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부림·살인예고 공포…경찰 “총기·테이저건 주저없이 사용"
4일 오전 9시쯤 지하철 수인분당선 오리역에선 장봉과 방패를 갖춘 경찰관 여럿이 오갔다. 오리역 7개 출입구에 각각 배치된 이들은 2인 1조로 움직이면서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승객들을 살폈다. 경찰 특공대(8명), 경찰관 기동대(23명), 순찰차(4명)로 꾸려진 중량급 경력이었다.
같은 시각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도 경찰관 6명과 지하철 보안관 6명이 역사 주변을 순찰하고 있었다. 1개 기동대가 배치된 잠실역 인근에선 소방관 7명이 펌프차·구급차와 함께 대기하면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발생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순찰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경찰 대응은 최근 온라인상에 잇따라 올라온 ‘살인예고 글’에 따른 조치다. 지난달 21일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지난 3일 서현역 사건까지 온라인상에 ‘살인예고 글’이 잇따라 올라오면서 시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인천에 사는 이모(26)씨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수요일 신림역서 한녀 20명 죽일 것”이란 글과 흉기 구매 내역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 경찰이 작성자의 인터넷 주소(IP)를 추적하자 이씨는 자수했다. 이씨는 협박 혐의로 구속됐지만, 그 뒤로도 익명의 살인 예고글은 이어졌다.
이씨가 자수한 날 ‘오늘 밤 신림 일대에서 여성 1명을 강간 살인할 예정’이란 게시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고, 경찰은 일주일 만에 작성자를 체포했다. 4일 오전 1시쯤엔 여성 혐오성 표현과 함께 “내일 서면역 5시 흉기 들고 다 쑤시러 간다”는 제목의 글이 온라인상에 올라와 부산경찰청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20개 이상의 살인예고 글에 대해 작성자를 추적하고 있다. 현재까지 검거된 2명 중 1명은 흉기를 산 뒤 살인예고에 그치지 않고 실제 범행으로 옮기려했던 정황이 포착돼 구속됐다고 한다.
검증되지 않거나 허위·과장에 가까운 글도 섞여 있다. 하지만 이미 두 차례 ‘묻지마 범행’을 경험한 시민들의 공포감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리역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정모(37)씨는 “살인 예고글을 보고 직원들이 두려워서 못 나오겠다고 했다. 가게 문은 열었지만 매일 이렇게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렵고 막막하다”고 말했다.
과거에 인터넷에 올라왔던 살인예고 글이 뒤늦게 부각되는 점도 문제다. 신림역 부근 빌라에 사는 직장인 김모(31)씨는“올해 말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신림은 일단 떠나야겠단 마음을 굳혔는데 이사 후보군 중 하나였던 성남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면서 어디도 안전하지 않단 생각에 착잡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초강경 대응’ 지침에 경찰 “물리력 주저 없이 사용”
일각에선 “살인예고 허위 글이 쏟아지면서 수사에 혼선을 빚고 진짜 범행이 묻힐 것 같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경찰은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 전담대응팀 신설 ▶다중밀집지역에 경력 배치 ▶모니터링 강화 ▶살인 예고글 대응 수사 인력 보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사안에 따라 살인예고글을 올린 피의자에게 살인예비죄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 3일 온라인에 올라온 ‘4일 서현역 살인예고 글’ 작성자를 추적하고 있는 경찰 관계자는 “검거하면 협박혐의를 적용하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했는지에 따라 살인예비죄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살인예고 글이 올라오면 모방범죄로 이어지지 않게 빨리 삭제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심석용· 이영근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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