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의 장을 넓히자" 청년들이 모여 정치 고전을 읽는 이유
[애증의 정치클럽 기자]
▲ 폴티 최하예 대표 |
ⓒ 이다웍스 |
'정치'와 '고전',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머리아픈 두 단어의 조합입니다. 그런데 이 둘을 붙여 모임을 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치 콘텐츠 커뮤니티 폴티에서 '정치고전(반복)읽기클럽'을 운영 중인 최하예 대표입니다.
'정치고전(반복)읽기클럽'은 플라톤의 <국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등 정치철학 고전을 여러 번 읽고 감상을 나누는 모임인데요. 최 대표는 그 고리타분함에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가 있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그걸 찾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즐겁다고요.
최 대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이 즐거움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고향인 대구에서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5개 정당 소속의 지역 정치인들을 불러모아 정치 고전을 논하는 행사인 '대구싶은 정치토크'를 개최했습니다.
최하예
영남대 행정학 석사
대구시 출자출연기관 대구경북디자인 센터 전략사업팀
국회미래연구원 석사 연구원(거버넌스 그룹)
시대전환 조정훈 국회의원실 보좌진, 김동연 대선캠프
폴티 대표
정치, 콘텐츠, 커뮤니티
- 폴티를 소개해주시겠어요?
"폴티가 하는 일에는 4개의 영역이 있어요. 커뮤니티, 교육, 캠페인, 프로젝트인데요. 커뮤니티는 독서 기반으로 가고 있어요. 정치 고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데요. 일반 독서모임과 다르게 자체 개발한 툴을 제공해요. 노트와 운영 방식을 개발해서 저작권 등록도 돼 있어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커뮤니티를 표방하고 있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콘텐츠 커뮤니티는 정치씨앗클럽이에요. 정치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이 책 하나 선정하는 것도 어려워하거든요. 이념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서요. 그래서 기본서 중심의 클럽을 준비하고 있어요. 예산을 다루는 정치예산클럽도 준비 중이에요.
두 번째는 교육인데요. 대구 범어도서관에 강의를 나가고 있고, 대학교 특강도 한번 나갔어요. 청소년 교육 관련해서도 툴을 개발하고 있고요. 저도 청소년 교육은 처음 하게 돼서 아직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데요. 일단은 정치를 혐오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가능성을 보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최근엔 정치적 말의 힘(박상훈)을 다뤘어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연설문을 살펴봤고, 얼마 전 화제가 된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의 대정부질문도 보여주면서 정치 얘기를 했죠.
세 번째, 캠페인은 정치 친화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거예요. 분명 내년 총선에서도 어떤 방향으로든 실망하는 분들이 많을 거잖아요. 그래도 괜찮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어요. 우선은 이 티셔츠를 만들었어요. 'Toward Our Politics Friendly Society!(정치친화 사회로 나아가자)', 저희가 '폴티'라서 '폴T' 캠페인을 잘 활용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프로젝트는 기술과 관련된 거예요. NFT, AR, VR 관련 사업에 지원하고 있어요. 정치와 기술을 연결시키는 데 관심이 많아요."
- 어떻게 폴티를 만들게 되셨나요?
"2021년 국회 연구원일 때, 박사님이 하시던 정치 고전 세미나 예습을 하려고 온라인 독서모임을 꾸렸어요. 그때부터 수요가 있어서 계속 이어가다가 대구에 와서 오프라인 모임을 열게 됐어요. 국회에서 일하다 충전의 시간을 가지려 본가인 대구로 왔는데, 정치 얘기를 하려고 보니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거예요.
▲ '대구싶은 정치토크' 진행 중인 최하예 대표 |
ⓒ 이다웍스 |
고전의 힘, 기초부터 심화까지
- 왜 고전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요. 현재의 정치를 분석하는 책도 많은데요.
▲ 대구 대화의장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된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읽기모임 |
ⓒ 폴티 |
- 참여자들이 고전을 읽고 어떤 걸 얻어가길 바라시나요?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엔 '개념'이라는 키워드가 있어요. 개인이 어떤 정치적인 개념을 생각할 때의 근본적인 관점이나 구조를 만들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직업 정치인'이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하잖아요.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나오는 개념이에요. 베버는 민주주의를 위해선 법률가, 자본가, 언론가가 아닌 직업 정치인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세금에서 월급을 받는 직업이 직업 정치인인데, 정치인에게 월급을 주지 않으면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요. 이게 지금의 논의랑도 이어지잖아요. 이렇게 고전에서부터 개념에 대한 생각을 시작해 정리하면 자기 관점을 세우는데 좋은 기준을 가져갈 수 있어요.
개념에 대한 공동체의 합의 면에서도 중요해요. 우리나라는 포털에 정치 뉴스가 계속 노출되니 내가 정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근데 얘기하다 보면 개념의 합의부터 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를 들어 페미니즘 같은 개념이요.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논의와 토론이 일어나면 실패한다고 생각해요. 공통의 장을 넓히는 작업을 정치 고전에서 출발하면 좋지 않을까 해요.
마지막으로 정치철학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서 시작해요. 내가 누구인지, 내 주변이 어디까지인지, 그 사이 권력 작용은 어떤지 고민하면서 공동체와 공동체를 연결하는 게 정치의 발전이자 정치철학인데요. 인간은 불안하고, 모순적이고, 한계가 있는 존재라는 걸 배워요. 그런 인간들이 하는 활동에 대해서 이해하고 정치를 다룰 수 있기 때문에 정치 고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다양한 해석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해도를 높이는 게 어려울 것 같은데.
▲ 정치고전(반복)읽기클럽에서 읽어온 책들 |
ⓒ 폴티 |
- 당장 현실 정치도 구체적인 문제들이 많잖아요. 고전은 원론적이라고 한계를 느끼시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 정치고전(반복)읽기클럽 후기 |
ⓒ 폴티 |
- 기억에 남는 참여자 소감이 있나요?
"손 편지를 써주신 분이 계셔요. 제 입장에선 군주론 클럽 다섯 번씩 열면서 매번 공부를 열심히 해가고 새로운 걸 만들어가려고 노력하지만 끝나고 나면 아쉬운 점이 많거든요. 근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마음을 전해주시면 정말 감동받아요. 더 잘해야겠다, 열심히 해야겠다, 동기부여를 받습니다.
참여자분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인데, 첫 번째는 자기 전문 분야에 있다가 결국 답은 정치라는 걸 느끼는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이 공부를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하다 와서 '미디어에서 봤던 정치가 전부가 아니구나' 같은 소감을 나눠줄 때 효능감을 많이 느껴요. 두 번째는 정당 활동을 시작하는 젊은 분들이에요. 조직 안에서 행사에 동원되는 것만 정치라고 생각했는데, 공부하면서 정치해야겠다고 할 때 뿌듯해요. 세 번째는 '정치 덕후'분들, 일년 넘게 3~4번 이상 참여하는 분들 보면 정말 감사하죠."
건강한 정치적 토양을 위해
- 올해는 어떤 기획을 앞두고 계신가요?
"9월에 광주에서 독서클럽을 열어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광주 정치토크도 열 예정입니다. 11월 25일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고 대구와 광주가 함께하는 정치토크를 열려고 합니다. 10월, 11월에 민주주의디깅클럽도 오픈하고, 연말에는 텀블벅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왜 대구와 광주인가요?
"저도 계속 질문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정치적 이념 차이가 뚜렷하다는 상징성 때문에 내가 대구 사람이니까 광주에서도 해야 하나? 역사 얘기도 중요하지만 다른 얘기를 할 수는 없을까?
▲ 대구 대화의장에서 개최된 대구싶은 정치토크 행사 |
ⓒ 이다웍스 |
- '대구싶은 정치토크'에 다양한 정당인이 참여하잖아요. 저도 신기해서 찾아왔어요.
"제가 국회미래연구원에 있을 때 했었던 연구가 5개 정책 연구소(민주연구원, 민주평화연구원, 바른미래연구원, 여의도연구원, 정의정책연구소)와 5개 정당 보좌진을 대상으로 한 거였어요. 그때 경험한 게 민감한 이슈를 두고도 대립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서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저만 알기 아까운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비슷한 형식으로 지역 행사를 꾸렸어요.
이번에도 그렇고, 대구에서 열었던 첫 행사에도 5개 정당(국민의힘, 기본소득당, 녹색당,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의 정치인들이 왔어요. 의외로 다들 흔쾌히 참여해주셨어요. 다들 이런 공간과 기회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 정치인과의 협업으로 커뮤니티를 확장할 의향은 있으신가요?
"제 목표 중 하나가 정치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정치 고전을 읽게 하는 거예요. (웃음) 왜 정치를 하고 싶은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거든요. 그런 정치인들이 폴티에서 나오게 하는 것도 목표입니다."
- 목표가 엄청 많군요! 폴티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정치 콘텐츠를 다루는 커뮤니티로 남고 싶어요. 오래 갈 변화들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잖아요.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아도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고 믿거든요. 많은 분이 지치지 않고 함께 노력해서 건강한 정치적 토양 형성에 일조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정치를 건강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공동체에서 좋은 정치인이 풍부하게 나오고, 투표의 가치도 더 신중하게 생각할 거예요. 다른 나라의 정치 커뮤니티와도 연결되고 싶고요.
마지막 목표는 정치 공부하는 사람에게 장학금을 주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정치학 전공자가 전공을 살리기 어려운 것 같아요. 연구소도 적고, 정당 안에 일자리도 넉넉하지 않고, 정치인으로 먹고 살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죠. 전공자뿐만 아니라, 정치 공부에 사명감을 가지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을 지원하고 싶습니다."
최하예 대표가 말하는 고전의 힘은 그가 강조하는 '건강한 정치적 토양'과 맞닿아있었습니다. 본질에 대한 탐구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뻗어나갈 수 있는 비옥한 흙이고, 그 흙에 함께 뿌리를 내린 이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대를 믿을 수 있습니다. 나와 같은 흙에서 호흡하고, 같은 빛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다른 방법을 택했을 뿐이니까요.
'대구싶은 정치토크' 현장에 모인 이들의 밝은 얼굴은 최하예 대표가 가꿔온 신뢰의 토양이 탄탄하게 다져지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대구 정치의 현주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오갈 때도 서로를 향한 존중이 자리했습니다. 폴티가 저 멀리 있던 고전으로 만들어낸 것은 분명하게 손에 잡히는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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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티 홈페이지
👉 폴티 인스타그램 @polt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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