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로 다시 돌아간 제자, 잊기 힘든 그날의 일
이 글은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천경호 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천경호 기자]
▲ 자리에 앉아 있어도 문제였습니다.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옛노래 한 소절을 반복해서 불렀고 대호의 짝이 된 아이들은 노랫소리가 자꾸 맴돌아 너무 힘들다며 저에게 하소연 하였습니다.(자료사진) |
ⓒ elements.envato |
오래전 처음 학교에 발령을 받고 이듬해 한 아이가 특수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습니다. 덩치가 큰 5학년 남학생이었는데요. 자폐와 지적 장애 두 가지를 가진 중도중복장애아였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이 아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 아이 이름을 대호(가명)라고 해보죠. 대호가 전학 온 저희 학교엔 특수학급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특수교사도 없었습니다. 누구도 자폐를 가진 아이를 만나보거나 가르쳐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자이고 젊은 제가 아이의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는 누구도 저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대호는 전학을 오고 비장애 아동 옆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일어나 저에게 다가오는 일이 많았습니다. 수업을 하다말고 저는 아이를 붙잡고 다시 자리에 앉히려 했습니다. 하지만 덩치가 큰 아이는 제 손을 벗어나 바닥에 누웠습니다. 저는 아이를 그대로 둔 채 수업을 하거나 아이 손을 잡고 수업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어도 문제였습니다.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옛노래 한 소절을 반복해서 불렀고 대호의 짝이 된 아이들은 노랫소리가 자꾸 맴돌아 너무 힘들다며 저에게 하소연 하였습니다. 저는 옆 반 선생님에게, 교감 선생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여쭤보았지만 다들 모른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저 1년 잘 버티라고 할 뿐. 매주 수요일 오후에 아이 어머니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통합교육을 해보고 싶어서 아이를 전학시켰는데, 아이도 힘들어하고 반 아이도 저도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이셨는지 매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어머니가 왜 죄송하다고 말씀하셔야 하는지 저는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습니다.
특수교육대상 아동을 위한 학교 시스템은 전무
대호와 지낸 날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있습니다. 바로 놀이 체험의 날입니다. 학교 운동장 곳곳에 놀이 베이스를 설치하고 반별로 돌면서 체험활동을 하는 행사였습니다. 저는 학급 반장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대호와 함께 아이가 하고 싶어하거나 할 수 있겠다 싶은 코너를 돌며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교감 선생님께서 '왜 다른 아이들은 방치하느냐'며 대호를 자신이 맡고 있을테니 가서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잘하고 있는지 보고 대호도 잘 하는지 교감 선생님이 계신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대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희 학교는 큰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혹시나 대호가 학교 밖으로 나갔을까봐 저는 급하게 뛰어서 학교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다행히 사고가 난 곳은 없었습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이곳 저곳을 돌며 아이를 찾았습니다.
"대호야! 대호야! 대호야!"
학교 행사는 진행되어야 했고, 아이가 사라진 책임을 교감에게 따져물을 경력도 여유도 없던 저는 혼자 학교를 1층부터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엘리베이터도 없던 그 시절 저희 교실이 있던 4층에 올라서 대호의 이름을 크게 부르자 조용한 복도 사이로 어떤 소리가 들렸습니다. 화장실 쪽이었습니다.
4층 화장실에서 한 아이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대호였습니다. 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야단을 쳤습니다. 말도 없이 혼자 여기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저는 놀란 아이의 뒷처리를 해주고 놀이를 하러 운동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대호는 다시 특수학교로 돌아갔습니다.
특수교육대상 아동을 포함한 통합학급을 자주 가르쳤습니다. 특수교사 분들을 가까이에서 뵙고 이야기 나눌 때도 많았습니다. 학생 개별화 학습이니 맞춤형 교육이니 말들이 많지만 정작 학생 개인을 위한 학교 시스템은 전무합니다. 오로지 시스템이 아닌 한 개인에게 그 책임을 전가합니다.
학교는 특수학급의 정원이 초과해도 학급을 증설하지 않습니다. 증설을 해도 특수교사와 일반교사가 서로 교류하지 않습니다. 학교장도 교감도 특수교육을 모릅니다. 그저 알아서, 알아서 특수교사가 해주기를 바랍니다.
▲ 전부 학교와 교실에서 벌어진 일이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들의 도와달라는 말에 '어쩔 수 없다'며 외면해 온 사회가 일으킨 일들입니다. |
ⓒ elements.envato |
가정 내 학대나 방임으로 소아 우울에 걸린 아이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에 대해 부모의 양육에 책임을 묻기보다 아이가 기질적 ADHD일 것이라 의심합니다.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간 학급담임이나 특수교사가 역으로 신고당하는 일이 있다는 걸 저희 교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아이의 기질적 문제로 원인을 돌린 후에 전문가가 직접 보호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걸 말해주기를 바라지만, 의사나 상담사가 부모의 양육태도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도 알고 있었고 면담을 통한 부모의 양육태도 진단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형태로 내려질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자폐를 가진 아이지만,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고 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급 담임도 이들을 잘 모릅니다. 그저 이상하다고 여겨서 가정에 물어보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남의 아이에게 장애가 의심된다고 말했다가 어떤 고충을 겪게 되는지 동료 교사들로부터 들었다면 누가 선뜻 말을 꺼낼 수 있을까요?
S초 선생님도, 특수 선생님도, 전문성 없는 언론에 의해 자신의 행동이 공개된 주호민씨의 아이도 모두 고립된 사람들입니다. 전부 학교와 교실에서 벌어진 일이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들의 도와달라는 말에 '어쩔 수 없다'며 외면해 온 사회가 일으킨 일들입니다.
교육부 조직처럼 복잡하고 거대하며 비효율적인 학교 업무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교육부나 여당의 목소리는 조금도 나오지 않습니다. 상시적이고 정기적인 현장 교직단체와의 소통창구를 마련하겠다는 이야기도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 사이에 오간 말과 행동에만 집중할 뿐입니다.
▲ 서초구 S초등학교 교사 추모 및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전국교사집회가 7월 29일 오후 서울 경복궁역 부근에서 열렸다. |
ⓒ 권우성 |
어쩔 수 없다는 그 말, 지긋지긋합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열망이 수많은 교사들을 광장에 모이게 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많은 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교사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그 말은 그저 '교육을 하고 싶다'입니다.
들어주십시오, 그들이 어떤 교육을 하고 싶은지. 들어주십시오, 그들이 어떤 학교를 만들어 가고 싶은지. 그저 높은 지위를 앞세우고 자신들만의 국가교육 발전 센터를 세우고 국가교육 발전 계획을 세우지 말고 최일선 교사들이 날마다 아이들을 만나며 그리는 교육이 무엇인지 듣고 듣고 또 들어서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가 그리는 국가교육발전 계획을 세워주세요.
다시는 외롭게 특수학교로 돌아가는 대호와 같은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교사 개인이 홀로 책임을 떠안아 괴로워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도록. 다시는 혼자 울면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걱정하며 밤을 지새우는 부모가 생기지 않도록. 제발 어쩔 수 없다는 그 말을 버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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