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밤 당신의 귀에 서간도 바람소리

박도 2023. 8. 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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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154화 :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 이야기, 역사극 '서간도 바람소리'

[박도 기자]

 
 역사극 <서간도 바람소리> 포스터
ⓒ (사)안동문화지킴이
 

나를 항일작가로 이끄신 분들

나는 그저 평범한 국어교사였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순정소설이나 생활 에세이를 쓰면서 지내려고 했다. 그런 가운데 1999년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박 선생님, 이번 여름방학에 뭘 하실 겁니까?"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그럼 토요일 오후 서초동 제 사무실로 와 주십시오."

1979년 당시 나의 고종 아우가 유신 반대 유인물을 영등포의 한 극장에 뿌려 영화상영이 중단되고 기동경찰이 출동해 현장에서 아우가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시골에 사시는 고모부가 그 사실을 알고 서울로 와서 아들 면회라도 하고자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아들 얼굴을 보지 못하고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한밤중에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침 한 학생의 아버지가 검찰청에 다닌다고 하여 연결해줘 특별 면회가 성사된 바 있었다. 알고 보니 당시 관할인 영등포지청(현, 서울 남부지청)의 이영기 검사장이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마침 한 에세이집을 펴낸 바 그때의 고마움으로 그 학생에게 우송한 바, 학생 대신에 그 아버지가 책을 정독한 뒤 식사 대접을 받은 바 있었다.

 
 안동 임청각의 군자정
ⓒ 박도
 

토요일 오후 서초동 법원 가의 그분 사무실로 찾아뵈었다. 그 무렵 그분은 전주지청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변호사 개업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낯선 두 분이 동석하고 있었다. 한 분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증손 이항증 선생이라 하였고, 또 다른 한분은 남만주 호랑이로 알려진 일송 김동삼 독립지사의 후손 김중생 선생이었다.

이영기 변호사는 그 몇 해 전 공직에서 물러난 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당신 집안(고성 이씨)의 석주 어른의 발자취를 더듬고자 중국 일대를 답사한 뒤 돌아왔으나 평생 법조문에만 익은 문체로 도무지 글이 쉽게 쓰이지 않는다면서 나에게 두 분 안내를 받아 중국 일대 항일유적지를 다녀올 수 없겠느냐고 내 의사를 물었다.

동행 두 분 중 한 분이신 김중생 선생은 중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다가 그 몇 해 전 영주귀국을 한, 중국 통이요, 전직 역사 교사였다. 게다가 한때(6.25전쟁 때)는 인민군으로 남침에 앞장섰던 인물이라 하기에 호기심이 부쩍 가는 좋은 길잡이 같아서 즉석에 허락하자 그 자리에서 항일유적답사단이 꾸려 졌다. 그 모든 비용을 이영기 변호사가 부담키로 했다. 내가 몹시 미안해하자 "사건 하나 맡지 않은 거로 하겠습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했다.
    
 유하현 삼원포에 최초 동포 교육기간 경학사 옛 터, 뒷산은 대고산
ⓒ 박도
   
안동 임청각에서 고유 인사를 드리다

우리 답사단 세 사람은 국립묘지 임정 묘역과 석주 생가인 안동 임청각에 가서 고유 인사를 드린 뒤 1999년 8월 1일부터 중국 곳곳의 항일유적지를 둘러보고 8월 11일 귀국했다. 그런 뒤 1년 후인 2000년 9월 25일 나는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현재는 '항일유적답사기')라는 항일유적답사기를 펴냈다.

그 후 그때 답사 도중에 만난 고향 출신의 허형식 항일 파르티잔에게 감동하여 혼자 북만주 벌판을 헤맸고, 귀국 후 국내 호남의병 전적지 답사로 전라남북도를 여섯 차례 누비면서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를 펴냈다. 그러고 나서 국외의 안중근 의사 마지막 행적지를 160여 일 답사하고 <영웅 안중근>을 펴낸 뒤 얼치기 독립운동 기사나 책을 쓰면서 지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집안을 정리하고 50여 가족단을 이끌고 만주로 가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어 국권을 회복케 한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압록강을 건넜다. 그곳에서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우선 동포 교육기관 경학사를 개설한 다음 서울에서 온 우당 이회영 등과 힘을 모아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본격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국권 회복의 힘을 길렀다.

그리하여 장지락을 비롯한 조선의 많은 지식인과 지사들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건너가 여러 독립군단 그리고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세우면서 독립의 그날을 기약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 이항증
   
자녀 교육에 최상의 피서 여행

올 여름 '(사)안동문화지킴이'들이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 이야기로 역사극 <서간도 바람소리>를 연극 무대에 올린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연극의 제재는 석주 손부 허은 여사의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를 바탕으로 한 독립운동 이야기로 자못 그 기대가 크다.

허은 여사의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는 <내가 항일유적답사기>와 <허형식 장군>을 집필할 때 위편삼절처럼 들춰봤던 귀중한 책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 독립운동은 남자들이 했지만 진짜 고생은 의식주를 책임졌던 여성들이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번 역사극 <서간도 바람소리>는 2023년 8월 4일부터 9월 9일까지 매주 금, 토요일 17: 30분에 안동시 태사길 13 태사묘 실경무대에서 공연한다고 한다. 이 여름 휴가철 육사 고향인 안동을 둘러보고 무더운 여름밤에는 역사극 <서간도 바람소리> 공연을 보면 어떨까. 자녀들에게 더 없이 좋은 교육이 될 것이라고 추천하는 바다.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저자 허은 여사
ⓒ 이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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