사람들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 영화 <수라> 스틸 이미지 |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
<수라> 영화를 지지한다. '수라' 갯벌의 살림을 기원한다. 세계적인 잼버리도 의미 있는 대회지만 뭇 생명을 죽여가며 돈벌이에 혈안된 자본과 기술의 상징 공간에서 벌어지는 잼버리는 어떤 의미일지 의문이다.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고 새만금의 성찰과 수라 생명의 복원을 주제로 한 잼버리였으면 그 의미가 얼마나 높고 귀한 대회였을지 아쉽기 그지 없다.
아! 수라(繡羅)! 자본과 권력에 눈멀어가는 아수라(阿修羅)의 세계에서 수라 관객의 한 사람으로 그 아름다움을 본 죄에 동참하며 수라 갯벌에 아름다운 도요새의 군무를 보는 날까지 함께 손을 잡고 걸을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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