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갈매기] 두 시간 반을 달려 왔는데... 못 봤지만 괜찮습니다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편집자말>
[박여울 기자]
1년 전쯤 '국립공원과 함께하는 건강나누리 캠프'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는 환경성질환 환아가 있는 가족 또는 관심 있는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자연 속에서 치유시설을 체험하고 환경성 질환의 친환경 관리법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조금 더 소개하자면 참가비가 전액 무료이며 신청시 환경성질환(아토피 피부, 비염, 천식 등)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우선 선정(선발)이 된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당시 이 모든 정보를 모집이 다 끝나고 나서 알게 되었었다. 그래서 2023년에는 제때 꼭 신청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올해는 예상보다 일찍 접수가 시작되었다. 뒤늦게 신청을 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나마 지리산 생태탐방원에서 실시하는 건강나누리 캠프는 거리, 날짜, 그리고 프로그램도 다 마음에 들어 바로 신청했다.
1박 2일의 프로그램 중 가장 기대되었던 부분은 바로 '반달가슴곰 생태체험'이었다. 멸종위기종에 속하는 반달가슴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설레게 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동물원을 다녀오면 무언가 마음에 씁쓸함이 남곤 했는데 지리산 생태탐방원에서 '보호' 중인 곰을 볼 수 있다는건 그것과는 사뭇 다른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 1박 2일간 머물며 건강나누리 캠프에 참가한 지리산 생태탐방원 |
ⓒ 박여울 |
캠프 당일 그곳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첫째 딸과 반달가슴곰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누게 되었다. 딸은 멸종위기 동물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반달가슴곰 뿐만 아니라 북금곰, 펭귄, 산양, 수달, 표범, 호랑이, 늑대가 멸종위기에 처해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동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 이유 중 몇 가지를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점 더워지는 날씨가 동물들이 살아가기 힘든 상황을 초래해서 멸종위기의 상황을 가져왔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인해 동물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사실까지도.
두 시간 반을 달려 어느새 도착한 지리산 생태탐방원은 자연 속에 멋지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강의실에 도착해서 한숨을 돌리고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그런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했다. 오늘 예정되어 있던 반달가슴곰 생태체험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이유가 너무도 궁금해서 담당자의 뒷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주에 여기에 폭우가 쏟아졌거든요. 200mm 넘는 비가 와서 산사태가 심각해요. 반달가슴곰의 방사장 복구 작업을 꽤 오랜 시간 동안 해야 할 것 같아 당분간은 체험이 힘들다고 합니다. 먼 길 오셨을 텐데 동물들을 무리하게 보여드릴 수는 없어서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 지리산 생태탐방원 앞의 계곡 |
ⓒ 박여울 |
반달가슴곰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물을 보호하는 탐방원의 대처에 오히려 감동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먼 길을 달려온 우리 가족, 특히 6, 4, 2살 세 아이들의 아쉬움도 컸지만 동물의 생존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속상한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 1박 2일 간 머문 지리산 생태탐방원 숙소의 거실 |
ⓒ 박여울 |
인간이 자신의 삶의 편의를 위해서 행했던 일들이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일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이라도 실천하자는 다짐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과제였다. 그런데 이상기후현상은 교사로서의 내 삶, 더 구체적으로는 당장의 내 여행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 떠난 여행이었기에 산사태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다. 당장 내가 사는 곳의 오늘, 내일 날씨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사는지라 부산과는 거리가 있는 이곳의 어려움은 헤아리지도 못한 채 설레는 마음만 안고 떠난 거다.
▲ 숯, 황토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들을 섞어 비누를 만들고 있는 아이 |
ⓒ 박여울 |
시판되는 보통의 비누는 방부제가 많이 들어있고 인공색소와 합성향료가 들어간 것과 달리 우리가 만든 비누는 유노하나, 청대, 현미, 쑥, 황토, 숯 등 천연 식물성 색소를 사용함으로써 피부 자극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하셨다. 특히나 아이들이 원하는 천연 가루와 오일을 직접 배합해 만듦으로써 환경에 대한 관심은 조금 더 커지고 만드는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이후로는 새 집을 만들면서 산새들의 특징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고, 또 다음 날에는 천연 아로마 치유테라피 과정의 하나로 자연물을 활용하여 향기보틀을 만들기도 했다.
캠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이번 여행이 어땠는지 물었다. 쫑알쫑알 답하는 아이들의 말들 중 특히 둘째의 대답이 인상 깊었다.
"엄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곰들이 나오는 곳을 청소해야한다고 했잖아요. 사실 반달가슴곰 못 봐서 속상했어요. 그런데 괜찮아요.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니까요."
▲ 반달가슴곰 캐릭터 모양으로 아이들과 함께 만든 친환경 비누 |
ⓒ 박여울 |
이번 여행이 아쉬움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더 깊은 생각과 넓은 경험을 쌓아가는 아이들로부터도 배움을 얻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우리 가족은 아이들이 직접 만든 반달가슴곰 비누로 세수를 하고 손, 발을 씻는다. 때때마다 그날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보니 반달가슴곰을 보지 못한 것이 단순히 아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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