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드라이버 맡겼더니 흠집 수두룩[정현권의 감성골프]
퍼트를 마치고 항상 가장 짧은 거리를 이용해 그린 주변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그린 주위를 둘러서 카트로 이동하고 다음 홀로 걸어가더라도 그린을 가로질러 가지는 않았다.
“그린을 가로 질러가면 혹시라도 신발에 긁히거나 발자국이 남아 그린에 손상을 줄 수 있어 그래요. 뒤 사람 퍼트에 혹여 방해가 될 수도 있고요.”
순간 뜨끔했다. 구력 20년이 넘었는데도 한번도 이를 생각해 보지 않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골프장에서 가장 예민하고 관리하기 힘든 곳이 그린이다.
수많은 골퍼가 좁은 그린에서 움직이면 엄청난 압력(답압)이 가해진다. 굳이 골프장이나 따라오는 다른 팀을 위해서가 아니라 뒷날 자신이 그 골프장을 다시 찾을 수 있다.
내친 김에 그린에서의 행동에 대한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동반자 라인을 발로 뛰어넘는 행위도 삼가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동반자가 그린에 놓은 마커 뒤를 돌아가라는 의미이다.
그에 따르면 잔디 보호를 위해서도 가상의 라인을 건너뛰는 행위는 가능하면 삼가는 게 좋다. 일반 한발을 들고 건너뛸 때 뒷발에 체중이 실리면서 그린이 강한 압력을 받는다.
습한 여름엔 뒤 발자국이 생기고 내딛은 앞발이 닿은 지점에도 강한자국이 남을 수 있다. 그린에서 공중 부양했다가 착지하면 곤란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린에서 종종 관리자(그린 키퍼)가 핀을 이곳 저곳으로 옮기는 것을 본다. 알고 보니 그린에 미치는 하중을 분산하기 위해 여러 구역으로 나눠 핀을 돌아가며 꽂는다.
그린 잔디를 보호하려는 목적이다. 고약한 곳에 핀을 꽂으면 “어제 밤 아내와 싸웠나”라고 농담을 하는데 그는 결코 아내와 싸우지 않았다.
관리가 잘된 그린에 공을 올리면 자국이 남는데 이를 피치 마크라고한다. 특히 백 스핀이 걸리거나 탄도가 높은 공이 낙하할 때 깊은 피치 마크가 남는다.
만약 이 때 그린 보수기(디벗 보수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보수하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분명 골프에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 봐도 무방하다. 피치 마크 수리도 그냥 대놓고 하는 게 아니다.
볼 자국 가장 자리(좌우상하)를 그린 보수기로 찔러 잔디를 가운데로 모은다. 이 때 잔디를 밑에서 위로 떠올려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올라온 잔디를 퍼터 밑면으로 살살 눌러주면 수리는 끝난다.
참고로 그린에는 잔디 중에서 가장 품질이 벤트그래스가 주로 사용된다. 잎이 매우 가늘고 촘촘해 짧게 깎아 그린 스피드를 높인다.
고온다습한 한국에선 관리유지비용이 많이 소요되는데 일부 골프장에선 페어웨이에도 사용한다. 연간 관리비용이 한국형 잔디보다 5억원 이상 높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잔디 보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티잉 구역이나 페어웨이에서 연습 스윙을 할 때에도 해당된다.
연습 스윙을 할 때마다 꼭 디벗 자국을 내는 골퍼가 있다. 희한한 것은 실제 스윙을 할 때엔 디벗 자국을 전혀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토핑을 낼 때가 있다. 연습 스윙때 디벗 자국을 내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진 사례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마저 디벗 자국이 떨어져 나가면 속이 쓰리다.
이 때의 트라우마가 남아 그 뒤론 웬만하면 남에게 내 클럽을 잘 넘기지 않는다. 새 차를 시승해보고 싶다는 친구에게 운전대를 맡겼다가 흠집을 낸 것과 유사하다.
티잉 구역에서도 골퍼들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순서가 오면 플레이어가 한 명씩 티잉 구역에 올라가야 한다.
차분히 자기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고 플레이어 옆에 서서 구경하거나 기다리는 경우가 흔한데 잔디에 압력이 가해져 서서히 가라앉는다. 어떤 때는 4명이 모두 티잉 구역에 올라가는 사례도 있다.
골프장 측에선 티 마커를 오른 쪽이나 왼쪽에 옮겨 가며 진행하도록 한다. 티잉 구역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울퉁불퉁한 형태로 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특히 티잉 구역은 하도 압력을 받아 거의 맨땅으로 변하기 십상이어서 어떤 골프장은 거죽으로 덮어놓고 티를 꽂도록 한다. 미관상 보기에도 그렇고 티샷을 할 때 심리적으로도 불편함을 준다.
골프계에 “스윙을 알면 싱글 잔디를 알면 언더”라는 말이 있다. 골프 사랑은 잔디 사랑으로도 통한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신문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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