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갈등에 ‘中스피커’ 자처하는 北…깊어지는 '대만 딜레마'
미국과 중국 간 최대 갈등 현안인 대만 문제를 놓고 북한이 노골적인 ‘중국 편들기’에 나섰다. 최근 미 백악관이 대만에 대규모 무기 지원을 승인한 것을 “중국의 주권과 안전에 대한 엄중한 침해”로 규정하면서다. 북한은 4일 맹영림 외무성 중국 담당 국장 명의의 담화에서 “중국의 핵심 이익을 한사코 건드리는 위험한 짓을 계속하다가는 반드시 만회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북한의 대미(對美) 말폭탄은 오히려 당사국인 중국보다 그 수위가 높았다. 무기 지원을 포함한 미국의 대(對)대만 전략을 “지역 정세의 안정을 여지없이 파괴하는 위험천만한 정치·군사적 도발”로 규정하며 “마땅히 규탄받아야 할 반평화적 망동”이라고 비판하는 식이었다. 지난달 전승절 70주년을 계기로 북·러 군사 협력 의지를 내비친 데 이어 중국에 대해선 ‘유사 입장국(like minded)’이란 점을 강조하며 중·러 밀착 강도를 높이는 모양새다.
美 4400억원 규모 무기 지원
미국의 이같은 조치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과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긴장 고조 상황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은 또 ‘해외군사금융지원’(FMF)을 통해 대만의 신속한 무기 구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 보도했다. FMF는 무기 구매국에 대해 미 행정부 차원에서 자금을 대출해주는 금융 지원 프로그램이다.
미국의 무기 지원으로 대만 갈등이 한층 첨예해지고, 북·중이 밀착하는 구도는 한국에도 압박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특히 중국이 무력을 동원해 대만 통일을 시도하는 등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이 개입한다면 이는 한반도 안보 상황에도 직결되는 문제다. 주한미군의 공백을 활용해 북한이 한반도에서 강도 높은 핵·미사일 위협에 나설 수 있어서다.
고조되는 '대만 리스크', 고심 깊어지는 韓
하지만 한·미 관계가 전략적 포괄 동맹의 단계에 접어들고 한·미·일 3국 공조가 강화될수록 미국은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선명한 입장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대만 문제를 놓고 미국과 단일대오를 형성할 경우 중국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정부가 대만해협 갈등 등 양안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때마다 신중함을 유지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26일 ‘워싱턴선언과 한미동맹의 미래’ 포럼에서 “(대만해협 유사시에도 한·미 확장억제는 변함없지만) 현직에 있을 때 한 가지 걱정스러웠던 건 워싱턴이 한반도보다는 대만해협에 훨씬 많은 관심을 보이고, 한국이 (대만해협 문제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 물어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 직전 미국은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을 활용해 여단급 규모의 파병단을 꾸리는 방안에 대해 한국 측에 제안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와 관련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우크라이나 평화 관련 국가안전보좌관 회의 참석차 출국길에 “관련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미국 측과) 논의된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국방부 역시 입장자료를 통해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파견에 대해 미측과 논의한 바도 없고, 미측이 제안한 바도 없다”며 “주한미군의 역할과 임무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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