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의 음악인생

데스크 2023. 8. 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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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누구나 한 번쯤 ‘넬라 판타지아’를 들어본 적 있다. 영국 출신의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불러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노래다. 원곡은 영화 ‘미션’에서 가브리엘 신부가 원주민들 앞에서 부른 ‘가브리엘의 오보에’이며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가 만들었다. ‘황야의 무법자’ ‘미션’ ‘시네마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아메리카’ ‘피아니스트의 전설’ 등을 작곡해 영화는 몰라도 그의 영화음악을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2016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헤이트풀8’으로 음악상을 수상했을 때 그의 나이는 87세였으며, 2020년 우리 곁을 떠나 별이 되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20세기 위대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메트로놈이 째깍거린다. 연필을 쥔 엔니오 모리꼬네가 오선지에 음표를 힘차게 써 내려간다. 그의 작업실이 천천히 비춰진다. 방안에 피아노가 없고 음반과 책, 악보들로만 가득 찬 작업실이 조금은 생소하다. 엔니오는 피아노 앞에서 멜로디를 짜내지 않았다. 단지 머릿속에서 완성된 교향악을 책상에서 악보로 옮긴다.

영화는 엔니오 모리꼬네를 향한 영화인들의 깊은 우정과 존경을 담았다. 영화의 연출은 맡은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다. ‘시네마천국’ ‘피아니스트의 전설’ ‘말레나’ ‘베스트오퍼’까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영혼의 단짝이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세계적인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불리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156분이라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 안에 담았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장르라는 것을 망각할 정도로 짜임새 있는 연출, 비하인드 스토리와 볼거리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다. 엔니오와 함께 작업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한스 짐머 등 영화감독, 영화음악인, 제작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나와 엔니오 모리꼬네의 위대한 업적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들의 다른 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관객들에게 벅찬 감동을 준다.

진정한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 의사를 꿈꾸었던 어린 모리꼬네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음악의 길을 걷는다. 이탈리아 음악원에서 작곡을 정식으로 배우는 동안 현대음악의 거장인 스승 고프레도 페트라시를 만나 작곡에 눈을 뜨게 된다. 초창기 생계를 위해 연주하고 부족한 실력 탓에 굴욕과 수치심을 느꼈지만 조금씩 음악 세계를 넓혀나갔다. 유별난 편곡자였던 모리꼬네는 1961년 ‘파시스트’로 영화음악에 입문해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400편이 넘는 영화음악과 100여 곡이 넘는 클래식 음악을 작곡했다. 그러나 정통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그를 평가절하했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다섯 번 연속 후보에 올렸다가 떨어뜨렸다. 그러나 순수음악과 영화음악에 대한 열정과 이해, 실험정신이 결합해 그를 영화음악의 전설로 만들었다. 영화는 엔니오가 영화음악의 체계와 문화를 선도한 진정한 예술가임을 느끼게 한다.

영화음악의 힘도 보여준다. 엔니오가 영화계 입문했을 당시에는 영화음악은 반주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의 등장과 함께 영화음악에 대한 개념을 변화시켰다. 자작곡을 통해 영화장면을 완결하고 캐릭터를 완성했으며 이미지로 채울 수 없는 부족함을 영화음악으로 메웠다. 영화음악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중요성을 확립했다.

우리 사회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이전투구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길게 보면 삶을 사는 동안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는 훌륭한 많은 영화음악을 남겼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세계인은 물론 영화감독, 제작자, 영화음악인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는 것이다.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그의 음악인생 스토리를 통해 우리에게 깊은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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