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절로 술이 만들어지는 병… '자동양조증후군' 아세요?
1946년 4월 26일,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 소재 한 병원에 다섯 살 남자아이가 입원했다. 손으로도 만져지는 뱃속 종양 검사 및 치료를 받기 위함이었다. 아이는 입원 당일 밤부터 복통을 호소했고, 이튿날 아침에는 배가 산처럼 부풀어 올랐다. 상태가 계속 악화하여 의식까지 희미해지자 의료진은 서둘러 개복 수술을 시도했다.
아이의 복강은 심하게 팽창한 상태였고, 위장에는 찢어진 상처까지 있었다. 환부를 봉합하려고 위에 손을 대자 다량의 액체와 가스가 쏟아져 나왔다. 복부 종양의 정체는 길게 늘어난 창자간막에 싸인 지라(비장)로 밝혀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참고로 창자간막은 내장 기관을 싸고 있는 복막 일부로 창자와 등 쪽을 연결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복막과 위 내용물에서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다.
아파하는 아이가 가여운 나머지 혹시 보호자가 민간요법으로 알코올성 음료 따위를 주었는지 우선 확인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의료진은 위장 파열의 원인으로 아이 엄마가 가져온 고구마를 의심했다. 말하자면, 저녁으로 먹은 고구마가 발효되면서 나온 가스가 위를 파열시킬 정도로 큰 압력을 생성했다고 추정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임상 소견이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유럽인 기준으로 그 시절 아프리카 어린이의 식사량은 실로 엄청났다. 먹거리가 풍족했다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식량이 부족해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리지 않고 최대한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이로 인해서 위가 만성적으로 늘어나 위벽이 얇아져 그만큼 파열에 취약하다는 게 의료진의 합리적 추론이었고, 이 가여운 어린 환자의 임상 기록은 1948년 4월호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아프리카 어린이 위장 파열’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논문 저자들은 몰랐겠지만, 자동양조증후군 환자를 처음으로 공식 보고한 것이다.
이름 그대로 자동양조증후군은 몸 안에서 저절로 술이 만들어지는 질병이다. 이 희귀 질환자는 숙취로 늘 고생하는 데다가 술에 절어 사는 생각 없는 사람으로 억울한 오해와 불이익을 받기 일쑤다. 주된 발병 원인은 장내미생물 생태계 교란으로 급증한 효모가 창자에서 알코올 발효를 과도하게 진행하기 때문이다. 희소 질환이지만, 다행히도 난치성 질환은 아니다. 식단 조절로 발효 원료가 되는 탄수화물 공급을 줄이면서 항진균제를 복용하면 치료할 수 있다. 한마디로 치료의 핵심은 장내미생물 생태계 복원이라는 얘기다.
장내미생물에게 인간의 창자는 소중한 보금자리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삶의 터전에 외래 미생물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일단 홈그라운드 이점을 살려 공간과 먹이를 선점하고, 침입자에게 해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하면서 자기들 세상을 조화롭게 유지해 나간다. 사실 이런 텃세가 우리 면역에도 큰 힘을 보탠다. 이런 맥락에서 정상적인 장내미생물의 조성 변화로 불균형이 야기되면 대사질환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생기게 된다. 자가양조증후군도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인데, 당뇨나 비만 또는 자가면역 같은 기저 질환이 있는 경우 특히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생물학은 장내미생물을 비롯한 인체 거주 미생물의 참모습을 상당 부분 파악했고, 이들과 조화로운 공생이 우리 건강의 필요조건이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밝혀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과학자가 이들 미생물의 정확한 기능과 그들이 서로 역동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원리, 그리고 그 결과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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