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역사적 위인, 남북이 공통으로 인식"

이혁진 2023. 8. 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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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위인 우표 전시회 '이상동몽',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오는 9월 24일까지

[이혁진 기자]

중학교에 진학하고 시작한 유일한 취미가 우표수집이었다. 당시는 물자가 귀해 이런저런 물건을 마구 모으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중 우표수집은 중학생들에게 그럴듯한 취미였다. 나처럼 처음 우표를 모으기 시작한 친구가 학급에 몇 있었는데 우리들은 모이기만 하면 우표 이야기 뿐이었다.
    
소장한 우표를 구경하기 위해 친구 집에도 여러 번 가서 우표를 서로 맞바꾸거나 어쩌다 공짜로 한두 장 얻으면 하늘을 날 듯 기뻐했다. 심심하면 시트에 포장된 우표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다. 그렇게 열심히 수집하며 심취했던 우표들은 이사를 몇 번 하면서 실종되고 말았다. 우표를 계속 수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남북한 위인 우표를 볼 수 있는 자리
   
50여 년 전 시절을 새삼 떠올린 것은 서울 강서구 소재 통일부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우표전시회를 우연히 접했기 때문이다. 남북통합문화센터는 지난 7월 4일부터 9월 24일까지 남북한 위인들의 우표를 통해 <이상동몽 인물 편>이라는 주제로 전시 중인데 관람객들의 발길이 잦다.
     
'이상동몽(異床同夢)'은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차용한 말로 '몸은 떨어져도 생각은 언제나 같다'는 뜻으로 남북한이 비록 분단됐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훈민정음을 창제반포한 세종대왕 관련 남북한 기념우표, 남한은 한글날(10월 9일), 북한은 조선글날(1월 15일)로 따로 기념하고 있다.
ⓒ 이혁진
  
 통일을 기원하는 남북한 우표,
ⓒ 이혁진
 
이순신 장군, 김구 주석, 안중근 의사, 세종대왕 등 역사 속 위인들을 남과 북 우표를 통해서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체제는 달라도 남북한이 공히 존경하거나 추앙하는 인물들이 우표라는 물건으로 소환되니 우리들이 한뿌리이며 한민족이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우표역사를 잠시 살펴본다. 우리나라 최초 우표는 1884년 우정총국 개관을 기념해 만든 '문위우표(文位郵票)'이다. 그러나 12월 우정총국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나 문위우표는 18일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02년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 우표가 발행됐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 기념우표'이다. 급기야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우리는 일본우표를 사용하게 된다.  
    
1946년 5월 1일 조선해방 1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면서 일본 우표의 사용이 금지됐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념해 대한민국 정부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우표'가 처음 발행됐다. 북한은 1946년 3월 12일 무궁화와 금강산 삼선암을 도안으로 남한보다 빨리 최초우표를 발행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에 남북이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표 속 위인들은 민족의 동질성을 상징하고 있다. 이번 전시가 통일과 화합에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도 이 때문이다.  
    
일례로 다산 정약용을 우리(1986년 발행)보다 북한이 비중 있게(1960, 1962, 2011년 발행) 다루고 있다. 이는 북한 사회주의체제와 부합되는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산은 토지의 사회적 소유를 근간으로 공동소유와 공동경작하는 토지분배제도를 주장했다.  
    
북한은 남한에 비해 을지문덕 장군과 강감찬 장군 등 외세에 대항하거나 물리친 전쟁영웅들을 강조하고 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지리학자 김정호도 북한(1960, 1991년)이 남한(2000, 2018년) 보다 빨리 우표를 발행한 것도 특이한 대목이다.
 
 전시회를 안내하는 이상현 북한우표 소장가 <사진=이상현>
ⓒ 이혁진
 
이상현 소장가, 우표 나눔과 기부에도 앞장서     

이번 우표 전시는 37년간 북한 우표를 수집해 온 기업인 이상현 ㈜태인 대표이사의 노력으로 성사됐다. 이 대표는 일본 수집가들이 가지고 있는 희귀 북한 우표들을 찾아오기 위해 북한 우표 수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 우표 수집품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는 2003년 평양의 조선우표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지난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우표에 나온 인물들이 우리 민족의 역사적 위인으로 남북이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데 이번 전시회의 의미가 크다"며 전시회 취지를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번 전시에 앞서 2018년 10월 당시 남북화해 분위기에 발맞춰 서울역 옛 청사인 '문화역서울284'에서 북한우표 특별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경기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통일부 초청 남북한우표전시회를 개최했다.

전시뿐 아니라 수집한 우표를 기증함으로써 '우표 나눔과 기부'에도 적극적이다. 2018년 8월 안중근의사 숭모회와 기념관에 안중근 의사 관련 일본제일은행권 화폐와 기념우표, 주화 등을 기증했다. 특히 2004년 북한에서 발행한 안중근의사 기념우표는 안의사 탄신 125주년을 기념해 100매 한정발행한 것으로 소장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8월 국립국악원에도 북한 우표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발행한 전통음악 우표까지 남북한 전통음악 우표 전 종을 기증했다.
    
이 대표의 우표 수집은 우표가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와 '거울'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조그만 우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발행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살피면 사회가 나가고자 하는 방향도 전망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북한우표 수집은 북한에서 직접 우표를 들여올 수 없기 때문에 해외 수집가와 우표수집단체를 통해 발행정보를 입수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해방 이후 초기 우표들의 경우 좋은 상태의 우표를 구하기 어렵고, 값도 많이 나가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우표들은 해외 유명 경매를 통해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현재 이 대표가 소장한 우표는 얼마나 될까. 그는 "조선과 대한제국 포함해 남한과 북한에서 발행한 우표와 우편엽서를 수집하는데 우표 종수로 만종이 넘고, 엽서는 3천 종 정도"라 귀띔했다.
     
이 대표는 북한 우표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이념적, 정치적 구호가 담긴 우표가 많은 북한에 비해 남한이 다양한 주제의 우표를 발행하는 건 사실이지만, 북한 우표의 디자인과 품질, 기획력 등 상품성은 남한과 거의 대등한 수준이라 한다.
     
이 대표는 "DVD우표를 세계 최초로 발행한 나라가 북한이며, 금박우표, 시변각우표(그림이나 글자를 넣어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과 색상이 변하는 우표), 입체우표 등 다양한 모양의 우표를 꾸준히 발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우표발행을 통해 해외 수익원을 창출하는 우편강국이라는 의미라고.
 
 북한이 1955년에 발행한 이순신 장군 우표. 20장 이상 붙은 전지형태이다.
ⓒ 이혁진
  
 남한이 1946년에 발행한 한국지도, 전지형태이다.
ⓒ 이혁진
 
이 대표는 이번 전시회에 이어 '민속'을 테마로 다음 전시회를 기획 중이다. 분단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남북 우표에 담긴 음식, 의복, 놀이, 명절 등 다양한 문화유산에서 민족적 동질성과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런 남북우표 비교전시회가 자주 개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북한을 이해하는데 거대한 통일담론보다 우표만한 흥미로운 문화상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꿈은 우표를 통한 남북한 소통공간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는 "남북한 공통분모를 담은 '합동 우표전시회'가 평양과 서울에서 열리기를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이 대표는 현재 누전차단기, 배선용 차단기, 컴퓨터용 메모리모듈 제조전문회사인 (주)태인 대표와 대한하키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남북한 소통과 협력에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실제로 그는 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회 위원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체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이상동몽 남북한 위인 우표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 이혁진
 
여전히 뜨겁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폭염을 잊고 몰두할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이상동몽 남북한 위인 우표전시회>를 감상해 보면 어떨까. 우표수집 취미를 행운으로 얻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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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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